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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음

『눈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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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날 그 기억을 떠올리면 죽고 싶을 만큼 죄스럽고 또 죄스럽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노비 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받고 살거라….”

『눈길』, 이청준 지음, 38 쪽

 

1.


집은 가난했는데 어렸을 때 자기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신발만 신으려 했던 것이 커서도 어머니께 두고두고 죄송하다며 서른 넘은 남자가 술자리에서 말했다. 내 어머니에 대한 나의 죄의식도 불려졌다.

 

정갈하신 어머니는 새벽이면 일어나 마당을 쓸었다. 잠결에 사악 사악 싸리비 소리를 들으면 나는 안도감이 들었고 더 깊이 잠들었다. 어느 날은 머리 맡에 과자를 하나씩 올려 놓으셨다. 나는 아이였고 어머니는 덜 늙었다. 그때의 기억은 그저 착한 그리움이다.

 

객지로 나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머리 하얀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싫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어른이 된 후 그 기억이 내내 당신께 죄송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 들고 자정 무렵 학교에 오셨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동아리 실에서 밤새 놀 작정이었다. 나는 도시락을 뺏듯이 받아 들고, 뭐 하러 오셨냐며 눈을 흘겼다. 어머니는 아픈 다리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다. 지금도 차를 타고 신당동 모교를 지날 때마다 학교 교문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나의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도 술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태 단 한번도 차마 발설하지 못했던,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원죄 의식은 따로 있다. 그것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그날 그 사건 속에서 시작됐다.

 

16년 전, 회사에서 어머니 부음을 전해 들었다. 택시를 타고 경기도 형님 댁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택시 뒷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있던 나를 기억한다. 멈춰진 시간의 느낌도 여전히 생생하다. 큰 형님은 침통한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형수님은 어쩌면 좋으냐는 얼굴로 시동생을 맞았다. 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그림처럼 누워 계신 어머니를 불렀고, 일어나지 않는 어머니를 붙들고 통곡했다.

 

아아, 나의 어머니, 마흔 다섯 노산으로 막내를 낳고,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온 몸을 쓰지 못할 정도로 병을 맞으셨다가 친척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모은 돈으로 막내 아들 대학 입학금을 내주셨던 억척스런 나의 어머니.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만나 세상의 모진 풍파에 맞서 많이 울고 많이 아파하셨지만, 자식들 고아원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독하고 강하게 살아오셨던 내 가여운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절대적 슬픔의 순간에 내 코로 훅하고 들어오는 시신의 냄새, 9월의 늦더위 속에서 누워있던 어머니에게 뿜어져 나오는 역한 내음이 내 울음과 슬픔보다 더 강하게 내 코를 자극했다. 나는 그 냄새 앞에서 당황했다. 어머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내 이성이 저주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의 복판에서 어머니의 냄새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내 빌어먹을 감각에 나는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 새라 허둥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기억은 어머니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원죄 의식으로 나를 따라다닌다. 이중적인 천하의 나쁜 놈, 서른 일곱 해 키워주신 어머니 은공을, 냄새 하나로 무력화 시킨 위선의 인간.

 

 

2.

 

이청준의 『눈길』과 눈길의 밑 작품인 「새가운들」을 읽으며 내가 너무나 공감했던 것은 바로 그 원죄의식이다. 이청준의 소설은 인간의 근저에 깔려있으나 감히 꺼내거나 들추기 싫은 내면을 천천히 그러나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러면에서 나는 이청준의 『눈길』을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로 꼽는다.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도 좋고 안톤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이나 『세 자매』도 최고의 단편이지만 『눈길』만큼 나를 소설 속으로 흡입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눈길은 나(작가)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와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날 생각을 하는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나는 스스로 어머니에게 진 빚도 없고, 그러기에 갚을 빚도 없다고 생각한다. 집 지붕을 개간하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소망을 매몰차게 무시할 수 있던 것도 부채의식이 없다고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길에 대한 아내와 어머니의 대화를 엿듣게 되면서, 나는 자기 안에 숨기려 그렇게 노력했던 원죄와 만나게 된다. 아들놈 실망할까봐 이미 팔린 집에서 자식을 기다리던 모성, 아들이 어색할 까봐 옷장만은 그대로 둔 채 언제나 그 집에서 자식을 맞아주시던 어머니. 다음날 새벽, 아들을 버스에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 아들이 남긴 눈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채우며 어머니는 눈물로 읊조리신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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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는 작가에게 있어 감추고 싶은 작가 자신의 원죄였던 것이다. 작가는 그 원죄의식과 부끄러움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그저 소박한 자기 원망이나 체념이 아니라 밝은 빛을 두려워하고 그 빛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3.

 

그렇더라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원죄와 대면해야 한다. 오랫동안 내 원죄 의식의 시원으로 봉인되어있던 어머니 시취(屍臭)에 대한 고백을 글로 쓰는 것도, 어쩌다 어머니 꿈을 꾸고 나면 가슴이 미어져 새벽을 허허하게 불면하는 고통을 통해, 원죄는 외면할 수 있으나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원죄와의 직면은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 것이다. 젊은 시절 대단한 것이라 포장했던 나의 자아가 한 줌도 안되는 허상이며 이렇게 부조리한 인간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비하나 열등감과는 전혀 다른 실존적 수용이다. 그것은 남은 시간은 더 이상의 업을 짓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이며 부끄럽지 않게 하루씩의 일상을 채워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날 그 기억을 떠올리면 죽고 싶을 만큼 죄스럽고 또 죄스럽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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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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