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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 소설이 주목받은 이유

『바람의 열두 방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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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에 발간된 그의 소설 『바람의 열두 방향』이 지난 2월 12일부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여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거의’ 모든 서점에서 동이 나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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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_imagetoday

 

내가 출판사를 차린 지도 어언 11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어지간하면 그동안 하나 구입했을 법도 한데 우리 회사에는 정수기가 없다. 매번 모르는 이가 방문해서 필터 교체니 뭐니를 해준다는 것도 탐탁지 않거니와 실제로 불순물을 걸러주는지에 대해서도 믿음이 가지 않아서 여태껏 사지 않았다. 14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이에 대한 해당업체의 대응을 목도한 이후에는 이런 렌탈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져서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지낼 성싶다. 때문에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는 일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북스피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달린 독자댓글을 확인하거나 하루 스케줄을 점검한다.

 

그 외에도 택배를 포장하고 비품을 점검하는 등 잡다하게 하는 일이 많은데 그중에 꼭 빼놓지 않는 게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등록된 북스피어 도서의 ‘판매 지수(Sales point)’를 확인하는 일이다. 독자들도 볼 수 있는 화면에서 ‘북스피어’를 누르면 신간과 구간을 한꺼번에 일별할 수 있다. 지수가 올랐으면 왜 올랐는지, 떨어졌으면 어째서 떨어졌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귀찮아서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니가 그 모양인 거야” 하고 어디선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등락이 크지 않으면 분석 자체에 큰 의미가 없으니까 뭐, 하는 정도로 해둘까. 대신 눈에 띄게 변화가 있는 다른 출판사의 책은 반드시 체크한다.

 

혹시 어슐러 르 귄이라고 아시는지. ‘과학소설가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다면 1순위로 선택될 작가’라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실제로 영국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 래드 브룩스가 우크라이나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가장 강력한 후보로 점쳤던 그 해에, 어슐러 르 귄도 필립 로스와 조이스 캐롤 오츠에 이어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아버지와 인기 동화작가인 어머니 덕분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심리학과 인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1962년에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이후로 지금보다 더 공고하게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리얼리즘 소설 대신 ‘헤인 시리즈’로 일컬어지는 과학 소설과 ‘어스시 연대기’로 대표되는 판타지 소설을 자신의 문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작가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별로라고 할까. 해외에서 받는 대접에 비하면 높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책 판매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어허, 북스피어에서 그의 소설을 단 한 권도 내지 않았으면서 어찌 건방지게 남의 출판사에서 낸 책이 팔렸느니 안 팔렸느니 떠든단 말이냐, 라고 궁금해할 형제자매님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부수까지는 모르지만 추이(推移) 정도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판매 지수가 증권거래소의 코스피 지수마냥 환하게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면 예스24에 접속해서 검색창에 ‘어슐러 르 귄’을 쳐보시라. 그러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뜰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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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설명하면, 위에서 파란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판매 지수란 해당 서적의 판매량을 뜻한다. 이는 (1) 예스24와 알라딘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체제이며 (2) 서점의 DB에 등록된 모든 서적이 매일 오전에 업데이트되고 (3) 전날에 비해 많이 팔리면 상승, 적게 팔리면 하강한다는 특징이 있다. 언젠가 예스24 담당자에게 “판매 지수의 산출 근거는 정확히 어떤 건가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곤란하다더라. 다소 복잡해도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이렇다 할 대답은 듣지 못했다. 다만 지수를 판매부수라 여기고 “예스24에서 내 책이 이렇게 많이 팔렸는데” 하고 여기는 필자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판매 지수가 1,290이라고 해서 1,290권이 팔렸다는 뜻은 아니며 시간이 흐를수록 지수는 떨어지게 마련이어서 출간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도서의 경우에 단순 계산이 어렵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이쯤에서 어슐러 르 귄 얘기를 꺼낸 이유를 읊조려 볼까 한다. 2014년 12월에 발간된 그의 소설  『바람의 열두 방향』이 지난 2월 12일부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여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거의’ 모든 서점에서 동이 나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오프라인 서점까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해서다. 모든 온라인 서점에서는 남김없이, 전부, 싸그리몽땅, 팔려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그 와중에도 판매 지수가 매일매일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거다. 11일에 1,000포인트에 불과하던 지수는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33,666포인트까지 올랐다. 단순 비교는 곤란하지만 참고 삼아 말씀드리면 북스피어에서 출간한 『거짓말이다』의 판매 지수는 현재(2017년 2월 16일 기준) 37,137포인트이고 그간 예스24에서 판매된 부수는 3,000권가량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왜, 어찌하여, 2년도 전에 출간된 과학소설이 불과 나흘 만에 몇 천권 이상 팔리는 일이 벌어진 걸까. 포털에 ‘바람의 열두 방향’을 검색해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발표한 「봄날」 뮤직비디오에 ‘Omelas(오멜라스)’라는 단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멜라스는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이름이다. 이 소설은 유토피아로서의 오멜라스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성립하고 있다는 전지구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으며 작품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돼 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봄날’의 가사를 쓴 건지, 가사를 쓰고 뮤직비디오에 오멜라스를 차용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2월 11일부터 퍼지기 시작한 티저와 2월 13일에 공개된 뮤비를 본 팬들이 적극적으로 책을 구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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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유튜브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인가.  『바람의 열두 방향』 같은 걸작이 많은 이들에게 소개된 셈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엽적인데다가 굳이 왈가왈부 지적하여 방탄소년단 팬들의 화를 사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오늘 이 글은 어디까지나 예스24에 판매 지수라는 운영 체제가 존재하고 이를 토대로 마케팅을 도모하거나 도서 구입시 활용하는 일이 가능할 터인데 의외로 “뭐야, 그게 그런 거였어?”라는 출판 관계자와 독자들이 제법 많은 듯하여 적어 본 거니까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편이 좋겠다. 어쨌거나 『바람의 열두 방향』이 팔리는 걸 보니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만든 미야베 미유키의 『스나크 사냥』도 누가 뮤비에 좀 써먹어줬으면 싶고. 전지구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의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생각해 볼 법한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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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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