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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그린다

『공간의 온도』 저자 박정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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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좋아하는 공간을 몇 군데 정해놓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울적해지면 혼자 그곳에 가서 오랜 시간 머물며 마음을 달랬어요. ‘그 공간에 가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주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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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리

 

‘기억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진 박정은 일러스트레이터가 『공간의 온도』를 출간했다. 트위터와 네이버 그라폴리오를 통해 꾸준히 작업한 그림들을 모아 차근차근 선보여,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뜻밖의 위로』에 이어 이번이 독자와의 세 번째 만남이다.


일상의 작은 경험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박정은 작가의 시선은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첫 번째 책에서는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일상의 경험들을, 두 번째 책에서는 뜻밖의 배려나 작은 존재로부터 얻는 큰 위로를, 이번 세 번째 책에서는 일상 속 공간이 주는 감성을 특유의 그림체와 글로 풀어냈다.


책을 무척 좋아해서 책을 위한 그림을 그리게 된 박정은 작가. 독자가 아닌 작가로서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공간의 온도』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기억을 그리는 작가’라는 수식어에서 오는 애틋함과 아련함이 있습니다. 창작자로서 ‘기억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그리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억을 그리는’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진 것 같아요. 기억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는 뜻과 그리워한다는 뜻이요.


저는 그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아주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서, 제가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억들이라도 어쩌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는 보편적인 기억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어떤 것들을 작가가 그림으로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환기할 수도, 감정과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기억과 기억한다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간의 온도』는 ‘나’와 가장 가깝고 익숙한 집 안의 공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책상, 책장, 침대, 부엌, 목욕탕에서 집 근처에 있는 시계방, 세탁소, 편의점, 책방. 그리고 더 넓어져서 서울에 있는 좋아하는 공간들을 다루고 제주도에서 끝이 납니다. 한 공간을 생각했을 때 연관해서 떠오르는 존재들이나 사건들을 중심으로 작업했어요. 공간을 매개로 하여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책을 무척 좋아하는 독자에서 책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참여자로, 이제는 책을 집필하는 저자로 위치와 역할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위치에 따라 느끼는 바도 다를 것 같아요.


책을 볼 때나 서점에 갈 때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독자였을 때, 책은 저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기도 했고 인생의 선생님이기도 해서 고귀하고 완전무결한 지혜를 담은 보물처럼 생각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책에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처음에 무척 벅차고 기뻤는데, 일로서 많이 대하게 되니까 예전 같은 환상이나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책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하는 저자분이나 편집자와 일을 하게 되면 즐겁고, 좋은 책에 작업하게 되면 벅차고 보람도 큽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서점에 갔을 때 책의 제목이나 글을 중점적으로 봤다면, 일을 하고 나서는 책 표지나 디자인도 열심히 살펴보게 되었어요.


책의 저자가 된 후에는 점점 더 무거운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을 볼 때도 그림뿐만 아니라 책의 짜임새나 구성, 내용도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점점 느끼는 바가 다양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과 서점을 좋아하고 조금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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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북카페>에서 『공간의 온도』를 소개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려면 평소에 생각도 많이 하고 꾸준히 메모했어야 가능한 일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76곳이나 되는 공간을 추억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옛날부터 좋아하는 공간을 몇 군데 정해놓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울적해지면 혼자 그곳에 가서 오랜 시간 머물며 마음을 달랬어요. ‘그 공간에 가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주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공간에 대한 애정이 크고, 관심이 많아서 더 바라보게 되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10대부터 20대까지 걷는 것을 좋아해서 버스를 타고 가본 적이 있는 눈에 익숙한 길들은 무조건 걸어가 봤어요.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10대 후반에 로모카메라를 사면서 사진 찍는 것에 재미를 느껴 예전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런 오래된 사진들이 도움 되기도 했지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핸드폰이나 노트에 기록을 해두는 버릇이 있기도 해서 특별히 책을 쓰기 위해서 새롭게 작업한 부분도 있지만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예전의 기록들을 꺼내보다가 떠올린 기억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색감이 밝다고 하셨던데, 이전 작품의 톤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예전 작품들은 감정에 집중하는 그림들이 많아서인지 약간 어둡고 채도가 낮은데, 이번 그림들은 공간의 느낌과 따스한 분위기를 독자분들께 잘 전달하고 싶어서 색감도 따뜻하고 예쁘게, 채도와 명도도 밝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에 실린 공간 중에서 특별히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간이 있을까요?


서울이 삶의 공간이신 분들께도, 서울을 여행하려는 분들께도 성곽길을 한 코스라도 꼭 걸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성곽을 따라 산길을 걷는 경험이 저에게는 무척 특별했거든요.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는 오래된 공간들이 소중한 것 같아요.


관계에서의 갈등, 실패의 경험 등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곳곳에 보입니다. 아픈 경험을 되돌아보고 책에 담아내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스럽고 부끄럽기는 했지만, 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던지는 이야기들에서 독자분들은 잊고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최소한 100년, 200년 후에 누군가 이 책을 본다면 ‘여기 이런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이런 사람이 살았고,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감정을 느꼈다’ 하고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필로그에 미처 책에 싣지 못한 곳들이 있어 아쉽기도 하고 마감을 유예하며 오래 작업하고도 싶다고 하셨는데, 미공개작 중 한 곳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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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는 벚나무가 많이 심겨 있어서 봄이 되면 정말 아름다워져요. 지금은 춥고 쓸쓸해서 몸과 마음마저 잔뜩 움츠러드는 겨울이지만,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그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공간을 소개합니다.

 

전작에 비해 발품과 노력이 더 들었을 것 같은데, 『공간의 온도』 출간 소감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자료 사진을 찍거나 기록을 찾느라 다른 작업에 비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길을 잃고 방황을 했던 시간도 있어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공간들이기 때문에 그곳에 찾아가거나 상상을 더해서 작업하는 것은 대체로 즐거웠어요.
한 워크숍에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기억하는 한에서 가장 어렸을 때 좋아하며 머물던 공간이 어디냐고. 그때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어린 시절 책상에 이불을 덮고 그 속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단어 하나, 질문 하나를 계기로 잊었던 소중한 일들이 떠오를 때가 많아요.
제 책도 독자분들께 그렇게 우연히 던져진 단어나 질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간의 온도박정은 저 | 다온북스
때론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발견을 하기도 한다. 온통 낯선 곳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나와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도 한다. 『공간의 온도』는 이렇게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발견하게 하는 공간들, 나의 마음을 품어주는 그 공간들의 온도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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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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