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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뒷얘기는 재미있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 관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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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들만 모아서 책으로 엮어도 괜찮겠는데. 작가들의 소소한 뒷얘기를 알고 계신 형제자매님들은 마포 김 사장에게 제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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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작가들에 관한 에세이나 평전의 묘미라면 ‘이렇게 훌륭한 글을 남겼다’는 업적보다 ‘혹시 이거 아시나’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뒷얘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와 관련한 에피소드에 눈길이 간다. 옥스퍼드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톨킨이 제자가 책상 위에 두고 간 시험지의 여백에다가 무심코 “땅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라고 끼적이면서 『호빗』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나, 버블경제의 붕괴로 자신이 차렸던 디자인회사가 망하자 빈둥빈둥 놀다가 전화기 옆에 놓인 책의 출판사 주소로 『우부메의 여름』을 투고했는데 원고를 검토한 편집자가 “고단샤 편집부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미스터리 계의 대작가가 무명의 신인인 척하며 보낸 게 아닐까 의심했다”는 일화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신이 난다.

 

아내와 크루즈 여행을 하며 유유자적하던 중 밤이면 심심풀이 삼아 펄프잡지에 실린 추리소설을 읽곤 했는데 “나도 이런 소설을 쓰면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협박자는 쏘지 않는다』를 집필했다는 레이먼드 챈들러나, 첫 손자를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LA에 갔다가 그 지역의 저예산 오락물들에 지친 어머니와 아내를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인디애나 블루스를 썼다는 마이클 르 윈의 데뷔 동기도 나는 전혀 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글쓰기는 타고나는 건가’ 싶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드라마틱한 쪽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알드 달은 영국 공군에 입대한다. 조종사가 될 작정이었다. 훈련은 나이로비에서 받았다. 훈련용 탑승기는 ‘타이거모스’라는 이인용 경비행기였다. 195cm나 되는 로알드 달이 조종석에 앉으면 비행기 밖으로 머리가 튀어나와서 애를 먹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을 마쳤다. 당시만 해도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홀로 광대하게 펼쳐진 하늘로 올라가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풍경을 하느님의 위치에서 볼 수 있어 기뻐했다”고 한다. 사건은 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은 부대를 찾아가기 위한 첫 비행 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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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1941년. ⓒROALD DAHL MUSEUM AND STORY CENT

 

그가 출발한 시각은 오후 6시 15분. 일몰까지는 1시간 15분이 남았고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부대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아니었다. 한 시간 넘게 비행했지만, 사막 어디에도 내릴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휘관으로부터 좌표를 잘못 받았다’는 설과 ‘복엽기 글래디에이터를 처음 몰아봤기 때문에 생긴 조종 미숙’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연료가 바닥을 치기 직전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막 한가운데서 착륙을 감행한다. 비행기가 부서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몸뚱이는 격렬하게 조종석 앞으로 튕겨 나가는 바람에 코가 얼굴 속으로 함몰되고 두개골이 파열되었다. 평전 『천재이야기꾼 로알드 달』에는 당시 상황이 잘 기록돼 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두개골 파열’은 달이 서부 사막에서 당한 사고를 상징하는 구절이다. 그 일이 작가가 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이 조종사로서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는 한 달 정도였지만 그 32일간은 그가 고독을 즐기고 생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그런 시간은 달에게 글을 쓸 필요성과 주제를 제공해 주었다. 사실, 달의 첫 번째 이야기들은 조종사 경험이 없었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아주 밀접하게 그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많은 부분은 비행의 짜릿함을 다룬다.”

 

가까스로 부상에서 회복한 로알드는 1년간 병가를 얻지만 전쟁은 그를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후 워싱턴에 있는 영국 대사관의 공군 무관보로 발령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중립을 지키던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고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로알드는 여전히 전쟁을 반대하는 미국의 정치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각료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런 반전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임무는 맡는다. 즉, 영국의 첩보원으로 활동한 것이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상력을 가미하여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미국인들에게 주입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워싱턴과 뉴욕을 바쁘게 오가는 사이에 점점 더 거리낌이 없어지고 뻔뻔스러워졌다고 로알드는 회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영국 대사관의 무관보 사무실로 로알드를 찾아왔다. 영국의 소설가 C. S.포레스터였다. 워싱턴에 거주하며 영국 정보부에서 일하던 포레스터는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을 바꾸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이었다. 마침 미국의 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포스트>에 글을 기고할 ‘참전용사’가 필요했는데 직접 사고를 겪고 워싱턴에 와 있던 로알드 달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학창시절에 포레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감탄한 경험이 있는 로알드는 고심 끝에 원고를 쓰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미숙한 조종사의 착륙 실패담은 적군의 총탄에 엉망진창으로 파괴된 비행기를 노련하게 몰고 돌아온 영웅담으로 바뀐다. 로알드가 처음부터 대놓고 과장했는지 편집기자들이 극적인 방향으로 수정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영국 공군의 성공적인 공습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글이었음은 분명하다.

 

이 글은 C. S.포레스터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모두 만족시켰고, 덕분에 “로알드 달은 문학계에 데뷔했다”고 평전의 저자는 적고 있다. 로알드도 “살면서 처음으로 뭔가에 완전 몰두할 수 있었다”고 표현했을 만큼 글쓰기의 묘미랄까 창작의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판타지 문학의 대가로만 알려진 로알드 달이 영화 <007 두 번 산다>의 시나리오까지 쓰게 된 데는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에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킨 이언 플레밍과 짧게나마 함께 첩보원으로 활약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하니, 과연 뒷얘기는 재미있다. 이런 얘기들만 모아서 책으로 엮어도 괜찮겠는데. 작가들의 소소한 뒷얘기를 알고 계신 형제자매님들은 마포 김 사장에게 제보 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셨거나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로 제보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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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007 두번 산다 : 블루레이

<숀 코너리>, <아키코 와키바야시>20,900원(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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