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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이 어우러진 유럽 책마을, 지역을 살리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책을 살리고 만드는, 책방과 출판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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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서 올해 초까지, 미술평론가 정진국 씨는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해 신문에 기고했고,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가 바로 그 책.

시간이 멈춘 듯한 유럽의 작은 마을. 몇 백 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르고, 마을 이곳저곳을 걷노라면 작은 책방들이 저마다 매력을 뽐낸다. 헌 책을 싸게 파는 곳도 있고, 희귀한 서책만을 취급하는 책방에, 어린이 책이나 여행 책, 논픽션, 전쟁사, 사진집 등 주제별로 강점을 가진 책방도 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책과 운명적인 만남을 할 때도 있고, 의외의 보물을 건질 때도 있다. 이 모든 책방은 공통적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역 문화를 살리겠다는 의지에서 운영된다. 유럽 책마을 사람들은 대단한 애서가들이며 고집불통에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집이 아름다운 책마을을 만들었고 사람들을 외진 시골로 불러들였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작년 봄에서 올해 초까지, 미술평론가 정진국 씨는 유럽의 책마을을 탐방해 신문에 기고했고,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가 바로 그 책. 책과 책을 파는 사람들, 각 지역에 얽혀 있는 역사들, 책으로 일군 문화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즐거운 여행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괴로운 여행이기도 했다.

책마을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환대하고, 지역특산물이 독자들을 유혹하고, 강연회와 낭송회같이 독자와 문인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이 있으며, 미술 전시회, 인쇄 전시회를 구경하고,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에 방문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전 유럽의 고서적상과 특수서적 출판 전문인들이 모여 큰 축제가 열린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책과 역사, 문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깊은 통찰이 여정에 아로새겨지면서,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단순한 기행문에서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이 담긴 글이 되었다. 유럽의 책마을을 돌아보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못 하는가’ 하며 무비판적인 모방과 답습을 촉구하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도서문화가 어떤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돌아보게 한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책을 살리고 만드는, 책방과 출판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입니다. 책은 필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공, 서점직원, 독자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죠. 필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만 비추는 현실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유럽의 책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책을 진정 수호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 한 줄 기록되지 않을 평범한 책방 주인이나 애서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진국 씨가 책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농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농촌이 소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그게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 생명의 근본은 땅에, 흙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근본이 요즘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농촌에 생긴 책마을이 지역문화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직접 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유럽의 책마을을 돌아보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사람들은 노는 날은 다 놀아요. 일요일만 책마을 서점을 오픈하는데 택시가 노는 거예요. 그래서 역장님에게 부탁해서 다른 마을에 사는 택시 운전사에게 연락을 해서 겨우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힘들게 찾아갔는데 서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다시 돌아와야 했던 때도 있었어요. 이탈리아 쪽 서점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제대로 변경사항을 알리지 않은 거예요. 북유럽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 아이스크림 하나에 9000원이나 하더군요. 힘들었죠.”

그러면서 책 인세로 여행경비도 아직 다 못 뽑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본의 책마을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조만간 기회가 생기겠죠.”

대부분의 책마을은 농촌에 있어서 관광객들이 찾기 힘들다.

“마을마다 일정이 다르고, 책방을 여는 시기가 달라요. 잘못했다가는 허탕 칠 수 있으니 찾아가고 싶은 분들은 미리 책마을에 연락을 취해서 언제 책방을 여는지 확인하고 가세요.”

대부분 책마을은 겨울에 문을 닫는다. 정진국 씨가 추천하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에서 접근하기 편한 스위스의 책마을들.


지역 문화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유럽의 책마을

유럽의 도서 시장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서점과 도시 지역의 땅값 상승으로 서점과 출판사들이 사라졌다. 사람들도 책을 점점 더 읽지 않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도 작은 농촌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과 돈이 도시에 몰리면서 농촌은 노인들만 모여 사는 활기 없는 곳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럽의 대도시의 집값은 대단히 비싸요. 영세한 출판사나 서점, 가난한 작가들은 이 세를 감당하기 힘들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평범한 농촌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농촌에서도 책을 통해 마을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요. 이렇게 책에 대한 애정과 지역 문화에 대한 애정이 결합하면서 책마을이 탄생한 거죠. 대부분 국가의 지원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제일 유명한 책마을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 책 마을이죠. 그 밖에도 스위스,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3국,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유럽 전역에서 책마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 책마을은 위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생겨난 책마을들은 도시화로 텅 비어 버린 시골의 공동체를 되살리고, 고유한 지역문화를 보호했다. 유럽의 책마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지역 사람의 힘으로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책마을은 중세 시대의 겉모습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책과 문화를 매개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도시와 농촌이 균형 있게 제 몫을 다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책이라는 건 도시의 산물이잖아요. 그런 도시의 산물이 농촌을 되살리는 데 일조하고 있으니 재미있지 않나요?”

유럽에서 책마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처음에는 도시에서 밀려난 서점과 출판사, 작가들이 자신의 터전을 옮긴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책마을이 지역문화를 보호하고 지역 살리기에 도움이 되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마을을 찾으면서 문화의 핵심인 책을 지키는 문화운동의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책은 언제나 혁명의 시작이었다. 책의 힘이 의심받는 지금에도 책은 여전히 공동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유럽 책마을에서 우리의 폐쇄성을 발견하다

유럽의 책마을에서 수백 년 전의 좋은 책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책들은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고 쓴 것들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한 사람의 평생의 열정과 수고가 녹아있는 책. 투박하게 제본되었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책. 그런 책들은 문화와 시대를 뛰어넘어 진정한 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럼 우리의 책 문화는 어떤가.

“수많은 책들이 매일 쏟아지지만 진지한 독자들이 읽을 책이 없어요. 우리의 도서 시장을 보면 코미디에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모든 지적 문화의 기반은 과거로부터 전해온 지식, 즉 고전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고전 출판에 인색한 나라입니다. 몇 년 전쯤, 미국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휘트먼의 시집을 서점에서 찾았는데, 제대로 된 번역본 하나 없더군요. 에머슨도, 소로도 다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그렇게 힘을 쏟는 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 문화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책 중 번역된 것이 거의 없어요. 코미디죠. 그것뿐인가요? 제대로 된 예술가의 전기도 없?니다. 고흐가 참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내에 제대로 된 고흐 전기가 번역된 것이 없어요. 소설 같은 게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고흐의 진짜 삶과 예술을 조명할 만한 책이 없습니다. 다른 분야야 더 말할 게 없을 정도지요.”

해외의 문화를 접하면서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우리 문화의 폐쇄성이었다. 세계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타문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참으로 보잘 것 없다. 개탄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거기에는 시대적인 아픔도 있었다.

“식민지 지배 시대 때문에 일본 문화를 멀리했고, 위로 중국과는 사회체제가 달라 문화교류가 뜸했습니다. 지금 사방에서 밀려들어오는 문화는 소비만을 강요하고 있죠. 진정한 문화, 그 속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문화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정신적인 빈곤입니다. 문학을 예로 들어 볼까요? 서점에 나가 보세요. 번역되고 있는 것은 주로 베스트셀러입니다. 그것도 몇몇 국가에 한정되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동남아시아의 문학 작품, 동유럽의 문학 작품, 북유럽의 문학작품, 호주의 문학 작품은 읽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모릅니다. 예로, 지금 티벳 사태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티벳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거의 없어요.”

우리는 우리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너무 무지하다. 알고 싶어도 통로 역할을 해주는 책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를 펴낸 정진국

거기엔 번역에 대해 제대로 된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에서도 얼마쯤은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저 자신도 번역을 하고 있지만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참 터무니없이 낮아요. 수고에 대한 대가도, 사회적인 인식도 그렇고요. 그리고 영어와 일어, 몇몇 유럽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훈련받은 번역자 찾기도 힘들죠. 하지만 타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번역이며, 우리는 번역에 의해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문화적 폐쇄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로 씌어진 작품들이 한국에 소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번역자의 역할이 매우 크죠.”

그러면서 출판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우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위에서부터가 아닌 밑에서부터의 혁명을 꿈꾼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를 출간한 후,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책마을’에 관심을 갖고 저자에게 문의를 해왔다. 자문을 구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진국 씨는 그렇게 관이 주도가 된 책마을은 전시행정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며 우려했다.

“유럽의 책마을들이 튼튼히 뿌리박고 있는 이유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책마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의 책마을이 아니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밑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책마을 만든다고 땅값이 오르면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지역 주민은 그곳을 떠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축제가 많은데, 그 중 그 지역의 문화를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축제는 거의 없습니다. 축제가 못되면 빚을 지고, 잘되어도 지역 주민에게는 큰 혜택이 돌아가지 않죠. 일부 장사치들만 돈을 버는 축제가 많습니다.”

그런 천박한 축제가 아니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단단하게 묶어주고 지역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하는 문화가 자라길, 그리고 거기에 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큰 몫을 다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는 인천 앞바다에 커다란 폐선을 구해 그곳을 서점과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내어 놓았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와서 바닷바람도 쐬고, 배 구경도 하고, 책도 본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겠느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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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정진국> 글,사진13,500원(10% + 5%)

저자가 유럽 구석구석 보석처럼 박혀 있는 24곳의 책마을을 돌고 돌면서 만난 수많은 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130년 전 고흐가 쓴 편지, 140년 된 미술사가 라파엘로의 전기, 200년 전 셸리의 편지 등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책자들이 대접받는 동네에서 책과 함께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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