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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듯 멀리 퍼지는 종소리 - 신경숙

신경숙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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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경숙 씨가 소설을 통해 울려내는 종소리는 가볍고 경쾌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크고 둔중하게 울리지도 않는다. 한 아이의 생명을 담아 만들어냈다는 전설의 에밀레종이 내는 울음소리처럼 그녀의 작품들이 내는 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슬프다.

작가 신경숙 씨가 소설을 통해 울려내는 종소리는 가볍고 경쾌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크고 둔중하게 울리지도 않는다. 한 아이의 생명을 담아 만들어냈다는 전설의 에밀레종이 내는 울음소리처럼 그녀의 작품들이 내는 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슬프다. 그녀의 소설이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것은『종소리』의 인물들이 고통과 가난 속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부드럽게 껴안고 위로하기 때문이다. 소설집『종소리』안의 인물들은 동료를 배신했다는 자괴감으로 심각한 거식 증세에 시달리기도 하고, 자신이 낳은 딸조차 만나지 못하며,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후 따뜻한 방은 어머니를 기억하게 한다며 불편한 잠자리를 고집한다. 신경숙 씨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종소리가 울려 퍼져나가듯이 읽으면서 조금씩 소설 속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에 젖어든다. 

"종소리가 들릴 때는 사람이 부산하게 있다가도 잠시 조용하게 귀 기울이게 되잖아요. 그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하면 종소리는 물결처럼 파문을 일으키면서 멀리 퍼져나가지요.『종소리』는 3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한 편 한 편씩 쓴 것이에요. 쓸 때는 몰랐는데 모아 놓고 보니 쓰는 기법이 다양해졌고, 이야기가 조금 더 회복되었고, 이미지가 강화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작품 속의 화자들이 머뭇거리고 말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이번 작품의 인물들도 활발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해야 할 말은 비교적 또렷하게 하는 편이지요."

인물들의 말이 늘어났다는 것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구성과 의미도 강화되었다. 아무래도 인물의 내부를 그려낸 작품이 많았던 작가의 이력을 볼 때, 인물의 외부공간에 대한 섬세한 설정은 의미심장한 변화로 읽힌다. 특히 작가가 표제작으로 할까하고 망설였다는 「물 속의 사원」은 이번 작품집 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인 동시에, 지금까지 작가의 작품에서 쉽게 찾기 힘든 복합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물 속의 사원」은 구조적으로 꽉 차 있고, 구성의 힘이 느껴진다. 천장까지 닿는 대형 수족관이 있는 지하 다방, 수족관 안에는 악어가 살고 있다. 악어가 살고 있는 다방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보다 더 생경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마치 실제로 가보았거나, 아니면 영화로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건축물을 구상하는 기분으로 「물 속의 사원」을 썼고, 쓰는 동안 즐거웠다며 미소 짓는다.

"의미를 겹겹으로 주려고 노력했어요. 「물 속의 사원」의 다방 같은 공간을 창조해낼 때 창작자의 기쁨을 느끼죠. 내가 그동안 봤던 아주 가파른 계단, 또 누군가 흘려들은 이야기들, 인간관계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가끔 물끄러미 생각할 때의 내 모습 같은 것이 작품에 제대로 자리 잡으니까 기뻐요. 머릿속으로 아, 그래, 어두운 다방, 지하 다방, 천정 끝까지 닿는 수족관 같은 것을 떠올리고 노트에다 그려보는 거예요. 그리고 악어도 그려보고……. 우리가 생각하는 조그만 악어가 아니라 아주 야생성이 강하면서도 신성성을 가지는 악어. 난폭하기도 하지만, 죽음까지도 먹어 해치울 수 있는 악어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소설적 공간을 만드는 재미를 새삼 경험한 작가는 공간을 겹겹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좀더 해보려고 한다. 공간과 이야기가 만나고,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언어로서만 볼 수 있는 공간을 그리려는 것이다. 작품에 그려낸 공간도 이 세상에 섞이고, 그 소설을 읽으면 거기 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작가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끔 아무도 없이 자기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하나씩 갖고 있으면 정서적인 문제가 많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는 이 세상에는 많은 공간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개개인의 내면과 만나는 공간은 드물다며, 가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문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낸다. 

공간에 대한 변화와 더불어 「종소리」「우물을 들여다보다」「달의 물」같은 작품들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이미지도 두드러진다. 지금보다 좀더 젊었던 날에 가졌던 불안이 나이와 함께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줄어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물과 화해하고 뚫고 나가는 생이 되길 바란다는 작가는『종소리』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내게 소설쓰기란 종내엔 어머니 마음 가장 가까이 가기,일 것이다. 금간 것들, 결별한 것들, 아름답지 못한 것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들, 소멸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들, 한쪽으로 쏠린 눈을 가진 남루한 것들을 포용한 야성적인 어머니 되기. 볼품없는 것들이 오히려 빛이 났기에 나는 소설에 매혹 당했다. 그러므로 문학 안에서만큼은 금지되거나 내쳐지는 게 없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갖게 되었다. 어머니에게조차 어머니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공간’과 ‘어머니’가 이번 작품집의 주된 변화라면, 앞으로는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작품집에서도 이야기가 조금 더 강화되었지만, 작가는 앞으로 이야기의 힘을 한층 더 담는 소설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작품들에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보다는 이미지, 묘사, 문체를 형성하는 분위기 중심으로 문장을 구성해온 것은 사실이에요. 지금까지 18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문체에 의해 형성되는 소설은 충분히 써봤다고 생각해요. 이제 비중을 이야기 쪽에 좀더 두고 조화를 이뤄보려구요.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를 추종하려는 생각은 없지만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좀더 정확하게, 서사적 전략을 가지고 작품을 써보려고 해요."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작가 스스로도 그 어느 틈인가에 끼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집을 내고 마지막 교정을 보는데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또 지금은 많은 사람이 죽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며 글을 쓴다는 게 뭔가, 세상을 하나도 변화시켜놓을 수도 없으면서,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정서적 친밀감이 사라지고 인간 사이의 틈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그 틈 사이에 어떤 체온 같은 역할을 해주려고 한다. 인간적인 접촉이 메말라 가고 있는데, 저기 멀리 있는 사람과 여기 있는 사람 사이에 통로가 되어줄 수 있는 언어를 작가는 쓰고 싶은 것이다.

등단한 지 어느덧 18년이 된 작가는 사십대에 이제 막 접어들었다. 작가는 지금까지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는 기분이었으면, 이제는 능선이나 평지를 걸어가는 듯한 마음이 생기고 여백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번 작품집의 변화와 앞으로의 변화를 물어본 질문이 많았던 인터뷰의 말미에 노상 묻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계획하고 있는 작품들은 여러 편이 있는데, 그게 마음하고 똑같이 나오질 않는단다.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늦게 생각했던 작품이 먼저 씌어지기도 하고, 아주 오래오래 생각했던 작품이 오히려 뒤로 밀리기도 한다. 작품이 작가의 마음을 뚫고 나오는 때가 있는 것 같단다. 그래서 요즘 작가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작품은 지난 인터뷰(지난 신경숙 인터뷰 기사 보기) 때 작가가 밝힌 계획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은 사람,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그 하나이다. 또 이번『종소리』에서는 구체적인 어머니가 나오지 않고 어머니의 마음결만이 나오는데, 실제로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 긴 장편을 쓸 생각이 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상을 창조해내고 싶은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준비가 덜 되어 아직 마음속에 같이 살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나오겠죠,라고 말한다. 시력을 읽은 사람에 대한 작품과 어머니에 대한 작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완성될 예정이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어서 먼저 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대로 살아지는 건 아니지만, 늘 긴장하면서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생의 목표라며 계속 노력하겠다는 작가. 어떤 일이 다가와도 글을 쓰고 있을 것임만은 확실하다며, 나머지는 우주에서 별을 하나 집어내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단다.

문체에 있어 일가를 이루었고, 앞으로 문체와 더불어 이야기와 공간에도 조금 더 주목하는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작가가 또 어떤 작품들을 내어놓을지 기다려진다. 인터뷰를 끝낸 이후 작가는 범문단적 차원에서 이백여 명의 문인이 모여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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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신경숙> 저7,6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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