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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잡아먹고 젊음 유지한 남작 이야기 -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고전소설의 캐릭터, 다중인격, 기억 등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를 낯설게 비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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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인식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새롭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은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브랜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익숙한 것에 망원경, 혹은 현미경을 들이대어, 익숙함을 낯선 것을 치환한 것을 이르기도 하다.

난생 처음 본 것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도 우리는 새로움을 느낀다. 여기,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멘트마저 닳고 닳아버린 21세기에 새롭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신인작가가 있다. 『퀴르발 남작의 성』의 최제훈 작가다.

고전 소설의 캐릭터, 다중인격, 기억 등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를 낯설게 비틀어내었다.

표제작이자, 2007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작이기도 한 있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퀴르발 남작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1897년 프랑스 한 할머니의 이야기로, 1932년 뉴욕의 한 작가의 소설 작품으로, 1993년 대학교의 어느 교양 수업의 텍스트로, 2004년 일본 영화감독에게 리메이크된 영화로, 2006년 네이버 블로거의 영화 감상평으로 말해진다. 퍼즐처럼 맞춰져 있는 이야기의 각 이음새는 대단히 정교하고, 에피소드마다 위트가 넘친다.


“이 스토리, 어딘가 허술하지 않은가?”

작가는 셜록홈즈(「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 프랑켄슈타인(「괴물을 위한 변명」) 등 원전의 행간을 후비고는 “그런데 이 스토리, 어딘가 허술하지 않”느냐며(p.172) 해체를 시작한다. 그가 재조립한 완성품이 꽤나 흥미롭다. 이미 완성되어 널리 읽힌 고전은, 어떤 작가들을 좌절케도 했겠지만, 어떤 신인 소설가에게는 맛있는 요리 재료로 다가온 셈.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셜록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소설 셜록홈즈 완역본에 등장하는 셜록홈즈의 캐릭터와 그의 대사까지 빌려온다. 다만 이야기는 새롭게 구성된다. 셜록홈즈에게 의뢰가 들어온 밀실 살인사건, 그런데 그 피해자는 자신의 저자 코난 도일이다.

「괴물을 위한 변명」의 원전이 되는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최제훈 작가는 능청스럽게 요리한다. 프랑켄슈타인이 현대에 전해지면서 원작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소설 속에서 저자 메리 셸리의 인터뷰를 시도한다.

괴물의 의의, 작품의 의도, 사실과 허구의 여부 등등 ‘나’의 열혈 질문에 메리 셸리는 그저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다.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p.250)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심 염려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요리사 최제훈 작가님도 혹시 메리 셸리만큼 쉬크하신 분은 아닐는지. 이렇게 벌인 이야기 난장에 관한 질문에, “뭐, 이유가 있을라고요.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하고 웃고 마는 건 아닐는지 하고 말이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펜 끝으로 세계사와 고전을 마음껏 휘두르는 재치 만점의 작가님은 “관심 있는 소재들에 대해서 어떤 제약도 경계도 없이 자유롭게 작업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기자나 평론가의 시점으로 지레 짐작하듯, 형식의 파괴나 실험 등등의 거창한 의도를 가진 작업은 아니었다는 의미.


해체되고 재조립 되는 이야기, 『퀴르발 남작의 성』


첫 소설집은 그의 흥밋거리가 고루 녹아있는 소설이다. 평소 좋아하는 소설이었다는 셜록홈즈, 프랑켄슈타인 외에도, 세계사,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 등의 이야기가 변주되어 있다. 재료들은 낯설지 않다. 조리법이 새롭다.

「그녀의 매듭」 「그림자 존재」 등은 다중인격인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의 심리에 관한 고민이 담겨있는 소설. “다중인격 소재는 정신병적 소재로도 많이 나오고, 범죄를 변호하는 수단으로도 다뤄져요. 그걸 보면서, 현대인들이 다중인격을 한편 부러워하는 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아닌 자기가 있다는 것. 또 다른 자신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거죠. 하나의 온전한 자신으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인데, 만약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표출하지 못하는 자기가 있다는 얘기니까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마녀의 스테레오 타입에 관한 고찰」은 마녀사냥에 관해 전해저오는 백과 사전식 지식을 특유의 재치로 비틀어댄다.

“본 기고문은 각계 원로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500년 전 마녀사의 전환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점점 희미해져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본문 중 인터뷰 내용은 각자의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발언한 내용을 가감 없이 그대로 실었음을 밝히는 바이다.(p.162)”

이 소설의 부제는 ‘휘뚜루마뚜루 세계사1’ 평소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휘뚜루마뚜루 세계사’라는 부제로 앞으로도 다양한 역사를 소설 속에서 다뤄볼 예정이다. “저는 190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기껏 60~70년 대 세계를 볼 뿐인데, 세계사라는 온갖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역사는 누군가의 기록이기 때문에 편향된 시각도 많고, 다양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뻥도 보태가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다뤄보고 싶어요.”

이 소설집의 가장 개성적인 이야기는는 마지막 에필로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일 테다. “책을 읽을 때는 각 캐릭터가 연극을 하다가, 덮고 나면 이 캐릭터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봤어요. 읽던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지 않을까.” 마치 장난감 방에 불이 꺼지면 제각기 깨어나는 인형처럼 말이다.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에는 이제껏 소설 속에 출연했던 모든 캐릭터가 총 출동해 이야기의 향연을 이룬다.

“첫 책이 나올 때 단순히 단편들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뭔가 난장, 카니발 적으로 끝을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평소에 그런 상상을 많이 하거든요. 이 장을 통해 캐릭터들이 좀더 살아있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고요.” 캐릭터에게 영속성을 부여하고 싶은 욕구. 그가 2010년 자신의 첫 소설집에 불러온 고전적 캐릭터와 이야기는 영생의 존재다.

이야기되면서 흘러온 것들이 지금의 신인작가에 의해 다시 이야기 되고 있다. 결국 이야기는 불멸한다. “이야기라는 건 한편 죽음을 연장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죽음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다른 세계를 탐색하려는 욕망, 제 삶을 연장해 계속된 것을 만들어내려는 욕망 같은 거요.”


“소설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주는 일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그의 소설이 거기서부터 시작한 까닭이 있었다.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 경영학도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대학시절, “책은 좀 읽었지만, 글을 쓸만한 싹수는 보이지 않았던” 경영학도였다. “그땐 그게 꿈이었죠. 이 사회는 경영으로 돌아간다. 나는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잘 살 거라고 생각했죠.” 그는 이야기의 매력을 더 알고 싶었고, 더 쓰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한겨레21(833호) 칼럼에 그를 두고 이런 말을 적었다.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이 첫 책을 보건대 그가 체호프의 매질을 이겨내고 작가가 된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묻자, 근사한 사연을 일부러라도 만들고 싶단다. 그만큼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책을 읽어오면서, 문학의 소중함을 남다르게 간직했다. “이런 저런 고민이 있을 때, 소설을 보면서 공감을 느끼거나 자극을 받을 때가 많았어요.

나랑 동시대 사람도 아닌 작품 속 인물들이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영향을 끼칠 때, 독자로서 신기하고 소중한 생각이 들었죠.”
나도 그런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경영학도는 국문과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도 모른 채(!), 윤후명, 최인석 선생님의 소설 수업을 들었다. 소설 동아리도 들었다. 국문과에서는 타과생은 처음이라고 반겼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간직했던 창작욕이 간질거렸다.

“마음속에 네비게이션 같은 게 있어서, 지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직진하세요. 유턴하세요. 그런 소리를 듣다 문득, 여기서 유턴하지 않으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소리는 정확했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유턴했다. 2000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서울 예대 문예 창작학과에 진학했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에 마음은 평온했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소설가의 길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오히려 잘 몰랐기 때문에 배우는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과 특성상 다른 일을 하고 다시 입학한 친구들이 많았기에 열아홉 부터 쉰까지 각자 다른 삶의 햇수를 거쳐 온 친구들과 글을 쓰던 학창시절은 즐거웠다.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4년 정도 했어요. 그때 저축해놓은 돈이 있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1~2년 아무 일 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더라고요. 일단은 소설만 쓰기로 했어요. 그러다 잘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조금씩 일거리를 찾아서, 계속 글을 쓰자. 이런 계획이었죠.”

진로를 바꾸고, 직장을 그만 두고, 매 선택의 순간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했을 텐데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단번에 신인상 당선이 될 줄 알았던 사람마냥!

이야기하고 싶다는 자신의 진짜 욕구를 알았기 때문일까. 애써 간절하지도 않았고 공연히 초조하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다. 훌륭한 작가들이 조언하듯, 계속 썼다. 아마도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첫 작품 『퀴르발 남작의 성』이 만들어졌다.


“다른 것을 보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랬고, 이번 첫 소설집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자세만 발견한 셈이에요. 어떤 걸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다른 고려사항은 다 지우고 배제하고 제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자세요.”

“기존의 한국 문학의 분위기나 심지어 저는 독자도 배제하려고 해요. 글을 쓸 때만큼은 그게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배려인 것 같아요. 다양한 독자들이 다양한 소설을 읽을 수 있도록, 제가 잘 할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게 가장 큰 예의죠.”

최근에 쓴 연작 소설이 내년 초에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이렇게 책으로 묶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연애와 비슷하단다. “보고 싶고, 만나서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고. 그러다 책이 나오면 마치 이별한 것 같아요. 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고.” 다음 작품 계획을 물으니, 지금은 연애중이라, 다른 사람(작품)은 기웃거리면 안 된다며 웃는다.

“아직 공부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소설에 대해 더 느껴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가 쓰고 싶은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인식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무조건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것은 느낌일 뿐인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뭔가 다른 것을 보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깊이보기, 뒤집어 보기로 새롭게 볼 수 있는 건 아직도 많거든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좋지만, 소수의 독자를 가졌더라도 제가 어떤 글을 쓰든 그분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만큼 열심히 써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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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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