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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너무 믿지는 말자

『사모님 우울증』 저자 김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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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내 인생에 쓸모가 될 만한 말을 발견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 나는 명언을 쓸 수 없으니, 물어서 발견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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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을 두고 남자를 대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진다. ‘당신이 나 사랑하면 이렇게 해줘. 이렇게 변해줘”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랑의 힘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믿지 않으면 오히려 돌아온다.”

 

『사모님 우울증』 저자 김병수

 

과거의 명언은 뻔했다. 은유는 물론이고 대구도 있어야 했다. 요즘은 돌직구 명언 시대다. 생각해야 이해되는 문장은 버림 받는다. 한눈에 읽혀야 수집된다. 생각할 틈을 요구하면 선수를 놓친다. 직관적이어야 살아남는다.

 

학창시절 나는 말 수집가였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곧장 밑줄을 그었다. 책이 더러워지는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두 번 읽을 책은 많지 않으니까. 잡지는 사정이 또 달랐다. 단번에 찢었다. 스크랩북을 따로 만들진 않았지만 비닐 파일에 끼워 놓고 생각이 날 때마다 읽었다. 대개 인상 깊게 읽은 인터뷰 기사가 많았다. 스타들의 사진을 모으는 대신, 인터뷰이의 말을 모은 셈이다.

 

한 여배우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자”라고 답했다. ‘이상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 그 배우에게 호감을 가졌다. 후에 누가 내게 이상형을 물으면, 커닝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내 인생의 글귀 중 하나인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관계의 질에 있다”는 말도 한 잡지에서 발견한 문구다. 한동안 내 소개글에 저 문구를 사용했는데, “이 문장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문의 메일을 서너 통 받았다. 안타깝게도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내 글이 쓸모가 있길 바란다. 감상으로 쓰이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준다면 더없이 기쁘다. 인터뷰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내 인생에 쓸모가 될 만한 말을 발견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 나는 명언을 쓸 수 없으니, 물어서 발견하고 싶을 따름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명언이란, 거창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문장, 작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말이다.

 

『사모님 우울증』을 쓴 정신과전문의 김병수 교수를 만났을 때, 나는 유독 인터뷰의 효용을 절감했다. 당시 나는 결혼 4년차 임신 중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큼, 좋은 아내에 대한 열의가 있었다.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여자이고 싶지 않았다. 또 그만큼 남편에 대한 기대도 컸다. 내가 이렇게 배려하니까, 배려 받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 남편에게 요구했다. “당신, 성격 좀 바꿔야 하지 않겠냐, 불가능이 어디 있냐, 사랑하니까 잔소리할 수밖에 없고, 사랑하니까 변하자”고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양, 김병수 교수에게 물었다. “성격이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면 아내들은 남편의 변화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가?”

 

“남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자가 아무리 교양 있게 말해도 남자가 느끼기에는 ‘정서 충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자들은 정서적인 피로감이 몰려오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살만큼 살았는데, 바꾸라고 하면 엄청난 부담인 거다. 또 그렇게 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거리감을 두고 남자를 대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진다. ‘당신이 나 사랑하면 이렇게 해줘. 이렇게 변해줘”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랑의 힘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믿지 않으면 오히려 돌아온다.”

 

적당한 거리감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인 것을 나는 모르지 않았거늘, “사랑의 힘을 너무 믿지 말라”는 표현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니, 그러면 어떤 힘을 믿어야 하나? 믿지 않아야 돌아온다니. 이건 성경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행동에 옮겼다. 정서 충만으로 느껴지는 발언을 최대한 줄였고, 하고 싶은 말도 최대한 절제했다. 남편은 편안해 했다. 어느덧 살가운 말을 내게 먼저 건넸다. 이후 후배들이 연애, 혹은 부부 상담을 해오면, “거리감이 중요해. 믿지 마. 그래야 돌아온대”라고 답했다.

 

묻지 않으면 듣지 못했을 말, 만나지 않았으면 듣지 못했을 이야기. 인터뷰의 재미다. “사랑의 힘, 너무 믿지는 말자.” 여기서 포인트는 ‘너무’다. 사람은 믿어야 하는 존재다. 다만 너무 믿으면 서로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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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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