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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 “소설은 우리 삶의 그림자 같은 것”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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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의 불행은 좋은 소설을 쓰는 데 심지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친 불행은 삶도 소설도 말라 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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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무수한 감정이 인생에 생채기를 내는 순간들을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한 소설가 오현종의 세 번째 소설집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가 출간되었다. 그간 발표해온 작품들로 오현종은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변용하여 한국소설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로 평해지곤 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의 상상력이 극한으로 뻗어나간 후에도 그 끝은 다시 일상과 맞닿아왔다는 사실이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오현종 단편 특유의 기발한 서사는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그녀가 드디어 소설가로서 자신의 자의식과 내면의 상처를 소설 속에 솔직히 녹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지금까지의 오현종 소설세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코멘터리와도 같으며, 근 이십 년간 이어져온 오현종 소설의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뚜렷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소설가 오현종은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9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소설 「중독」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 장편소설 『너는 마녀야』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등이 있다.

 

등단하신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요, 첫 책을 낼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등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친구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너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소설가가 됐구나. 그럼 이제 행복하니?”라고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행복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 무얼 하든지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돼.” 소설가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믿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어떤 일을, 어떤 상황을 만나든 의미만을 따지기보다 어떤 방향이 나를 행복에 가까이 가게 해줄지 가늠하게 돼요. 오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의 불행은 좋은 소설을 쓰는 데 심지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친 불행은 삶도 소설도 말라 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요.

 

평소에 작가님께서 글을 쓰시는 환경도 궁금합니다. 조금 묘사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좋은 가구와 값비싼 가전제품이 없는 집에 살아요. ‘단샤리’와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기 전부터 소유물이 적은 일상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해왔거든요. 두 번 읽을 책이 아니면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을 해서 소설가치고는 단출한 책장들이 있고, 공중파 방송만 나오는 작은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에요. 저희 집에는 책상만 몇 개가 있어요. 주로 작업을 하는 방에는 데스크톱이 놓여 있는 책상이 있고, 거실에는 노트북과 읽고 있는 책이 올려져 있는 책상이 있고, 그 밖에는 책상 겸용으로 쓰곤 하는 식탁이 있지요. 집에서는 세 개의 책상을 오가며 글을 쓰고 책을 읽어요. 공간에 익숙해지면 내가 쓰는 글도 진부해질 것 같아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는 거지요. 때로는 낯선 카페에 나가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밖에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책상을 발견하면 한 개 더 놓고 싶어져요.

 

이번 소설에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나 상황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운명을 강하게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학부 때 사회과학도였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이에요. 어릴 적 소설가가 되고 싶긴 했지만, 될 수 있을 거란 상상은 못했었지요. 소설가로 살아가다보니, 어떤 자력이 끌어당겨주지 않았더라면 이 일을 하게 되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어요.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모여 한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주었다고 할까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마찬가지겠지요. 그것을 말로 옮기면 곧 이야기라는 형식이 될 테고요.

 

단편 「부산에서」에서 소설가인 주인공은 ‘소설의 시대는 갔다’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했는데요. 이 말에 대한 작가님 생각은 어떠한가요? 작가님의 소설은 어떤 역할을 하기 바라시나요?


소설 속에 직접적인 대사로 등장하긴 하지만, 지난 세기부터 소설이 끝났다는 풍문은 계속 있어왔잖아요? 그런데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죠. 갔다, 끝났다, 라는 말은 어쩌면 끝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아, 소설이 정말 끝났구나, 라고 제가 인정할 수 있는 때는 누구도 더는 소설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되는 날이겠지요. 한 명의 소설가로서 저는 소설이 우리 삶의 그림자 같은 거라 믿어요,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도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 않고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나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에서 나오는 나이든 여성들은 노력하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지만 비호감형의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이와 반대로 작가님이 그리는 이상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단순히 호감 가지 않는,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로 그리려 하지는 않았어요. 두 인물을 통해서도 분명히 환기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몇 해 전 신문 사회면에 실렸던 아파트 경비원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썼고요. 경비원이 아니라 경비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할머니를 화자로 설정해서 쓰게 된 까닭은, 가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더 적나라하게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에요. 사회적 성취만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타인을 계급으로 구분 지어 나보다 못할 때 멸시하는 태도가 오늘날 얼마나 만연되어 있나요. 우리 내부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지만, 어둠을 직시한다면 빛을 얻어올 의지를 낼 수 있겠지요. 그 빛이 늙고 무뎌가는 인간을 사람답게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노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요.

 

이번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조금씩은 작가님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소설 속 어떤 인물도 내 일부를 나눠주지 않고는 살아 있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경우에 따라 조금 더 나눠주기도, 조금 덜 나눠주기도 하지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 「호적戶籍을 읽다」는 계간 『문학동네』 젊은작가특집에 자전소설을 청탁받아 쓰게 된 소설이에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소설보다 제 삶이 보다 많이 투영되었겠지요. 소설 속의 ‘나’를 떠올리면 애틋하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한 권 완성하고 나면 그때마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바뀐다고 하셨는데, 지금 가장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전에는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주로 원했어요. 이제는 좀 합리적이 되었는지 사람이 쉬워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원하기로 했어요. 앉아서 구원을 기다리는 것도 더 이상은 재미없고. 지난 연말에 책을 준비하다가 꼬마 때 좋아했던 밴드의 투어 소식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 년 뒤에 있을 공연 티켓을 예매했어요.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한 밴드라 잊고 산 적도 있었지만, 그들이 열 번째 앨범을 들려주었고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위안을 받을 때가 있어요. 아홉 번째 책을 내고 난 요즘 같은 나날은 더더욱 그렇죠. 내년 1월 프랑크푸르트 공연장에 가 버킷리스트 맨 윗줄을 지울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저 | 문학동네
스쳐가는 무수한 감정이 인생에 생채기를 내는 순간들을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한 소설가 오현종의 세번째 소설집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가 출간되었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지금까지의 오현종 소설세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코멘터리와도 같으며, 근 이십 년간 이어져온 오현종 소설의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뚜렷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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