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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진 방안에 13년간 갇혀 있었다면?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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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틴이 깨어나게 된 것을 알 게 된 것,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쉬운 말이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인생의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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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2014년에 개봉했던 영화 <인터스텔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주인공 쿠퍼 박사는 블랙홀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아멜리아를 마지막 행성으로 보낸 후 로봇 타스와 블랙홀 안으로 과감히 들어간다. 거기서 플랜A를 성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이 순간 그는 시간과 공간이 멈춰진 어떤 곳에 갇힌다. 거기서 절실하게 자신이 거기 있음을 알리지만 딸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내가 여기 있음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음을 알리고 있지만,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노력이 와 닿지 않는다. 그는 사라져버렸다고 여길 뿐이다. 그것만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일이 영화가 아닌 실제 삶에서 일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12세 소년 마틴 피스토리우스다. 왠지 낯이 익은 성이라 찾아뵌, 스프린터용 의족을 달고 육상선수로 유명했던 같은 나라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와 같은 성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 소년은 12살에 병을 앓기 시작했고, 모든 검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곧 의식이 없어지고 사지가 마비되었다.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뿐인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가족들은 그가 곧 죽을 것이라 여겼고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로 몇 년이 흘렀고 4년 뒤에 의식이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그렇지만 의식만 돌아왔을 뿐 몸은 마비된 상태 그대로라 가족이나 치료진 그 누구도 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또 몇 년이 흘러갔다. 아니, 더 긴 시간이 흘러서 9년이 지났다. 오랫동안 그를 돌봐오며 의식이 살아있을지 모른다고 믿은 버나라는 간병인의 눈치 덕분에 그가 깨어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인 AAC 시스템을 이용해서 다시 세상과 소통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재활을 하면서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막힌 일을 경험한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그만의 경험을 적어 내려간 책이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푸른숲)이다. 원제는 ‘Ghost boy'다. 육체는 없이 귀신같이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떠돌아다니는 영혼만 있는 소년을 의미하는 원제가 더욱 와 닿는 면이 있다. 고스트보이는 깨어나서 9년 동안 끝없이 외쳤을 것이다.


“엄마! 저 여기 있어요!”


그건 어떤 방식으로도 전달되지 않았다. 마치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딸을 향해 외치지만 딸은 그걸 알아차릴 수 없었고, 그저 서가가 흔들리고 있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과 같이 말이다. 어느덧 25세의 성인으로 자라버린 마틴이 통달한 것은 시간을 통제하는 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느끼고 세는 것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의 무한함을 깊이 이해한 덕에 시간 속에서 길을 잃는 법을 터득했다’


‘문을 완전히 닫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거나, 삶의 사소한 세부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시간 다루기의 달인이 되었다’


몸 안에 영혼이 갇혀버린 채 모든 사람이 그가 숨만 쉬는 식물인간이라고 여기고 있는 세상에서 그의 깨어있는 의식이 온전히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3년이 흘러갔다. 매일매일 요양시설을 데려가고 데려오는 부모는 지쳐간다. 어느 날 엄마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고, 그가 들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한다’는 넋두리까지 한다.

 

마틴은 그녀의 ‘날것으로 흘러나오는 슬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게 더 비극적이었다. 마틴 자신도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이제 그만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지치니 그런 마음까지도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빠가 승진을 포기하고, 사회적 성공을 포기했지만 마틴을 엄마 대신 맡아서 매일 챙기고, 요양시설로 데려갈 수 있었고 마틴이 깨어나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차릴 때까지 마틴이 영양을 유지하고, 몸 상태를 건강하게 있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마틴이 이후 세상과 만나 AAC시스템을 이용해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고, 센터에서 파트타임 일도 하게 되고, 대중 강연을 하고, 널리 알려지면서 여자친구가 생겨 드디어 부모에게서 독립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갇혀있는 시간의 마틴의 절박함과 그 안에서 시간만은 마음대로 다뤘다는 이야기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채 그냥 숨만 쉬고 있는 아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잘 나가던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왼쪽 눈꺼풀을 제외하고 전신이 마비되었다. 마틴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그가 잠수종과 같은 몸에 갇혔지만 눈꺼풀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세상도 안다는 것이다. 그는 눈꺼풀을 모스 부호로 깜박이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통을 하였고, 그것이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다.


이에 반해 마틴은 어떤가? 그가 깨어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 소통을 하려고 해도 움직일 것이 없는 삶을 9년이나 살았다. 차라리 무인도라면 그런가보다 했겠지만 매일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고 괴로운 일이 아닐까? 인간의 소통 본능이 얼마나 강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부모는 기약 없이 13년을 살아왔다. 뭔가 낙관적인 희망을 갖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긴지 오래된 상태였을 것이다.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틴을 아침마다 입히고 씻기고 먹여서 요양시설을 오고가며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13년, 그 와중에 엄마는 심한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비관의 끝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마틴이 깨어나게 된 것을 알 게 된 것,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쉬운 말이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인생의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없는 걸 알면서도 마틴을 돌봐온 부모의 힘이 있었기에 마틴은 깨어난 후 몇 년이 지나 독립까지 해낼 수 있었다.


엉뚱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며칠 전 세월호가 3년 만에 땅으로 돌아왔고, 이 책을 읽으면서 세월호에 아이들이 아직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며 3년을 기다려온 부모들이 떠올랐다. 13년을 기다린 마틴 부모의 마음과 마틴이 겹쳐졌다. 시간과 공간이 멈춘 채 바닷속 깊은 곳에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를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라고, 건져내면 거기에 아이들이 있을지 모른다고 믿고 싶은 그런 마음.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영화에는 인터스텔라도 있고, 현실에는 마틴 피스토리우스도 있는데, 세월호 안에 아이들의 그 무엇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당연한 것 아닐까. 부모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3년 전 4월 16일 이후 시간과 공간이 멈춰진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공저/이유진 역 | 푸른숲
1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 기적적으로 깨어나 삶을 되찾은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실화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푸른숲에서 출간됐다. 제목은 오랜 간호생활에 지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엄마가 마틴이 듣지 못하는 줄 알고 내뱉은 혼잣말이자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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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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