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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함을 믿는 동화 작가 이금이

글쓰기의 밑거름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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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고 쓰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선한 느낌이 난다. 모두 살기 어렵다고,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임에도 이들의 눈에는 평화와 고요함이 담겨있다.

동화를 읽고 쓰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선한 느낌이 난다. 모두 살기 어렵다고,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임에도 이들의 눈에는 평화와 고요함이 담겨있다. 동화를 쓰는 이금이 선생님과 동화를 읽는 YES24 어린이 독서도우미 클럽(//club.yes24.com/jrbook)의 어린이 독서 도우미 여러분이 YES24가 마련한 작은 회의실에서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독서는 영혼의 창고를 채우는 일

체구가 아담한 이금이 선생님은 처음 강단에 올라갈 때는 약간 긴장하신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아이를 키우며 사는 평범한 일상과 동화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동화가 쓰이는 과정과 그때 겪는 기쁨과 고통, 작가로서 독자의 소중함을 깨달은 이야기까지 선생님의 동화만큼이나 구수하고 맛깔스런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처음 강연제의를 받았을 때는 ‘독서도우미 클럽’이라고 해서 뭐하시는 분들인가 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모임이 있었네요. 저는 아이 키우면서 누군가와 어린이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서 참 많이 아쉬웠어요. 이런 모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여러분이 참 부럽습니다.”


YES24 어린이 독서 도우미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이금이 작가


이금이 작가에게 책은 자신을 위해 읽는 것이며 영혼의 창고에 무엇인가를 넣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책을 읽는 경험이 소중한 것은 책을 매개로 어른과 아이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항상 한다고 했다.

“어린이들이 읽을 때는 ‘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조금 자란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고, 어른들이 책을 읽고 나서 ‘애들 책도 볼 만하네’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엄마가 아이의 밥상에 정갈하고 맛있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를 올리는 것처럼 이금이 작가도 동화 속에 그런 마음을 담고 싶었다. “또, 제 아이들이 엄마 책 때문에 어디 가서 창피하지 않도록 쓰고 있습니다.(웃음)”

이금이 선생님은 강연 도중 참으로 여러 번 참석자들을 웃겼는데 그 중 몇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친정어머니가 제 동화를 보고 우셨대요. 그래서 어디에서 우셨는데요, 라고 여쭤보니까 ‘얘, 침대에서 울지 어디에서 울어’라고 하셨어요.”(폭소) 첫 번째 작품집 제목에 얽힌 비화. “동화집 제목이 『영구랑 흑구랑』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독자 분들이 ‘선생님 저 선생님 동화 참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영구와 땡칠이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책이 비교적 많이 팔렸는데 아마 그중에는 ‘영구와 땡칠이’인 줄 알고 사신 분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두 번째 폭소)


가슴을 떠나지 않는 이야기는 작가의 숙명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의 소재를 발견하는 걸까? 이금이 선생님의 경우, 작가가 소재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소재가 작가를 찾아온다. 일상에서 만난 여러 이야기 중 유독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찾아온 이야기다. 그는 그렇게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으면 왠지 빚을 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동화작가와 아이가 서로 이메일을 교환하는 내용의 동화가 있었어요. 그 작품을 읽고 ‘아, 나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나는 왜 이런 작품을 못 썼지?’ 하고 살짝 작가에게 질투가 났어요.(웃음) 그런데 그건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죠.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떠나지 않는 이야기는 작가의 숙명이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이 그랬다. 남편의 고향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의 집에 유난히 잘 놀러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동화에서는 오빠와 여동생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누나와 남동생으로, 할아버지는 정신지체였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돌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마을의 천덕꾸러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재혼한 생모에게 가게 된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역시 천덕꾸러기였을 것이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문학적으로 잘 써야겠다, 완성도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에서나마 좋은 새엄마를 만나게 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동화를 이렇게 쓰면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질 것 같다는 주술적인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으면 왠지 빚을 진 기분이 든다는 이금이 작가



이금이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YES24 어린이 독서 도우미들


동화작가 이금이를 만든 밤티 마을 이야기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은 십 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로 독자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두 번째 이야기 『밤티 마을 영미네 집』, 세 번째 이야기 『밤티 마을 봄이네 집』이 출간된, 진귀한 기록을 가진 동화다.

“동화작가로 살면서 어린이들에게 팬레터를 받아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내 책을 읽는 독자가 있구나 하고 겁이 더럭 나더군요.”

아이들은 계속 큰돌이와 영미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고 아우성쳤다. “속편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완결된 이야기니까요. 한편으로 아이들이 뒷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것이 신기했어요. 어른 독자들은 보통 그러지 않으니까요. 십 년 동안 밤티 마을 이야기를 쓰면서 아이들은 작가가 이야기를 완결지어 줘야 진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았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책을 읽고 그 뒤를 궁금해하자 작가는 뒷이야기를 쓰기로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해서 『밤티 마을 영미네 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 아이들을 어떤 엄마와 살게 할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새로운 가족 형태가 많이 등장하는 지금 굳이 아이들을 친엄마와 살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팥쥐 엄마와 살게 했죠. 팥쥐 엄마가 이제 진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이를 가지는 것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저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거죠. 천사표 팥쥐 엄마도 자기 아이가 생기면 큰돌이와 영미를 차별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아이고, 어린이 독자의 요구는 끝도 없다. 그렇지만 이 맛이 바로 작가가 글 쓰는 맛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의 요구가 구체적이었어요. ‘팥쥐 엄마가 낳는 아이는 딸로 해주세요’라고 편지를 쓰는 아이도 있었고 ‘이런 사건을 꼭 넣어주세요’라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아예 써서 보낸 애들도 있었고요.(웃음) 제가 ‘얘들아, 선생님이 이거 쓰면 너희는 다 커서 동화 안 읽을 건데’ 하면, 애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어른이 돼도 큰돌이 이야기 읽을 거예요’ 그러더라고요.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어요. 그래서 결국 쓰게 되었습니다. 십 년 동안 세 권의 이야기를 쓴 셈이네요.”

네 번째 이야기도 써달라는 편지가 오고 있지만 작가는 ‘쓸 생각이 진짜 없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듣고 있던 참석자들도 웃었다.

독자가 일등공신이라면 이등공신은 ‘팥쥐 엄마’라는 인물이다. 팥쥐 엄마는 무너진 한 가족을 다시 행복하게 만드는 기적을 베푸는 사람이다. 세상사를 순리대로 흐르게 하는 선량함, 건강한 모성과 모든 것을 보듬어 안는 인정을 가진 사람이다. “이 동화를 쓰면서 저 역시 팥쥐 엄마를 많이 좋아했고, 많이 의지했어요.” 어쩐지 팥쥐 엄마의 선량함과 인정은 작가 이금이와 겹쳐 보인다.


팬에게 싸인하는 이금이 작가



엄마들에게 인기 만점!



작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어린이


이금이 선생님에게 궁금한 몇 가지 것들

강연이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이금이 선생님에게 독자들이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왔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왜 동화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것.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쓰는 사람,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가진 꿈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썼는데, 내 글에는 항상 어린이가 등장했어요. 그래서 동화작가가 되었습니다. 제가 동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동화가 나를 선택했다 생각해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동화작가 이금이는 더욱 행복해졌다.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는 것이 동화작가로 산 세월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금이 작가는 자기 아이뿐 아니라 남의 아이도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인터넷 블로그(blog.naver.com/bamtee94)에 찾아와 댓글을 남기거나 쪽지를 날리면 꼭꼭 답장을 해 주는데 이것은 작가의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통해 요즘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이금이 작가는 요즘 아이들은 되바라져 보일 때도 있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것이 멋지다고 했다. “작가가 꿈인 딸애 또래 아이와 메일을 주고받고 있는데 그 아이 이야기를 자꾸 딸애 앞에서 하니까 딸애가 은근히 그 애를 질투하더라고요.(웃음)”

이금이 선생님이 생각할 때 동화작가의 제일 덕목은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를 이해할 수 없고, 아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 동화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없다. 동화작가로 살아서 좋은 점은 여럿이지만 자기 안의 아이와 언제까지나 만날 수 있는 점, 몸은 늙어도 심장만은 여전히 아이일 수 있는 점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소설 쓰시는 분은 하도 고민을 많이 해서 머리가 허옇게 된다고 하는데, 동화 쓰시는 분은 안 늙는 것 같아요. 동화를 쓰면 항상 동심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이금이 작가 작품에는 ‘착한 사람’들만 나온다는 질문을 누군가 던졌다. 작가는 잠시 웃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비판 많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다 착하냐 하면 제가 정말 그렇게 믿거든요. 삶이 힘들어서 겉은 악하게 보여도 그 더께를 모두 걷어내면 따뜻하고 착한 마음이 있다고 믿어요. 저도 현실이 행복하고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인간의 따뜻한 심성을 작품에서 느끼게 하고 싶어요.”

책보다 컴퓨터와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독서를 어떻게 시켜야 하나를 고민하는 엄마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인생에 위안을 주고, 무엇인가를 알고 느끼게 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나게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 독서교육을 보면 독서를 어떤 목적을 위해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들 독서에 바라는 건 한 가지라고 했다. “책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고, 책을 읽고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 집 아이도 독서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더 좋아해요. 컴퓨터를 할 수 없으니까 그제야 책을 읽더군요.(웃음)” 여기저기서 공감의 웃음이 터졌다.

작가로서 독자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언제나 독자 분들의 격려를 받을 때마다 힘을 내자, 열심히 좋은 글을 쓰자고 다짐합니다.” 한 시간의 강연과 한 시간의 질의응답 시간, 두 시간의 일정이 모두 끝난 후에도 이금이 선생님과 어린이책 작가연구 소모임 분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요즘 청소년들의 이야기 『주머니 속의 고래』

어린이책 작가연구 소모임 분들과의 일정이 끝난 후 근처 찻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두 시간 동안 강단에 서서 이야기를 했으니 지칠 만도 했는데 이금이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많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를 나눠주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독자 분들 만나면 힘이 나요. 엄마들이 토요일 날 나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나를 만나겠다고 그 귀한 시간을 쪼개서 오신 분들이니 참 고맙죠.”

이금이 작가는 얼마 전 자신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요즘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을 담은 『주머니 속의 고래』를 출간했다. 『유진과 유진』 다음에 쓰인 청소년을 위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소재로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런 작품은 많이 나오기도 했고 작가로서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사는 아이들과 청소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렸다.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다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시니까 어떠신가요?”
“어떤 분이 『유진과 유진』을 보시고 저에게 청소년물이 잘 맞는 옷이라는 하셨는데, 정말 그래요. 일단 쓰는 재미가 있어요. 동화는 어린이들이 읽으니까 묘사나 단어에 제약이 많지만 청소년을 위한 작품은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요.”

이번 작품 『주머니 속의 고래』를 읽고 작가의 아들은 ‘진짜 우리 이야기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는 모든 아이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에게는 저마다 자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은 그것을 믿어줘야 한다.

“아이들은 다 가능성이 있어요. 재능이 있건 없건, 꿈이 있건 없건 다 자신의 길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골고루 애정과 관심을 배분했다. 보통 어른들이라면 단지 머리에 물을 들이고 연예인을 꿈꾸는 것만으로 야단을 쳤을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진짜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가 그려낸 아이들이 참 예쁘다. 상처가 있는 아이는 상처가 있는 대로, 고민이 있는 아이는 고민이 있는 대로, 딱 지금 우리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책으로 들어간 것 같다. 그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기에 더 아름답다. 공부를 못해도, 남들보다 잘난 것이 없어도 이 아이들은 빛이 난다. 그것이 아이들이 가진 힘이다.

아이들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때로 현실에 부딪혀 깨지고 상처 입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이겨낸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아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아이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유진과 유진』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쓰면서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른들에게 달려갈 수 없는 분위기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저는 그 점이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네가 힘들어 도움을 청했을 때 너를 거부할 어른들은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에서 어른들은 아이가 말하기 전에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금이 작가는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더욱 판타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주머니 속의 고래』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글쓰기의 밑거름은 일상

이금이 작가는 ‘주변 사람이 답답해 할 정도로’ 느긋한 성격이다. 또, 스스로 좁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했다. 글을 쓰기는 하지만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드물고 따로 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동화’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는 어땠을까?

“요즘으로 치면 ‘범생’이라고 할까요.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냥 안 했어요. 자유분방하거나 과감한 것과도 거리가 멀었고. 기질 자체가 온건한 편이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유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키우려고, 넓은 세상으로 일찍 떠나보내려고 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내가 쳐놓은 울타리에 아직 닿지도 못했을 걸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대리만족이 아니었을까 해요.”

글은 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오전 시간을 이용해 마루에서 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집이 텅 비어서 따로 서재나 집필실이 필요 없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글을 쓰는 엄마 옆에서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곤 한다. 글이 잘 안 풀리면 이를 닦는다고 했다. 컴퓨터 앞에서 끙끙거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이를 닦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 엄마로서의 일상이 그에게 작가로서의 충전 시간이고, 글을 쓰는 밑거름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아이를 이해하고, 이야깃거리를 찾아낸다. 그의 작품이 가지는 사실성은 평소 세밀하게 어린이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런 그를 보고 작가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주변 사람이 많다. 왠지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은 작가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이 유세 떨 일은 아니잖아요. 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누가 안 쓴다고 혼내는 것도 아니고 쓰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시험 공부한다고 짜증 내면 ‘얘, 엄마가 글 쓰다가 안 풀리면 짜증 내니? 공부는 너희를 위해 하는 거잖아’ 이러면 조용해지죠.(웃음)”

그에게 작품을 쓰는 일은 습관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물론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이 이야기로 제대로 안 풀릴 때 고민하는 것이야 세상의 모든 글쓴이들의 공통된 고통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그는 처음 등장인물을 떠올리고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 이야기의 처음을 쓰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후반부는 인물들이 스스로 끌고 가는 부분이라 한결 수월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엄마보다는 작가가 먼저 반응한다. 요즘 아이들의 끔찍한 비행을 들을 때도 섣불리 그 아이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는 동화작가이기 때문에 결과보다는 과정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것을 하게 한 동기에, 아이가 한 나쁜 행동보다는 아이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과 사회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그것이 동화작가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작품 속에서 아이를 야단치거나 비판하는 작가라면 그 사람은 동화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본드를 흡입하고, 다른 아이를 따돌리고, 혹은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그 아이를 야단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적어도 동화작가만은 철저하게 그 아이 편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글을 쓰는 작가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이금이 작가도 책읽기를 무척 좋아한다. 강연회에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읽던 책이 무척 재미있어서 지하철에서 내리기가 싫었단다.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느냐고 묻자 강숙인 선생님의 『초원의 별』이라고 대답했다.

외국작가들의 동화를 읽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검증받은 작품만이 엄선되어 번역되잖아요. 그 사람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아, 나의 경쟁상대는 한국 작가가 아니다. 바로 이들이구나’ 하고 생각해요. 그리고 긴장하게 돼요.”

경쟁상대라고 해서 그 작가보다 책을 많이 팔겠다든가 더 유명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책, 더 감동을 주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 『소공녀』『소공자』『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으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을 꿈꿨다. 그가 쓰는 많은 작품이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건강하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은 어쩌면 이 동화들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그의 욕심은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글을 쓰는 작가다. “사실 이건 욕심이라기보다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쓴다면 남들보다 저 자신에게 먼저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쉽게 타협하고 싶지도, 지금 쓰는 것에 안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의 책들이 나무 낭비는 아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웃음)”


작가와 함께 단체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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