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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드물고 귀한 소설

하염 없이 소설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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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소설을 읽는 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서점에서 일하느라 소설 읽기가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직업이나 이유 같은 건 잊게 되기도 한다. 그런 독서를 ‘하염 없이 소설 읽다’라고 한다.

고발.jpg

 

『고발』은 북한 소설이다. 북한에 ‘관한’ 소설이기 이전에 북한 작가가 북한에서 쓴 소설이다. 작가의 정체는 뚜렷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1950년생이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작가라 한다. 작가의 안위를 고려한다면, 이 정보가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이미 사망했거나, 북한을 이미 빠져 나왔으리란 추측도 힘을 얻는다.

 

작가의 정체는 흐릿해도, 소설은 더 말할 것 없이 선명하다. 그 어느 때보다 북한 사회가 우리 코 앞으로 다가온다. 금강산이나 개성 관광을 갔다거나, 정말 드물게 평양 거리의 일부를 거닐 기회가 있었던 사람도 이 소설을 읽는 것만큼 북한을 가까이에서 볼 순 없었을 것이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드물고 귀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읽지 않고 지나쳐 보내긴 힘들다.

 

『고발』에는 모두 7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일곱 편의 이야기는 모두 북한 체제가 개인들의 일상을 깊이 짓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란하다. 남편의 입당을 위해 당 간부의 성희롱을 감내하는 아내,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노모의 임종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여행증을 발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아들, 수령님 조의를 위해 시내의 꽃밭을 몽땅 들어낸 것도 모자라 산으로 들로 꽃을 꺾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다.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 만한 특별한 설정도 없어 마치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소설들은 굉장히 잘 구축된 것이란 느낌 또한 준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결말이 궁금해지고, 자연스레 묘사되던 일상이 어느 순간 굉장히 부조리하게 보이는 구성도 탄탄하다. 남과 북이 오래 다른 길을 걸으면서 달라진 말들도 흥미롭다. 『고발』이라는 제목에서 슬며시 들었던 ‘감정이 격양된 소설이 아닐까’하는 걱정도 내려놓게 된다. 우리가 북한을 알지는 못하므로, ‘이것이 북한의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소설이 진실을 품고 있다는 것만큼은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다. 감정이 현실을 왜곡한 소설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사회의 모습은 이토록 다르지만 이토록 다른 사회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의 결이 유사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내라든가, 평생을 열심히 일해봤자 상실감을 느끼는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이 품는 감정이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야기다. 『고발』은 북한 사회에서만 터져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우리 사회에도 무수히 많은 『고발』이 존재한다는 것, 다만 우리가 좀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걸 떠올린다. 『고발』을 읽고, 또 다른 『고발』들에 귀 기울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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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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