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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인간 연습』 출간한 조정래

이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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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이어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고 밝힌 『인간 연습』을 출간한 조정래 선생을 만났다.

어느 386세대의 부부가 결혼 후 책을 합칠 때, 각자 가지고 온 『태백산맥』중 누구의 책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입씨름을 했다. 싸움의 결과는 무승부. 두 질의 『태백산맥』을 사이좋게 서가에 꽂아 두었다. 부부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심을 가질 나이가 되면 『태백산맥』을 권해줄 생각이라고 했다. 무료한 감방 생활 도중 우연히 『태백산맥』을 읽은 수인이 마지막 권을 차마 아까워서 읽지 못했다는 사연도 있다.

어떤 작가가 좋은 작가인지에 대해 수많은 의견들이 있겠지만 어떤 작가가 행복한 작가인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을 걸고 쓰고 싶은 테마를 발견해 재능과 열정을 완전히 연소시켜 작품을 쓰고, 그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것. 그런 점에서 조정래 선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이어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고 밝힌 『인간 연습』을 출간한 조정래 선생을 만났다.

이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20세기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 다시 발견한 인간. 목숨을 걸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념이 무너진 자리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새롭게 싹튼다. 그것이 『인간 연습』의 주된 내용이다.

잃어버린 분단사의 복원이었던 『태백산맥』, 을사 늑약에서 해방까지 한민족의 수난사를 담았던 『아리랑』, 치열한 산업화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민초들의 인생역정을 그린 『한강』. 『인간 연습』은 이 세 작품의 마침표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인간과 역사,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생명의 재발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그가 써온 모든 작품에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던졌던 화두들이 응집되어 있는 책이다.

『인간 연습』을 출간한 조정래 선생
“나는 좋은 문학이란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시대의 대표성, 문학성, 그리고 세계성이지. 『인간 연습』은 사회주의 몰락 후 한국 사회라는 시대를 다루고 있고, 한국 전쟁의 의미를 곱씹으며 세계성을 획득하고 있지. 분량은 짧지만 행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어. 꼼꼼하게 읽는 독자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거고, 그냥 읽는 독자는, 뭐, 재미있게 읽겠지.” 그러면서 이전에 인터뷰를 할 때는 책이 너무 길어서 기자들이 대부분 읽지 않고 와서 야단을 쳤는데, 이번 책은 다 읽고 왔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통일은 이념으로는 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통일에 접근해야 한다. 이념이 몰락한 후, 인간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명의 경건함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건 너무 고전적인 결론이지. 사실, 사랑이나 생명 같은 언어는 관념의 언어가 되기 싶지. 그러나 그것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작가의 치열함이야.” 진부함을 진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실력’인 것이다.

세 번째 대하소설 『한강』을 쓴 후, 그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을 써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진짜 못 쓸 것 같아. 『한강』이후의 시대에 대해서도 쓸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그것은 능력 있는 후배작가들에게 맡기고 나는 『인간 연습』같은 경장편만 쓸 생각이야.” 그러면서 왠지 네 번째 대하소설은 죽을 ‘사(死)’자처럼 느껴져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암장되고 왜곡된 역사를 복원하는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이후 거의 씌어지지 않았던 대하소설이 유독 한국에서는 꾸준히 씌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작가는 역사에서 찾았다. “역사가 처절한 만큼 가려진 것이 많은 법이니까.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시련들이 얼마나 많았나. 분단이 된 후에는 한쪽의 역사밖에 볼 수 없었고, 그나마도 왜곡되었지. 그 가려지고 왜곡된 이야기를 다 하다 보면 소설이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

소설가가 쓰는 역사는 역사 이상의 것을 써낸다. 바로 상상력의 힘이다. 역사에서는 ‘만약’이라는 말을 꺼내게 되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니게 되지만, 소설의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만약’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한 가지 시선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숨을 쉬고, 피가 도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당대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는 가설이 없지만 문학은 가설이 있어. 예를 들면, 소련과 미국이 점령하지 않았으면 정치 헤게모니를 누가 잡았을까 하는 것을 소설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암시와 복선, 미래에 대한 예언을 소설에 담았다. “나는 이미 『태백산맥』을 쓸 즈음인 30년 전부터 사회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확신했어. 그래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걸 읽어 낸 독자들은 많지 않았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적어도 세 번은 쓴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집필하지 않는다. 한 자 한 자 원고지에 단어를 써내려간다. “최소한 한 문장을 세 번은 써봐야 자기 문장이 나와. 제일 처음 나오는 문장은 상투적인 문장이지. 그건 자기 것이 아니야.” 한 문장을 가지고 하루 종일 생각할 때도 있다. 차진 느낌, 뭔가 응집된 느낌, 피가 통하는 느낌이 있는 문장을 쓸 때까지 그렇게 지웠다 썼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은 작가에게 즐거운 고통이다. “어떤 대목은 내가 무릎을 칠 정도로 잘 쓴 문장이 있어. 그런 문장을 쓸 때 느끼는 성취와 만족감은 마치 스님들이 열반에 들 때의 느낌과 비슷해. 그런 것이 없으면 절대 글을 쓰지 못하지.”

그에게 수많은 문학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조정래 선생님 같은’ 작가가 되는지를 물었다. 그는 인생을 걸고 문학을 하겠다는 젊은이에게 ‘가난하게 살겠다는 각오’, ‘최선을 다하고 실패해도 좋다는 각오’로 글을 쓰라고 충고했다.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예술의 길이 원래 그렇게 외롭고 혹독한 것이야.”

타인의 영혼을 흔들기 위해 작가는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고통을 선생은 ‘내 몸의 피가 말라가고 하얗게 표백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피곤에 짓눌려 온몸이 조각나는 것 같아. 소설을 쓰다가 ‘이러다 내가 죽지’ 싶은 순간도 많았어. 『태백산맥』을 ‘나자로의 마을’에서 썼는데, 그 때 일 도와주는 수녀님이 그러시더라고. 자기는 수도자의 길만 힘 드는 줄 알았는데 글 쓰는 것은 더 힘들어 보인다고.”

집필할 때 혹독하고 엄격하기로 문단에 소문이 난 조정래 선생이다. 집필 중에는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아리랑』을 쓰고 나서 오른팔이 완전히 굳어져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 팔로 『한강』을 썼다. 『한강』은 한겨레신문에 3년 동안 연재했는데, 연재 원고를 밀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이 잘 때 자고, 남들 놀 때 놀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어? 하루 8시간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사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그 배 이상의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 그리고 영화 등 다른 매체들이 소설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작가는 그러한 현상을 ‘일시적인 것’으로 봤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 다들 할리우드 영화가 망할 거라고 했어. 처음에는 망할 위기에 처했지. 그렇지만 얼마 지나자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화면에 싫증을 냈고, 영화는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지. 뭐든 인간은 새로운 것이 흥미가 끌리는 법이야. 문명의 이기가 나오면 어느 시대든 처음엔 거기에 휘말리는 것이 당연해. 그러니까 기다리면 되. 결국 책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거든.”

작가는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

분단 현실에서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의심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태백산맥』을 냈을 때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지. 누구는 나를 보고 빨갱이라고 하고, 그 반대의 소리도 들었지. 공갈 협박, 방송국 출입금지,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도 당했고.” 그는 자신을 무슨 ‘주의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했다. “나는 작가지. 소설을 통해 진실을 쓰고 싶은 작가일 뿐이야.”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고는 했다. 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 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 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 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 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다.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그가 생각할 때 진정한 작가는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이다. 모든 권력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고, 만해 한용운을 존경한다.

『인간 연습』에서 ‘시민운동’에 대해 말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인간은 수없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고,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민주주의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국민이 권력을 창출해 낸다는 것이야.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가 신장.발전하기 위해서는 감시할 존재가 반드시 필요해. 책에서도 썼지만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유는 그렇게 감시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소설을 쓴다

“나는 도무지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쓸 것이 없다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돼.”
‘한국 민족은 불행했지만 작가는 행복하다’라는 일본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조정래 선생은 ‘나는 도무지 요즘 젊은 작가들이 쓸 것이 없다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돼.’라고 말했다. “게으름이지. 나는 지금도 15년 20년 후의 글 쓸 것이 다 정해져 있어.” 그러면서 유작으로 ‘통일문학’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내가 통일 시대까지 살 수 없겠지. 통일 시대가 되면 분단 시대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푸는 것이 가능할 거야. 그래서 미리 써두고, 통일된 후에 발표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소설을 쓰게 했다. “인간, 그것은 끝없는 불가사이, 끝없는 미궁이며 끝없이 탐구해야 하는 존재지. 바로 그래서 문학이 존재하는 거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마르크스는 ‘인간’을 다 알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아니었잖아. 인간의 본성은 시대에 따라 변하니까.” 그가 생각할 때 인간이 삶의 끝에서 끝내 맞닥뜨려야 하는 인생의 결과는 참으로 허망하다. “인간은 역사의 한때를 결국 치열하게 살고 갈 뿐이야.”

현실은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인간은 탐구할 만한 가치도 사랑할 가치도 있는 존재임을 알리는 것이 바로 그가 문학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독자를 소설로 끌어 들이는 건 이미 얼어붙은 삶을 독서를 통해 죽음의 불꽃으로 다시 태울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작가를 찾는다면 주저할 것 없이 조정래 선생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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