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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의 실체를 밝히다 - 역사학자 이덕일

역관, 베일에 싸인 정체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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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이 한 일은 ‘통역’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외교의 최일선에 있었던 외교관이었고, 국익을 위해 대외정보를 수집한 스파이였으며,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무역상이었으며, 신문물을 조선에 도입한 신지식인이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영어를 배우듯, 조선시대 중인 계층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 중국어(한어)를 배웠을지 모른다. 답답한 신분제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적었던 중인 계층 사람들은 양반들이 천하게 여긴, 그러나 생활에는 꼭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양반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경제적인 부를 쌓고,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들 한가운데 ‘역관’이 있었다.

역관이 한 일은 ‘통역’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외교의 최일선에 있었던 외교관이었고, 국익을 위해 대외정보를 수집한 스파이였으며, 중국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무역상이었으며, 신문물을 조선에 도입한 신지식인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조선 최대 갑부 역관』을 쓴 역사학자 이덕일 씨를 만났다.

역관, 베일에 싸인 정체를 밝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읽은 이라면 허생에게 거금 만 냥을 꿔준 변 씨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실존 인물로 역관 노릇을 하면서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역관들은 한 일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이 무척 적은 탓이다. 그래서 이번 책을 쓰면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책은 “역관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나?”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역관은 돈을 버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했는가?”로 폭을 넓혀간다. 역관은 정부에 고용된 통역을 담당한 관리였지만, 그들이 능력을 발휘한 분야는 통역뿐만 아니라 정치, 무역, 외교, 문화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있다. 그들은 외국어 실력과 중개무역을 통해 얻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한 사람들이었다.

“역관은 중인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양반들이 명분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면 중인들은 실제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역관들이 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나라를 위해 일하는 중인 대부분은 급료를 받지 못했다. “역관뿐 아니라 지방 관아에서 일하던 아전들도 급료라는 것이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직책을 세습할 수 있었죠. 역관들도 나라로부터 봉급을 받는 대신 인삼과 은에 대한 무역권을 보장받았죠. 조선에서 국제무역이 가능한 사람은 역관밖에 없었으니 상당한 특혜를 주는 셈입니다. 모든 역관이 다 무역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역관, 조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회에서, 역관들은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가장 먼저 세계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조선이 얼마나 좁고 막혀있는지를 깨달았다. 역관들이 단지 돈만 많이 벌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역사 속에서 다시 불러낼 이유가 없다. 그들이 기존의 조선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갈 활력을 주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역관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역관은 가장 먼저 세계화된 사람들입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삼각 무역을 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죠. 천주교와 개화사상도 이들의 손을 거쳐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역관은 누구보다 실리를 찾았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분과 체면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대부분 조선의 선비들이 경멸한 ‘이익’이었다. 그것도 물건을 옮기는 것으로 생겨난 이익으로 얻은 부였다. 역관에 대해 읽다보면 ‘조공무역’에 대한 상식도 깨진다.

“일면만 보면 조공무역은 굴욕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우리에게는 훨씬 이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역관의 눈을 통해 보면 확실히 그것이 보이죠. 조공무역이라는 개념에만 파고들면 그것의 진면목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의 과정과 결과, 즉 누가 이익이었나를 면밀히 따져보아야 하는 것이죠.”

조공무역을 통해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바로 조선과 역관들이었다. 이는 명나라가 조공의 횟수를 줄이려고 했지만, 조선에서는 오히려 늘려달라고 요청한 기록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는 사료 제대로 읽기에서 시작한다

역사는 사료와 대화를 나누는 학문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사료와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이덕일 씨의 신조다. “원사료를 읽는다는 것은 원형질 그대로의 역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원사료의 맛을 느끼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기도 하죠. 사실 역사는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료를 읽지 않은 사람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원사료를 챙겨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면 가장 먼저 선행 연구를 찾아서 논문들을 읽습니다. 그리고 원사료를 꼼꼼히 확인하죠. 논문에 인용된 원사료들은 논문을 쓴 사람이 관점에 따라 선택된 것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번 책에는 원사료의 인용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좀 딱딱하고 어렵다고 느끼신 분들도 있지만 원사료를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렇지만 원사료를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 정책에 의해 한문교육이 워낙 들쑥날쑥했기 때문이다. “저 역시 독학으로 한문을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편차가 있어요. 어려운 것은 해석하면서도 정작 쉬운 것이 해석이 안 될 때도 있고요.” 그는 한문과 한글을 대립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어는 한글과 한자가 상호충돌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언어라고 봅니다. 한자를 쓰면 민족 주체성에 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럽인들이 라틴어를 자기네 언어의 모체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문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역관들의 이야기를 했다. “역관 최세진이라는 사람이 왜 『훈몽자회』를 썼을까요?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훈민정음은 한문과 함께 알아야 할 언어이기 때문이죠.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천대했지만 한어에 능통한 최세진은 모국어 문자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학』이나 『효경』 같은 책에 한글로 음과 훈을 달기도 했습니다. 그가 쓴 『훈몽자회』는 『천자문』에 비해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글자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붓의 자유가 제대로 된 역사 기록을 남긴다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붓이 자유로워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역사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역사를 쓰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항상 승지와 사관이 왕을 따라다니면서 모든 행동을 기록했으니 왕의 행동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죠.” 『조선왕조실록』에 쓰인 글들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그 당시 사관들은 세상과 불화(不和)하는 존재였습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글을 썼죠. 직업윤리가 굉장히 투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보다 훨씬 더 ‘제대로’ 역사를 기록해 후세에 남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방대한 기록을 모아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현명한 재상이라고 알고 있는 황희나 맹사성 등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탄핵을 받은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이 기록만 보면 황희와 맹사성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옛날 대관들은 소문만으로도 재상을 탄핵할 수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후에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실록에는 ‘무슨 혐의로 탄핵받았다’라는 기록만 남아있지요. 나중에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다른 사료들을 참고해서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역사책을 쓰는 것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역사에 대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정도의 공부가 축적되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읽으려면 적어도 5년 정도는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접할 수 있는 자료가 크게 늘어났고,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도 많이 늘어나 환경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데, 사실 공부 안 하는 학자들의 위기지 인문학의 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역사와 관련된 좋은 기획을 많이 하려고 하는데 항상 필자가 없다고 아우성이거든요. 저만 해도 지금 제게 들어오는 일거리를 모두 다 하려면 제가 넷이나 다섯이 되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는 학자라는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거나, 적어도 최고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학계에 계시는 분들은 지원부족을 탓하지 말고 먼저 일반 사람들이 넘보기 어려운 경지의 연구를 하고 그 성과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사회의 하드웨어가 되는 것이죠. 학자, 인문학자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분야를 넓히든지, 아니면 깊이 파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지요.”

공부에서는 양보가 없다. “예술가처럼 학자도 세상과 일 대 일로 맞서야 합니다. 패거리가 되면 안 되죠. 혼자 고독하게 사료와 싸우면서 연구를 하는 것, 그것이 역사학자의 길입니다. 4~5년 전만 해도 제가 책을 너무 많이 내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계속 개척해 나가니까 그런 것이지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낸 책들에 대해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객관성이 공존하는 장이다

이덕일 씨가 생각할 때, 지금까지 나온 한국사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가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 두 번째가 유학자들의 사관, 그리고 마지막이 편향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것을 극복했을 때, 제대로 된 역사 기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교양한국사』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을 나름 정리한 것으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한 책입니다. 무엇이 객관적이냐, 이것은 학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근경과 원경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을 볼 때, 각도에 따라 산의 모습이 다르게 변합니다. 역사를 쓰는 사람은 다양한 산의 모습 중 어느 하나만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 가급적 다양한 산의 모습을 많이 보고 그것을 자신의 머리로 정리해 독자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히 역사는 사료를 선택하고, 설명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작업에서 항상 ‘객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있다는 것. “객관성은 노력하는 것입니다. 객관성은 결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료를 보는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객관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객관성을 추구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 역사를 이용하기 위해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이 문제지요.”

역사를 도구화하는 것은, 역사가 쓰일 때부터 대두된, 역사가들이 영원히 경계해야 할 적이다. 역사라는 것은 원래 사실을 엄정하게 기록하는 것이지만, ‘승자의 역사’라는 말에서 보듯 역사만큼 왜곡되기 쉬운 것이 없다. 진실을 기록하고자 하는 사관은 그래서 언제나 고독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사기』를 쓴 사마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받지요. 그래서인지 『사기』에 쓰인 무제에 대한 기술이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무제는 고조선을 멸한 사람이지만 한나라 역사에서 볼 때 그는 굉장히 뛰어난 군주였습니다. 좋은 쪽으로 멋있게 쓰려면 얼마든지 객관적으로 멋있게 쓸 수 있었지만 사마천은 그렇게 쓰지 않았죠. 무제가 나중에 『사기』를 읽고 화를 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마천이 한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런 자세가 과연 바른 역사를 쓰는 자세인지에 대해서는 몇백 년 동안이나 꾸준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적어도 사마천 식의 객관성은 인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대에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사관의 객관성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런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제대로 전하겠다는 의지와 용기 없이는 추구할 수 없다. “조선조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선비 사(士)를 주로 쓰지만 역사 사(史)로도 쓰기도 합니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선비들이 대부분 사관(史官)들이었거든요. 역사를 쓰다가 자기 목숨까지 빼앗긴 거죠.” 그가 생각할 때 민주주의 사회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를 제대로 쓰기 힘든 제약이 있다. “우리 시대의 제약은 사회가 당파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죠. 비판이 아니라 자기편이 아닌 사람을 끝없이 공격하기만 하니까요. 한쪽 편에서 쓰이는, 한쪽 입장만 반영하는 역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와 주제의식,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대중을 위한 역사책을 쓰면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역사서를 쓰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명사, 고유명사입니다. 역사서가 읽기 어려운 이유는 낯선 고유명사와 명사들이 자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단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글 속에 설명을 붙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오는 원칙에 대해서도 말했다. “저는 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야 독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공유 역시 가능해지니까요.”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조선 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을 많이 써왔다. 그가 책을 쓸 주제를 잡는 기준은 두 가지다. “일단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주제의식을 가지고 씁니다. 역사는 사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합니다. 역사는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니까요. 그렇지만 역사에서 재미만 추구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이 그저 재미만 있었다면 지금까지 10만 부가 넘게 팔리진 않았을 겁니다. 왕의 독살이라는 것에 담긴 그 시대의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올해는 새로운 책을 집필하는 것보다 기존에 출간한 책들의 개정판 작업이 더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오국사기』『이덕일의 여인열전』의 개정판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역사책 중에서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물었다. “사마전의 『사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사기』의 기록에는 한국 역사에 대해 왜곡된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가로서 사마천의 자세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 정조대의 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도 좋아합니다. 『연려실기술』은 그 시대의 핵심 사료들을 편집해서 주석을 단 책입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와 근대 역사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사료에 주석을 다는 것을 새로운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동양에서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주석을 다는 전통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연려실기술』은 그 좋은 예죠. 현대에 쓰인 책으로는 문정창 선생의 『한국 고대사』를 좋아합니다. 요즘 읽어보면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재야에 계속 묻혀 지내셨구나,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한국 고대사』는 우리 역사를 확대해서 보고 있는데, 이것이 다 사료상의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좀더 깊게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고대 우리 민족의 강역에 대해 연구하고 싶습니다. 고조선만 하더라도 사료들을 찾아보면 지금 중국의 북경 위쪽까지 펼쳐져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역사서들은 그런 강역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만리장성만 하더라도 한반도까지 이어진 것처럼 중국인들의 역사서에는 써두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죠. 그리고 조선시대의 당쟁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당쟁사 속에 포함된 사람들과 그들의 학맥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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