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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현대의 ‘바벨탑’ 신화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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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예고 없이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의 사연을 다룬다. 이 단편이 영화화되었다. 영화의 원제 'Arrival' 대신 한국에서는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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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은 세계적인 Sci-Fi 작가다. 자랑하자면,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2009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게스트로 참여한 그를 인터뷰했었다. 테드 창은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입각해 구성한 과학소설, 즉 하드SF를 쓰는 작가라 그의 글을 읽는 데는 상당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물어볼 것이 꽤 많았다.

 

내 입장에서 테드 창은 꽤 까다로운 인터뷰이었다. 질문의 의도가 정확히 이해된 후에야 답변을 내놓는 식이었다. 한국영화가 개봉할 때면 이뤄지는 의례적인 인터뷰, 인터뷰어가 영화에 대한 인상만 밝혀도 인터뷰이의 답이 따라오는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나와 테드 창이 서로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보니 사용하고 이해하는 인터뷰의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내내 진땀이 흘렀지만, 지나고 생각하니 재미난 경험이었다.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개정판 전에는 ‘네 인생의 이야기’로 표기됐다!)가 묘사하는 상황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예고 없이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의 사연을 다룬다. 이 단편이 영화화되었다. 영화의 원제 'Arrival' 대신 한국에서는 <컨택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웨버(포레스트 휘태커) 중위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는다. 웨버 중위는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해달라며 그녀를 외계 비행물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루이스는 이동하는 중 만난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과 함께 헵타포드로 불리는 칠족(七足) 외계인을 만나 체경을 통해 그들이 쏟아내는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컨택트><인디펜던스 데이>와 같은 지구 침공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인류의 언어와는 체계 자체가 전혀 다른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언어에 반영된 인간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탐구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계까지 살핀다. 그런 맥락에서 <컨택트>는 외계인을 매개로 한 현대의 '바벨' 신화라는 인상이 강하다.

 

바벨의 이야기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온다. 인간은 하늘에 닿기 위해 거대한 탑을 지었다. 이에 분노한 신은 인간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부여했다. 다시는 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하게끔 대화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컨택트>가 묘사하는 외계 비행물체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과 다르게 원반 형태가 세로로 세워져 있어 의도적으로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컨택트>는 외계인의 고등 문명에 맞서는 인간의 오만함에 경고를 보내는 작품인가?

 

그런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루이스와 이안이 외계 비행물체에 접근해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인간은 인과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편을 선호해 언어 역시 그에 맞춰 기호를 음성으로 발화하고 말소리를 기록한다. 인간의 모든 문자언어는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음성표시 Glottographic’ 문자를 사용하는 인간과 다르게 원과 사선으로 구성된 헵타포드의 언어는 발화된 소리와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의미표시 Semasiographic’ 문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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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아니 너무 어렵다. 영화는 테드 창의 원작이 기술하는 인간과 헵타포드 언어의 묘사보다는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이해하기 수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중요한 건 인간과 헵타포드 공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체계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데 있다. 인과론적 사고에 익숙한 인간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혹은 침공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헵타포드는 자신들이 왜 지구를 방문했는지 인간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감추려는 의도가 아니라 설명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과 언어가 완전히 다르듯 전혀 다른 사고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이를 간파하고 헵타포드와 좀 더 소통하려 해도 주변 반응은 그와 다르다.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알지 못해 점점 초조해지고 급기야 외계 비행물체를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런 반응의 ‘원인’은 인류가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며 쌓아 올린 역사의 ‘결과’이기도 하다. 인간의 언어는 그에 맞춰 진화하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컨택트>가 현대의 바벨 신화인 이유다. 그래서 영화는 외계 비행물체를 두고 의견이 둘로 나뉜 인류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결과는? 이 정도만 말씀드리고 싶다. 인간이 인과론에서 벗어나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 <컨택트>에는 언어학자 루이스의 에피소드와 병렬해 자연인 루이스의 사연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다. 루이스에게는 딸이 있었지만, 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다. 딸을 잃은 충격과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루이스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속으로 이유를 따져 물으며 고통스러워해도 결과를 도출해내기 힘들다.

 

그녀의 딸이 병으로 숨진 것은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살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예측 불가하다. 예측 가능한 것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는 곳에서 다시 삶이 시작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게 유한한 인간의 삶은 생사의 고리(roop)로 인해 무한대로 이어진다. 이는 인과론적 사고로는 풀기 힘든 우주의 이치다. 고로 우주를 알아가고 외계 문명을 탐구하는 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컨택트>의 헵타포드는 이를 알려주기 위해 지구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엇! 여전히 인과를 따지는 나란 인간이란...

 

(* 음성표시와 의미표시에 대한 설명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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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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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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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저/<김상훈> 역13,0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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