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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일베 극복하려면, 온라인의 오프라인화가 필요"

『일베의 사상』 저자 박가분은 왜 일베에 관심을 뒀나 논객의 시대는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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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느꼈다. 온라인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모두 오프라인으로 가져 와야 한다고. 온라인의 오프라인화가 있어야만 사회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뭔가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스스로 집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인정 욕구를 채워야겠다는 게 비뚤어지면 일베가 된다.

언젠가부터 ‘일베’라는 생소한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유머 게시글을 백업해두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발해 이제는 거대한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베에 올려진 글 중 상당수가 특정 지역이나 여성 그리고 일부 정치세력을 거친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베의 모습은 한국사회에 몇 가지 물음을 던진다. 일베는 어떤 공간이며,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질문 말이다. 일베를 둘러싼 논의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부분 단편적인 분석에 그쳤다. 박가분 저자가 쓴 『일베의 사상』은 일베를 종합적으로 보려는 시도다.

 

박가분과 일베, 그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전작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현대사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그는 일베처럼 시사적인 주제와 어울리는 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책과 저자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면 책 제목에 넣은 ‘사상’에 있을 테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책을 저술했을까? 그는 일본의 대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쓴 『일본의 사상』에서 저술 동기를 일부 얻었다고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사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서 사상을 도출해낸다.

 

『일베의 사상』도 일베라는 현상에서 이 사회의 사상을 뽑아냈다. 박가분이 정리한 일베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254쪽)

 

이 책을 낸 뒤, 『일베의 사상』은 영화 <지슬>처럼 한 포털에서 평점 테러를 당했다. 이를 예상했을까? 저자는 평점 테러를 당한 사실도 모르는 눈치였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을 낸 뒤로 일베를 방문하지도 일베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낸 뒤, 저자는 어떻게 지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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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혐오 정서, 어떻게 봐야 하나

 

근황이 궁금하다.

 

항상 해왔던 대로 생활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해서 여기를 떠난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해서 그와 관련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울러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인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을 마무리하고 떠나려 한다.

 

저술하기 위해 일베를 유심히 관찰했다. 특정인, 특정지역을 향한 혐오 정서가 일베 사용자 중 일부에 해당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커뮤니티 공간 전체에 혐오 정서가 만연한가?

 

물론 일베에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막장 패륜 사건만 있는 건 아니다. 눈팅만 하는 사람도 있고. 댓글만 다는 사람도 있다. 게시물 전체가 문제라 보기는 힘들지만 일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강한 동류애 의식을 전제한다고 본다. 나도 병신이고, 너도 병신이다,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는데 혐오 표현하는 걸 왜 막느냐, 이런 동류 의식 말이다. 눈팅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않나. 눈팅을 지속해서 하는 것만으로 일베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

 

일베에서 보이는 혐오 정서가 인터넷 어디를 가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도 처음에는 감을 못 잡았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느꼈다. 온라인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모두 오프라인으로 가져 와야 한다고. 온라인의 오프라인화가 있어야만 사회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뭔가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스스로 집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인정 욕구를 채워야겠다는 게 비뚤어지면 일베가 된다. 비뚤어진 경로가 아닌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인상적인 대목이 논객의 시대는 갔다는 부분이었다. 본인이 청년논객이라 불리면서 이렇게 지적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청년논객이 바라던 칭호는 아니었다. 일베를 보면서 논객의 시대가 끝이 났구나, 하고 느꼈다. 일베를 보면 일상의 욕구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논객이 이런 욕구를 대변하지 않는다. 어떤 집단, 어떤 논객이 대신하지 않고 당사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일베는 그걸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했다. 왜?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단이나 방법을 본인이 모르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마련해 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강준만의 유산이 이후의 인터넷 논객들에 의해 배반당했듯이, 인터넷 논객들이 얻은 권위도 일베와 같은 새로이 출현하는 공격적인 조롱 문화 앞에 보잘것없는 것이 되었다.

인터넷이 (공론장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한 오늘날에는 이제 평범한 유저들도 간단히 검색만 하면 인터넷 논객들이 과거에 한 모순적인 발언이나 행적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얼마든지 비웃을 수 있게 되었다. (82쪽)


박가분의 사상, 관심사, 글쓰기



근작인 『일베의 사상』은 모스의 증여론, 하버마스의 공론장, 아즈마 히로키와 데이터베이스, 미시마 유키오의 미학 등 다양한 사상이 논의에 수시로 개입하는지라 그렇게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보다는 훨씬 문장이 간결하고 쉽다. 혹시 그 사이 박가분에게 인식론적 단절이라도 생긴 걸까?

 

전작보다 문장이 짧고 쉬워졌다. 계기가 있었나?

 

이 책을 쓸 때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큰 이야기, 사상적 논의가 꽤 많이 들어가긴 했다. 일베라는 괴물을 보면서 이런 큰 이야기, 사상적 논의가 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회의가 들었다.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 속이지 말자, 이렇게 쓰다 보니 문장도 짧아졌다. 쓰고 나서 보니, 나란 사람도 별거 아닌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앞으로는 최대한 짧고, 쉽게 쓰려고 한다.

 

시사적인 주제로 쓰는 마지막 책이라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자.

 

원래부터 일베에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일베를 징후로 봤고, 이게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나 한국사회에 폭로하는 바가 더 흥미가 있었다. 솔직히 시사적인 문제를 잘 모른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훨씬 많다. 원래 관심사는 사상이다. 대학원으로 진로를 잡았고, 시사적인 문제에는 순발력 있게 글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글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일베와 같이 징후를 표출하는 사건이 나타나면 쓸 수 있지 않을까?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은 어떤 전공인가?

 

경제학이다. 궁극적으로는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하려 한다. 맑스주의 경제학을 하고 싶다. 요즘은 정량적으로 됐는데, 원래 경제학은 담론적인 학문이다. 석사 때 할 공부는 내가 쓴 책과 좋아했던 담론과 무관할 것 같다. 두 세계를 번갈아가면서 낮과 밤을 따로 살 듯하다. 2년은 이 기간을 견뎌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특한 독서 이력이다. 경제 전공하는 사람이 인문이나 사회 쪽 사상에 관심이 생기기 쉽지 않다.

 

제목이 좋아서 서동욱 선생의 『차이와 타자』를 처음으로 집어 들었다. 생소한데 재미있었다. 그 이후에 진중권, 이진경, 고미숙이 쓴 책을 찾아 읽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진, 지젝, 바디우에 와 있었다. 이정표가 된 사람이 있다면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 지젝 번역자 이성민.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을 따라 읽다 보니 이렇게 됐다. 아즈마 히로키를 최근에 읽었는데. 일본 현대 사상가에 관심 두게 됐다.

 

일베의 사상이란 게 있다면, 박가분의 사상은 무엇일까?

 

사상이랄 건 없지만, 의제는 있다. 저마다 세계관이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보편적인 기획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면서, 알던 사람의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궁금했다. 앞으로는 활동은 지양하려 한다. 다만 놓을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시간강사 문제 등 내가 당사자라 생각하는 문제가 그렇다. 이전에는 글쓸 때 운동 전반에 대해 갖고 왔던 생각을 많이 썼는데 앞으로는 운동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학문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했다. 잠자고 먹는 시간 빼면 책 읽고 글만 쓸 것 같은 인상이었으나, 그에게도 쉬는 시간은 필요했다. 독서와 집필 이외에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박가분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답했다. 최근에 본 작품으로는 <알바 뛰는 마왕님>. 인간 세계에 떨어진 마왕이 마력을 잃고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작품인데 그는 이 시대의 노동현실을 드러내는 좋은 애니메이션이라 평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사회의 구조에 관해 생각하는 천상, 학자였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답게, 학교에서는 생활도서관이라는 자치 공간에 몸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에서 자치 공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지 않나. 생활도서관은 어떤 편이가?

 

생활도서관은 어려운 곳과 비교하자면 잘 되는 편이다. 일단 장소가 있으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요즘은 자치 활동이 어렵다고 하지만, 장소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장소를 얻었다면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끌어들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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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활동, 저술 계획은?

 

대학원 수강생으로 공부할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건데, 앞으로 쓸 책은 레닌에 관한 것이다. 저술에 들어가진 않았고 제목만 정했다. 『레닌주의 2.0』.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고 느낀 점이 좀 들어가겠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일베의 사상』을 탄생하게 해 준 일베에 한 마디를 한다면.

 

너희들은 재미없어, 진부해, 이런 거고. 그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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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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