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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엔 혼자 그림 보러 온 사람이 참 많아요”

『그림과 그림자』 출간한 김혜리 기자 “그 외에 다른 방법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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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배우가 출연하는 신작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기자 시사회를 진행하면 그 주에는 그 영화의 리뷰 기사나 주연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일제히 실리게 된다.

스타배우가 출연하는 신작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기자 시사회를 진행하면 그 주에는 그 영화의 리뷰 기사나 주연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일제히 실리게 된다. 이 시즌이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각각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각 매체 담당 기자들의 요리 솜씨를 비교할 수 있는 때. 각자마다 개성이 다르겠지만 배우들이 가장 인터뷰 당하고 싶은 기자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김혜리 기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 가장 상투적이지 않은 기사를 쓰기 때문에! 이 말은 이미 구축된 평판과 이미지를 가지고 마음 속으로 인터뷰이에 대한 기사를 쓴 채 인터뷰를 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단서를 ‘성실하게’ 모아,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단서를 가지고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또한 구체적일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는 인터뷰 기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터뷰 기사가 된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그가 그간 던졌던 몇 가지 질문을 예로 들면,

“<비트>즈음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 말끝을 흐리지 않고 단정히 맺는 말투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연예인뿐 아니라 전문방송인이 아닌 게스트들이 그런 경우가 드물거든요. 내성적이면서도 주술 호응을 분명히 하고 정리해서 말하는 습벽이 있는 것 같은데요.”

- 배우 정우성과의 인터뷰에서

“서교동에서 오래 사시다가 현재 집에서도 10년 넘게 사셨죠. 한곳에 마음을 두면 쉽게 옮기지 않는 편이십니까.”

- 배우 김혜자와의 인터뷰에서

“MBC 예능의 전통적 특징은 공익성과 휴머니티의 강조입니다. <무한도전> 역시 ‘사랑의 도서관’, 달력 만들기 등 봉사와 기부 컨셉의 기획을 비롯해 ‘벼농사’ 특집, 자영업자 살리기를 표방한 ‘박명수의 기습공격’을 만들었습니다.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법도 자선의 형태부터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보여주는 접근법까지 다양할 텐데요. <무한도전>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요?

-<무한도전> 김태호 PD와의 인터뷰에서

* 글쓴이 주: 위 질문에 대한 인터뷰이의 답변이 궁금하시다면, 김혜리 기자의 책 『진심의 탐닉』을 보시면 됩니다.^^


성실함을 무기로 가장 독창적인 글을 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김혜리 기자가 그림 산문집 『그림과 그림자』를 출간했다. 계속 영화에 대한, 혹은 영화와 끈을 맺은 책을 낸 그로서는 첫 번째 탈주이자 2007년에 나왔던 첫 책 『영화야 미안해』 이후, 다섯 번째 책이다. 일년에 한번씩 책을 낸 꼴이니, 기자라는 직함만큼 작가라는 직함이 자연스러울 법도 한대, 지금 인터뷰를 당하러 온 이 사람, 쑥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한다. 문득 이런 표정으로 당대의 명사들과 대면하여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애틋하다.

김혜리. 서울에서 태어나 역사를 공부하고 영화잡지 기자가 되었다. 다른 일을 한 적은 없다. <씨네21>을 만드는 과정에서 쌓인 글을 묶어 리뷰집 『영화야 미안해』 , 인터뷰집 『그녀 에게 말하다』 『진심의 탐닉』을 책으로 냈다. 영화 속 한 컷을 관찰한 짧은 에세이를 모은 책 『영화를 멈추다』『그림과 그림자』와 사촌에 가깝다.


Q 직장생활 하시면서 책을 다섯 권이나 내셨다니, 놀라워요.

주간지 기사 쓰면서 좋았던 게, 일주일 후에 잊혀질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울 수 있다는 거였어요. 읽고 버리잖아요. 그런데서 쾌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야 미안해』 책 내자는 얘기했을 때 굉장히 망설였고 부정적이었어요. 잊혀지기 위해 쓴 글인데 묶어 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고 활자 세대라 책에 대한 존경이 있어서 내가 책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출판사 대표가 인내심 갖고 설득해줬고, 부모님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념으로 줄 수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자고 시작한 거죠.

처음 문을 열기가 어렵지, 자꾸 하게 되잖아요.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인터뷰집은 소속된 회사 출판부에서 내자고 해서 직원으로 거절할 수 없었어요. 회사가 지원한 포토그래퍼와 리소스를 이용해서 쓴 글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내게 됐고요. 기사를 가지고 책을 내는 건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잡지기자라서. 이 직업을 택할 때 좋았던 점이 어른이 되고 일을 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책을 내는 것이 공부한 기록을 묶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이게 독자들에게 가치가 있느냐가 의문이긴 하지만요.(웃음)


“그 외에 다른 방법은 몰라요.”

Q 한편 한 편 글에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에 글에 밀도가 있는 것이고, 이런 점 때문에 계속 책을 내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성실한 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편이에요. 되게 느려요. 그래서 일을 많이 못 맡아요. 대신에 작은 걸 잘해야지 라는 생각은 있어요. 사소한 걸 잘하고 싶어요. 그게 제 깜냥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요. 잘 할 수 있는 걸 깊게 해보자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성실이라기보다 스스로 글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에 노력이라도 해야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료도 되도록 많이 보려고 하고,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사람들 만나서 모르는 건 모른다고 물어보기도 하고. 성실하다고 잘못된 인상으로 비칠 수 있는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몰라요. 일을 어떻게 쉽게 하고, 일의 경중에 따라 힘을 배분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인데 아직도 그걸 못 익혔어요. 다른 방법을 몰라서 이렇게 답답하게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Q 비효율적이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주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캐치할 수 있는 것이구요.

무식한 방법밖에 몰라서 비교를 할 수가 없어요. 콤플렉스가 많아요. 동료들한테 미안해요. 많은 일을 좋아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워낙 제가 게으르고 느리기 때문에 일을 빨리 하는 동료들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지금 이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책도 그렇고, 인터뷰집도 읽다 보면 쓸쓸한 여자의 느낌이 납니다. 그런 얘기 안들으세요?

예전에 편집장님이 제 기사를 읽다가 우신다고 그랬어요. 독자를 업 시키는 기사를 쓰고 싶고, 저도 유머 좋아하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유머를 구사한다고 하는데 대체로 글의 정조가 우울하다고 느끼는 것 같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전 기본적으로 영화가 쓸쓸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잡힐 수 없는 걸 잡으려고 하니까. 불가능한데 수백만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하잖아요.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체념, 패배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은 일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든 그림이든 제가 제 얘기를 직접 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하나의 필터를 통해서 영화나 그림을 얘기하면서 실은 내가 내 얘기를 하고 있구나, 소스라치며 깨달을 때가 있어요. 읽는 분도 그래서 느껴지겠죠. 오래 일하다 보니 제 글을 읽는 분들이 그렇게 짐작하는 것도 있을 거고요.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Q 기자 님의 글을 읽다보면 대상을 무척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 같습니다. 분석이 대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게 뭐 성실한 방법이라 하는 건 아니고요. 단순한 것 같아요. 상투성을 피하려면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대상에 대한 단서를 많이 모으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제 글은 대부분 기사라서 상상으로 글을 쓸 수는 없구요, 스스로도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되도록 단서를 많이 찾으려고 하죠.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생각을 한다거나. 그런데 이 책은 좀 예외적이에요.

다른 걸 좀 쓰고 싶었어요. 그림은 제 전문 영역이 아니니까 이것을 해설하기 보다는 얘가 나를 건드려서 내가 어떤 반작용을 하는지 지켜 보는, 조금 무책임하게 보일지라도 막 나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나 봐요. 그래도 절반 이상은 이 책에 실린 글이 기사로 나갔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소개와 감흥의 비율이 균질하지는 않아요. 어떤 글은 픽션처럼 쓴 적도 있지만, 잡지에 실린 글은 그림에 대한 기본 정보를 주엉야 하기 문에 글들이 고르진 않아요.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Q 다른 그림 산문집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그림을 다루셨습니다. 그림 선정의 특별한 기준이 있으셨나요?

굉장히 많은 미술책이 있잖아요. 많이 소개됐고 미술 전문가들이 해설한 그림은 제 말을 보탤 필요가 없으니까 제외했고요. 특별한 기준 없어요. 제가 그림을 보러 다니다가 그 앞에 오래 서있었던 그림들 많이 골랐고, 좋아했던 글이라도 어떤 글을 썼을 때 다른 그림과 주제가 중복되면 버렸구요.

그간 어떤 아쉬움이 있었냐하면, 물론 도판을 구하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이었겠지만 너무 소개되는 그림만 소개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현대미술의 경우 더 그렇게 느꼈어요. 컨셉 미술, 추상미술이 현대회화의 주류로 알려졌잖아요. 직접 미술관 다니면서 보다 보니까 구상화 등 좋은 그림이 많았어요. 이런 그림들을 본다면 사람들이 더 재미있어 할 텐데,하는 마음이 있었죠. 좀 더 소개를 한다면 현대미술에 대해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을 텐데 싶더라고요. 그림을 책에 넣을 수 있다면 그림에 대한 훨씬 재미있는 책이 나올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역시 못 넣은 것도 있었구요.

Q 미술관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가보셨던 곳 중에서 제일 좋았던 곳을 꼽는다면요?

많이 간 편이 아니라 이런 얘기는 민망한데…..(웃음) 바르셀로나에 가면 작은 현대 미술관이 있거든요. 미술 장서를 갖고 있는 라이브러리가 있는데 그 안에서 미술책을 보는 사람을 보면서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에요. 거기 공간 디자인이 인상적이어서 좋았고요. 햇볕이랑 바르셀로나 도시와 그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다 어우러져 있어서, 그게 맘에 들었어요.

‘유후인’이라는 온천도시가 있어요. 미술관이 주가 되는 건 아닌데, 야마시타 기요시라고 종이 뜯어 붙여 그리는 방랑화가가 있잖아요. 그분의 상설 전시를 한 곳이 온천도시에 있어요. 거기에 꽤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의외의 경험, 그림 보러 간 곳이 아닌데 만난 경험이 인상적이었어요. 로먼 로크엘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다 복제이기 떄문에 포스터 전시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도 로먼 로크엘을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전혀 관계 없는 미술 일러스트레이터의 미술관이 일본 온천도시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걸 발견할 때 반갑고. 그밖에 좋은 미술관이 많은데 책으로도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미술관은 많이 못 가봤는데 이번에 부산영화제 때 부산시립 미술관 처음 가봤어요. <모네에서 워홀까지>라는 진부한 제목이었는데 많이 기대를 안하고 들어갔어요. 제목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름을 그냥 넣은 것 같고, 20세기 프랑스, 다양한 작품 들어있고 길버트앤 조지나 혼타나 꽤 유명한 현대 미술 작품도 한 점씩 있었어요. 그것도 의외였어요. 영화 보러 갔다가 들른 시간에 만난 건데 그것도 꽤 좋았어요.

Q 영화든 사람이든 그림이든 어떤 대상에 대해 글을 쓰고 계십니다. 어차피 나와 별개의 객체기 때문에 100% 다다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통했다 이해했다는 만족을 주었던 순간이나 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쓴 글도 다 기억을 못해서 모르겠는데 그런 건 저 자신은 확인을 못할 거 같구요. 글의 대상이 되는 분이 만족을 표하셨을 때, 괜찮았구나 생각하죠. ‘글을 읽고 내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 폐는 되지 않았구나.’ 안심이 되구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 글을 쓰거나 고현정 씨 인터뷰 글을 쓸 때 시원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리버 피닉스, 제레미 아이언스 글을 쓸 때도 그랬어요. 그런 글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제가 레퍼런스를 찾아서 쓴 게 아니라 늘 생각하고 있고 좋아하고 있고 마음속에 늘 있어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 글이 후회가 적은 것 같아요.

Q 이 책에서 제일 만족스러운 글은 어떤 글인가요?

다 못썼죠 뭐. 내 이럴 줄 알았다.(웃음) ‘뱀을 노래하다’ 제가 처음에 그런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쓰면서 약간 신났었어요.

뱀에 대해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어리석긴. 5분만 눈여겨보면 쓰지 않고선 배길 재간이 없는 것을. 오랫동안 널리 미움 받은 건 알고 있었어. 숱한 그림이 증명하지. 헤라클레스에게 목이 비틀리고, 성모 마리아의 발에 밟히고, 여럿이 모여 봤자 기껏 메두사의 머리칼. (중략) 그러니까 그의 예민함을 이해해야 해.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망연자실하며 신이 그처럼 근거 없는 육중한 증오를 인간 안에 심어놓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만 뱀한테 인류는, 원래 그런 종족인 거야.


“갤러리가면 혼자 그림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참 많아요.”

Q 그림 보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나요?

갤러리가면 혼자 그림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들이 비슷한 걸 원하고 있지 않나 싶을 때가 많은데. 결국 음악을 듣든, 영화를 보든, 사람을 사귀든 간에 내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공간, 장소를 찾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갤러리는 내가 원하는 만큼 그림 앞에 있을 수 있잖아요. 장소로서 시간의 운용 면에서 다른 예술에 비해 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돌아가 그 그림 앞에 설 수도 있고 정 좋으면 액자를 사서 들여다 볼 수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요할 때 볼 수 있으니까, 위로를 받는다고 할 수 있겠죠.

Q 잡지에 실리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꼭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글인지 궁금합니다.

써야 되는 글도 제대로 못쓰고 있는 입장에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소년에 대한 글들을 써보고 싶어요. 소년에 대한 그냥 글일 수도 있고요. 그런 이미지와 영화들을 아우르는 글일 수도 있고요. 왠지 모르게 소년한테 관심이 가는 게 보통은 미숙한 상태고 성인남자로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소년의 상태가 왠지 인간적으로 가장 완성되고 정결하고 완전한 상태라고 여겨저요. 어른이 되어 가는 건 거기서 조금씩 훼손되는 과정이라고 느낄 때가 많구요.

영화 속에서 등 소년의 움직임을 볼 때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절 발견할 때가 많아요. 내가 왜 인간의 아름다움을 소년에게 발견할 때가 많을까? 그래서 책으로 써보고 싶어요. 실제 사람일 때도 있고, 배우나 그림일 때도 있고요. 캐릭터일 때도 있고요. 눈에 많이 띄어요. 성인에게도, 혹은 여자에서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서 많은 큐를 받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이미지를 모아보세요.”

Q 상상의 미술관이라는 말, 굉장히 맘에 들더라고요.

앙드레 말로 책 제목이에요. 그게 이제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잖아요. 그게 이제 타블렛 PC로 서핑하다가 찍으면 바로 저장이 되잖아요. 저는 그런 점이 황홀했어요. 이미지를 낚아채서 내가 갖고 있을 수 있구나 그게 좋았고,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글을 붙였지만, 글을 안 쓰고 모으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그림만 모아 놨더니 잠자는 그림이 많은 거예요. 누워있는 이미지만 너무 많은 거예요.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그런 이미지로 이 책이 꽉 찼을 거예요. 왜 이렇게 잠자는 사람에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이미지를 모아보세요. 나도 몰랐던 공통점이 보이더라고요.

내 안에 고인 물을 조용히 흔들었던, 때로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불붙였던 그림들을 상상 속 화랑의 허랑한 빈 벽에 하나씩 걸었다. 한데 모아놓으면, 그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지도 몰라. 그리하여 내 ‘상상의 미술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에서


Q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뚜렷한 목적이 없는 글이라고 해서 화가 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글로 하고 싶었던 것은 해석이나 해설이 아니라, A라는 게 있다면 A’라는 비슷한 구조물을 세워서, A라는 느낌을 얼기설기 구조물로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어떤 건축물을 보고 받은 느낌을 춤으로 표현한다 그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요요마가 무반주 첼로와 어울리는 건물을 찾아 다니는 프로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데 스스로도 즐기면서 기능적으로 해설하지 않는, 이기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글이거든요.

글은 보잘 것이 없어도 그림은 맘에 드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화가의 그림을 찾아보시고 거기서 파생되는, 그네를 타듯이. 이 그림을 보다가 화가의 친구를 알게 되고 유파를 따라가고. 가로 세로를 불규칙적인 선을 그리면서 길을 잃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저에게 독자들이 ‘이 그림은 어떠세요?’ 보내주신다면 무척 즐거울 것 같아요.



◈『그림과 그림자』 갤러리

레오느르 피니, 「봄의 수호자」(1967)
“「봄의 수호자」는 여자의 생애를 함축한 일러스트레이션인지도 모른다. 예쁜 잔을 하나 둘 모으며 누군가 채워주기만 기다리다가 어느 날 자신이 가장 깊은 잔임을 깨닫는 이야기의 삽화 말이다.” (『그림과 그림자』 69페이지)

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1892~96)
“모든 가면을 벗고 머리를 풀어 민얼굴의 자신으로 돌아온 여인과 하루의 마지막 노동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이 보인다.” (『그림과 그림자』 80페이지)

로버트 브레이스웨이트 마티노, 「가난한 여배우의 크리스마스 디너」(연도미상)
“그렇게 방치된 캔버스의 창백한 공백은 도리어 생의 피로와 고립을 백골처럼 드러낸다. 우리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과 그림자』 119페이지)

피에르 보나르, 「남과 여」(1900)
“보나르는 2년 전부터 비슷한 침실 그림을 그렸으나 「남과 여」에 이르러서야 두 인물 사이에 ‘벽’을 쳤다.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섹스의 환상이 썰물처럼 물러난 후, 남과 여 사이엔 다시 바리케이드가 내려와 있다.”(『그림과 그림자』 18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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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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