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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다시 쓴 황경신

여덟 살 소녀와 『어린 왕자』의 보아뱀이 함께한 시간 『한 입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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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신 작가 특유의 차분한 시선과 섬세한 감성이 새로운 연작소설 『한 입 코끼리』에 담겨 돌아왔다. 이야기는 『어린 왕자』 속 잠들어 있던 보아뱀과 그를 자신의 세계로 불러들인 여덟 살 소녀가 함께했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질문들로 가득 차 있고, 보아뱀의 답변에는 무심코 스쳐 지났던 삶의 본질들이 감춰져 있다.

여덟 살의 여름, 소녀는 보아뱀과 만났다. 『어린 왕자』 안에서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고 있던 그와 대화하기 위해 반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아뱀은 긴 잠에서 깨어 소녀와 재회했다. 그 후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소녀와 함께 열여덟 편의 그림 형제 동화를 읽었다. 고작 여덟 해를 산 아이에게 동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물음표로 가득했고, 삼백일흔세 번의 계절을 지나 온 보아뱀에게 소녀의 질문은 언제나 새로웠다.

 

『브레멘 음악대』의 동물들은 왜 브레멘까지 가지 않았는지, 『장화 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어른들은 왜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한 건지, 소녀는 보아뱀을 향해 묻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에 보아뱀은 지혜가 잔뜩 묻어있는 이야기로 응수한다. 무언가를 이룸으로써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그러므로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이 무의하다는 판단은 쉽게 내리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보아뱀은 『브레멘 음악대』를 통해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 같은 걸 그대로 받아들이진 말라”는 조언을 들려준다. 그리고 『장화 신은 고양이』를 읽으며 소녀에게 되묻는다. 소녀와 달리 동화 속 인물들이 고양이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여덟 살 아이는 생각한다. “고양이가 지나간 초원이나 숲에 아마도 아이는 없었을 것”이라고. 깜찍한 답변이라고 피식 웃음을 흘릴 무렵,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슴을 가격한다. “어른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면, 자신의 멍청함을 들킬 거라고 생각한다”는 소녀의 말을 선뜻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입 코끼리』의 보아뱀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는 항상 질문을 해야 해. 어른이 되어서도 말이야. 질문을 하는 건, 절대로 창피한 게 아니야. 제대로 된 질문은 대답보다 힘이 세니까”라고. 그의 바람대로 소녀는 끝없는 질문을 쏟아내고, 돌아오는 보아뱀의 답변을 듣고, 다시 또 다른 질문을 품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살아간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점차 눈뜨게 된다. 그 시간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작가와 함께 여덟 살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삼백일흔세 살의 보아뱀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어이없는 일들을 죄다 받아들일 수 있는, 둥글고 말랑말랑한 여덟 살”로 돌아갈 때 우리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그리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이라는 단어를 굳이 써야만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보아뱀을 보며 우리가 지닌 세월의 무게가 그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보아뱀처럼 유연한 태도로 삶의 깊이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소녀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이미 찾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문이 짙어질수록 나만의 보아뱀이 간절해지는 순간, 미처 만나지 못한 보아뱀을 대신해 황경신 작가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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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보아뱀이 『한 입 코끼리』 속으로 들어온 까닭


『한 입 코끼리』의 소녀처럼 작가님도 여덟 살 때 처음 『어린 왕자』와 만나셨다고요. 


외갓집 창고에서 『어린 왕자』를 발견했어요. 이모들 삼촌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요. 책을 펼쳐 보니까 안에 그림이 있어서 동화책인 줄 알고, 제가 읽어도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읽기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어린 왕자』는 제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전에도 그림 동화들을 읽었겠지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린 왕자』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었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어른들은 제가 없어진 줄 알고 찾아 헤매셨죠(웃음).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에서도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이미 『한입 코끼리』를 집필하고 계셨던 건가요? 


그때는 『한 입 코끼리』를 쓰기 전이었어요.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에서 『어린 왕자』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건 저와 인연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에요. 왠지 제가 써야 될 것 같았고,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됐어요. 그때 읽었던 이야기가 남아 있다가 『한입 코끼리』로 이어진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어린 왕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 책이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고 작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각별한 느낌이 있죠. 마치 제 발로 걸어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때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부 믿었던 것 같아요. 여우가 말을 했구나, 어린왕자의 별이 있구나, 그 별에는 장미가 있구나, 하면서요. 그런데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는 혼란스러웠어요. 상징이나 은유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해석하는 교육을 받게 된 거죠. 그러면서 오히려 멀어진 것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재밌는데, 왜 자꾸 상징 은유 같은 걸 찾으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했죠.


『어린 왕자』의 보아뱀을 『한 입 코끼리』의 주인공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읽고 나면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들이 많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 주인공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이미 충분한 애정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굳이 더 말할 여백이 없다고 할까요. 그런데 조금씩 등장하는 조연들의 경우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예전에 『그림 같은 신화』에서도 영웅이 아니라 영웅에게 희생당한 괴물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을 썼었는데,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입 코끼리』에서 소녀와 보아뱀의 대화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매개로 이어집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유명한 여러 동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고, 그림 형제가 워낙 많은 동화들을 썼으니까 출발은 그림 형제의 작품으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원작 전집을 읽었고요. 그림 형제의 동화는 오랜 세월을 거쳐서 구전되어 온 것들이잖아요. 구전이라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계속 되풀이되는 거니까요. 신화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이야기들 안에는 이야기의 원형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돼요. 그래서 그림 형제의 작품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워낙 안데르센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데르센의 작품을 다루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한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안데르센의 동화만으로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께서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읽으면서 어떤 질문들을 품으셨나요? 


동화를 읽을 때면 항상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지?’라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게 됐고요. 처음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읽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걸 궁금해 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시 이야기를 보면서 비슷한 궁금증이 생겼겠죠. 예를 들면 「푸른 수염」의 수염은 왜 푸른색인지, 그게 왜 기분이 나쁘다는 건지, 왜 늑대는 항상 나쁜 놈인지, 그런 호기심으로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정답을 알게 될까?


소녀와 보아뱀 모두에게 작가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둘 다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해요. 끝없이 질문하고, 아직 어리지만 어떤 감정이나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하는 부분들이 그렇죠. 보아뱀이 보여주는 현명함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보아뱀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 보아뱀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한 입 코끼리』의 에필로그를 보면서 ‘여덟 살 아이에게는 있고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자문하게 되는데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셨나요?


제가 여덟 살 때 『어린 왕자』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를 믿었던 것처럼, 아이에게는 무턱대고 믿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훨씬 풍부한 세계 같은 것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이 남죠.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라면 대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문제는 어른이 되어도 대답을 모른다는 것, 오히려 점점 더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는 것 아닐까요. 어른이 되어서 궁금한 것들은 어릴 때와는 다르잖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왜 좋아졌다가 또 식어버리는 걸까, 왜 어떤 것은 왔다가 사라지는 걸까,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뭘까, 이런 질문들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대답은 알지 못하죠.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늘 답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강요받기 때문에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글을 쓰실 때 구체적인 독자 한 사람을 생각한다고 하셨는데요. 『한 입 코끼리』는 어떤 이에게 들려주고 싶으셨나요?


예전에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지금의 저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요. 물론 글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 입 코끼리』는 누구한테 들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쓰지는 않았어요. 계속 보아뱀과 소녀를 생각하고, 이 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둘이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해 했죠. 헤르만 헤세는 작품의 등장인물과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 정도 경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늘 생각하게 되는 건 첫 번째 독자인 것 같아요. 『한 입 코끼리』를 쓰면서 출판사 친구들과 같이 읽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걸 써서 보여주면 그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생각을 했죠. 첫 번째 독자들이니까요.


어린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면서 “동화가 왜 그렇게 슬플까, 나중에 내가 크면 행복하고 즐거운 동화를 써야지”라고 생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입 코끼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저는 동화에서 따듯한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걸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로 말하지 않더라도 다 읽고 났을 때 ‘아, 따듯해’ 라는 느낌이 드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잔인하거나 쓸쓸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어요. 물거품이 되어서 죽어버리거나 잡아먹히는 거죠.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주인공들이 나와서 신나게 놀고 웃으면서 끝난다고 해서 따듯하지는 않잖아요. 행복과 기쁨의 밑바탕에 있는 것이 슬픔일 것 같아요. 만약 슬픔이 없다면 웃길 수는 있겠죠. 그런데 따듯함은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한 입 코끼리』가 제가 원했던 동화인지 아닌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한 1년 정도 지나면 알지 않을까요?


『한 입 코끼리』를 쓰시는 동안 따듯하셨나요?


네, 저는 좋았어요. 마치 보아뱀이 제 잠자리를 계속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아마도 『한 입 코끼리』의 독자들은 보아뱀 같은 존재를 그리워하거나 갈망할 것 같은데요. 작가님에게도 보아뱀 같은 존재가 있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 항상 서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잖아요. 사실 좋아하지 않으면 궁금한 게 없죠. 연애할 때 질문이 많아지는 것처럼요. 일방적으로 한쪽은 질문만 하고 다른 한 쪽은 대답만 하는 관계는 없을 것 같아요. 만약에 그런 관계가 있다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는 제가 소녀의 입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보아뱀의 입장이 되기도 하는 거죠. 똑같은 질문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같이 나누기도 하고요. 그런 소중한 친구들이 늘 제 곁에 있죠. 운이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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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보아뱀이 나눈 이야기는 ‘상실’


<페이퍼>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하신 작품들과 <페이퍼> 사이에 접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페이퍼>에서 글을 쓸 때는 제 스타일대로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잡지에서 일을 했다거나 원고 청탁을 받았다면 아무래도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페이퍼>가 아니었다면 제 스타일을 못 찾지 않았을까 생각돼요. <페이퍼>는 항상 모든 기자와 필자들에게 ‘너만 쓸 수 있는 글을 써달라’는 요구를 했고, 저도 그런 식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아요. 제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한 입 코끼리』에서 소녀는 “어른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면, 자신의 멍청함을 들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기자와 편집인으로 활동하시면서 이 이야기에 공감하셨던 적은 없나요?


<페이퍼>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제가 좋아하는 분들만 인터뷰했기 때문에, 인터뷰이가 금방 알아채더라고요. ‘나를 인터뷰하러 온 이 사람은 정말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아버려요. 사람이 왜 모르겠어요. 강아지나 고양이도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잖아요. 인터뷰이가 생각할 때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구나,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 나쁘게 쓸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판단되면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순조로운 것 같아요.


보아뱀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굳이 써야만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하죠. 


사실 영원이라는 건 없잖아요. 그건 관념이죠. 물론 존재는 하지만 우리는 정말 영원히 모를 어떤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그 단어를 쓰잖아요. 사랑이라는 말도 그렇죠. 그 감정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써요. 그 말을 써야만 표현되는 것이 있는 거죠. 그런 관념을 믿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삶은 절절한 허구”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예를 들어서, 연애가 끝난 후에 남아있는 건 기억뿐이잖아요. 굉장히 멋있는 곳으로 오래도록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정말 거기를 갔었던가?’ 그런 느낌이 들고요. ‘그 일이 정말 나한테 있었던 일일까?’ 싶은 거죠. 그런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그 사람을 만났을까? 이게 정말 내 삶이었나?’라고 생각되는 일들이요. 아마 경험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잊어버리는 것도 많죠. 누가 얘기를 해주면 ‘내가 정말 그때 그랬어?’라고 반응하게 되는 거 있잖아요. 그럴 때면 ‘그럼 이건 도대체 누구의 삶이지?’ 생각하게 되죠.


결국 소녀와 보아뱀이 나눈 이야기는 무엇에 관한 것이었을까요?


상실 같아요. 무언가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할까요. 다 그렇잖아요. 누구를 만나서 잘 지냈는데 어쩔 수 없이 헤어지기도 하고, 정말 좋아했던 물건도 언젠가는 고장이 나거나 없어지거나 잃어버리죠. 나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과 멀어질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그러고 나서 뭐가 남는가’라는 의문이 들죠. 『한 입 코끼리』의 소녀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보아뱀과 함께 했던 건 뭘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질문이 작가님에게도 남아있는 건가요? 


그렇죠. 『한 입 코끼리』의 이야기에서는 ‘둘이 함께한 시간 후에 남는 건 뭘까’라는 질문이지만 다 마찬가지겠죠. 여행이 끝난 후에는 ‘나는 도대체 왜 여행을 갔다 온 걸까’ 싶고, 죽기 전에는 ‘내가 살았던 건 뭘까’라는 의문이 남겠죠. 그런데 소녀가 보아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테고, 그런 것들이 다 모여서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제의 내가 선택했을 길과 오늘의 내가 선택하는 길은 다를 수 있는 거죠. 어제 누군가를 만났고 그와의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이 달라지는 거예요.


독자들은 『한 입 코끼리』 안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저는 단순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린왕자에서 보아뱀을 끄집어낸 것처럼 누군가가 『한 입 코끼리』에서 「백설공주」를 읽고 세 번째 난장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잖아요. 일곱 마리의 아기염소 중에서 막내는 어땠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계속 다른 샛길로 빠지면서 거기에서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린 왕자』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보아뱀을 가지고 제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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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코끼리황경신 저 | 큐리어스
짧은 글 모음집 『생각이 나서』 로 10만 독자의 가슴을 움직인 황경신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생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한입 코끼리』는 『어린왕자』의 책갈피에서 빠져나온 보아뱀과 여덟 살 소녀가 그려가는 따스한 기억과 아름다운 성장의 이야기이다. 소녀는 그림 형제의 동화 열여덟 권을 보아뱀과 함께 읽으며 한 걸음씩 세계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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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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