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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인 이옥란 "교정이 안 보이는 책이 좋은 책"

국어 실력보다는 문해력 이옥란 서울출판예비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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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는 길이지만 꼭 필요한 훈련은 좋은 책을 읽는 거예요. 줄거리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는 독서가 아니라 힘 있는 문장, 저자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문장을 읽는 게 도움이 됩니다.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번에는 교정ㆍ교열자가 오ㆍ탈자를 잡아내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하는지, 교정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교정,교열은 책을 편집하는 업무 중 대부분을 포함한다. 최근에는 출판사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편집자로 일했던 경력자가 출판사 바깥에서 ‘외주 교정자’로 불리며 교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작업이 외주화되면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업무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이옥란 교수는 현재 출판전문인 양성 교육기관인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교정 강의를 맡고 있다. 1993년부터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 출판사 등에서 일하기 시작해 2008년 이후 외주 교정자이자 강사로 활동했다. “문장을 정확히 다룰 수 있는 일이 교정이고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은 교정자”라고 말하는 이옥란 교수를 만나 교정 업무의 세계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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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가요?


저자가 쓴 원고를 담당 편집자가 받아 인쇄소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과정을 편집이라고 한다면, 편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일관되게 다루는 건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를 바로잡는 교정은 편집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죠. 다만 편집 업무를 쪼개어 할 수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빨간 펜을 들고 문장을 바로잡는 일’을 구분해서 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교정과 교열이라는 단어를 합해서 말하는데요.


교정ㆍ교열이라고 붙여서 많이 말하죠. 교정을 한자어로 풀어보면 ‘학교 교(校)’ 자에 ‘바로잡을 정()’ 자인데 ‘학교 교(校)’에는 헤아리다는 뜻도 있어요. 텍스트를 머리를 써서, 헤아려서 바로잡는 것 정도로 교정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열은 바로잡아 검열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저자의 글을 조사한다는 의미로 쓸 수 있겠지만 한때 출판을 검열하던 시절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정과 교열이 단계별로 있는 다른 업무라고 보기는 힘들고 ‘교정’ 한 단어로만 불러도 괜찮을 듯해요.


실제 책을 만들 때의 교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맨 처음 원고를 받으면 책 판형에 맞는 화면을 짜서 교정쇄라는 출력물을 만듭니다. 교정쇄를 검토하면서 오ㆍ탈자, 비문뿐만 아니라 저자가 표현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든가, 다른 부분과 표현이 충돌한다든가 하면 전체 맥락을 통해 교정하거나 저자에게 질문합니다. 그렇게 재조정한 원고를 다음 쇄로 출력하면 마찬가지로 저자와 조율하면서 1쇄, 2쇄, 3쇄 차례대로 원고를 다듬어 나갑니다. 원고가 몹시 어렵지 않고 구성요소가 복잡하지 않으면 보통 3쇄 정도에서 끝나죠.


교정 업무를 맞춤법에 따라 문장을 올바르게 고치는 일 정도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맞춤법은 교정 업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국어 실력은 기본이지만 맞춤법 지식만 가지고 교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어문규정에 어긋나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낱말의 뜻이라든지 용법은 당연히 문법에 맞게 정확해야 합니다. 교정 시 근거를 두는 문법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 수준인데, 지금 문법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다 포괄하지는 못해요.

 
예를 들어 “엄마 제발 아프지 마”라는 문장은 문법으로 보면 틀린 문장이죠. 이걸 바로잡으면 “엄마 제발 아파하지 마” 나 “엄마 제발 앓지 마”가 될 텐데 표현하고자 하는 걸 다 전달하지 못하는 문장이 되거든요. 선을 그어놓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기 위해 규범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어의 성향과 표현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저자의 원고와 번역서의 경우 교정 방법이 다른가요?


저술 원고라면 먼저 저자 원고의 완성도에 대해 확인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죠. 번역서 같은 경우 이미 한번 출판된 원고, 편집을 거친 원고기 때문에 번역이 잘 되었는지 위주로 보게 됩니다.


번역서는 외국어투 문장을 손질할 필요도 있어요. 이희재 선생님은 『번역의 탄생』에서 출발어와 도착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원어인 출발어를 중요하게 볼 것인가, 한국어 독자들이 읽기 좋게 도착어인 한국어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볼 것인지에 따라 여러 논점이 있을 것 같아요. 또한, 번역서는 지명이나 인명을 외래어표기법 어문규정에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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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정, 좋은 출판물이란 뭘까요?


책 안에 담기는 내용이 다양하므로 교정도 굉장히 다양하고, 뭐라고 딱 집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죠. 다만 책을 읽을 때 문장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안 들게끔 읽힌다면 그건 교정이 잘된 책이에요. 교정이 안 보이는 책이 사실은 좋은 책이죠. 어떤 책을 내더라도 텍스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문장을 정확히 다룰 수 있는 일이 교정이고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이 좋은 교정자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말로 문해력이라고도 하셨는데,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나요?


천천히 가는 길이지만 꼭 필요한 훈련은 좋은 책을 읽는 거예요. 줄거리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는 독서가 아니라 힘 있는 문장, 저자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문장을 읽는 게 도움이 됩니다. 제 경우에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실제 문장을 의미가 담겨 있는 형태소까지 쪼개서 분석하는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접속사는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연결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 문장의 구성 요소가 어떻게 저자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의 원고를 여러 번 정독하고 숙독하는 작업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편집 과정에서는 원고 안에서 매우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어요. 교정이 잘 된 좋은 책을 만드는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원고든지 적어도 서너 차례를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은 필요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야 원고의 문제를 알고 교정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출판사에 취직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교정자도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편집 업무를 하다 결혼이나 육아 등으로 직장에 돌아오기 어려운 분들이 외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주 교정자라고 불리는데, 전문 교정자라는 표현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정에 대한 이해도 있고, 저자의 원고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전문적으로 아는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출판사랑 관계를 맺고 일하면 개인이기 때문에 대우가 부적절한 경우도 왕왕 있고, 일 자체가 불안정하기도 하죠.


편집하는 사람과 교정하는 사람이 나뉜다면 일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요?


외주를 맡기면 내부 인력은 덜 신경 써도 된다고 생각해서 교정자에게 책임 편집의 업무까지 넘기는 경우가 있어요. 출판사에서 전문 교정인에게 원고를 줄 때는 이게 어떤 책이 될 것인지 상이 잡혀 있는 상태여야 해요. 책임 편집자가 작업에서 뭘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교정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해서 맡겨야 하는데, 책에 대한 명확한 목표나 책임 편집자 없이 오자나 비문만 고쳐서 세상에 내보낸다면 예상치 않은 오류가 자주 생기게 되죠.


미래의 출판인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나요?


막연히 책 만드는 일이 재밌어 보여 출판사에 들어가도 바로 원하는 책을 만들지는 않아요.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게 좋은데 사회 문제에 대해 거친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사회과학 책의 텍스트를 만져야 할 수도 있을 거고요. 대학을 4년 정도 다녔다면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몹시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글을 다루는 능력은 배울 수 있으니 자신 있게 시작하셔도 되는데, 이 업이 뭘 하는 일이고 이게 나에게 맞을지 판단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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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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