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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엄마 생각

엄마도 이렇게 아플 때면 외로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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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비관 모드는 혼자 다 누리는 내가 이럴 때 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지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12화 그림.jpg

 

그 날은 주짱이 이사 하는 날이었다.  주짱은 영화 <비밀은 없다>를 촬영했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 어울려 지내며 정이 들어서 그런지 좀 섭섭했다.  이사 가지 말라고 내가 너무 떼를 썼는지 주짱은 도망치듯 새 집을 구했다.  이사도 도울 겸 새 집도 궁금해서 쭐레쭐레 구경을 나갔다.  ‘일단 새 동네는 깨끗한데 대중교통이 불편하군.  차가 없는 나로서는 이 동네가 좀 어렵겠는걸’ 주짱 팀이 식사를 마치고 끽연을 나간 사이 도착한 나는 그들이 남긴 탕수육과 짜장면을 게걸스럽게 퍼먹으며 생각했다.  ‘음... 이 동네 중국집은...그다지 새롭지 않군.’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고 개발 지역이라 창문 밖 시야가 탁 트였다.  ‘동네가 이런 식이면 나는 무서워서 못 사는데’ 까다롭게 별점을 매긴 뒤 자, 어디 한번 나도 일을 좀 해볼까나.  절대 무겁지 않은 대걸레 통을 드는데 오른 손목을 삐끗했다.  그게 4개월 전인데 통 낫질 않는다.  손목 근육 염증이란다. 

 

재작년에 오른 쪽 사랑니를 뽑았다.  처음에 담당 의사는 발치 수술을 거부했다.  사랑니가 매우 이상한 자세로 잇몸 속에 누워있어서 어렵다고 그랬다.  그래도 고집을 부려 그 의사에게 수술을 부탁한 이유는 7년 단골을 못 믿으면 어디서 또 누굴 어떻게 만나 처음부터 다시 믿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발치 수술 뒤 1년 반이 지나도 경미한 통증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괜히 어색한 대화가 오가는 게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하도 오랫동안 왼쪽 이빨로 음식을 씹었더니 왼쪽 턱 근육만 비대칭으로 발달하기에 결국 다시 찾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만 빨리 찾아갈걸.  나는 결국 비대칭 턱 선과 어금니 신경 염증을 얻었다.

 

지난 주간,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무사히 치르기 위해 나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KF 94 방역용 마스크도 구비하고 3일치 먹거리 장을 봐둔 뒤 미세먼지 공격 전야부터 일체 외출을 금했다.  세 가지 종류의 미세먼지 앱을 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치를 체크를 해서 온 주변 지인들에게 업데이트를 해주었다.  온 세상 비관 모드는 혼자 다 누리는 내가 이럴 때 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지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뭐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게 어떤 의미이든 상관없이 좀 비정상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까딱 잘못하면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좀 무섭다.

 

아무튼 내가 하도 두문불출하니 결국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 했는데 그 날은 3차 미세먼지 대 공격 전야였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좀 들뜬 기분에 친구가 담배 한 대 피운다며 복도로 나가는 걸 쭐레쭐레 따라 나갔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노력으로 살아왔는데 하필이면 그 날, 그 미세먼지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 그 위험천만한 시각에 친구의 담배 연기를 온 입으로 같이 들이마시며 낭만을 즐기고 만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목이 콱 잠기더니 가래가 끓고 기침이 심해져 병원에 갔다.  호흡기 염증이란다. 

 

이 모든 염증이 한 주간에 벌어진 일이다. 썩어간다는 게 이런 걸까. 침대에 누워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내뱉으며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이렇게 아플 때면 외로웠겠지. 

 

잔병치레가 많은 엄마는 아프면 불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셔서 그런지 야매 민간요법에도 좀 빠삭하시다. 엄마 덕분에 내가 요상한 곳을 좀 다녀봤는데 그 중 하나만 잠시 소개하자면 야탑동 어느 오피스텔에 자리한 야매 침술원이 있다.  그곳은 무허가 비밀장소다. 아는 사람들끼리 현관문 비밀번호를 공유한다. 복도까진 여느 오피스텔 공간과 똑같지만 일단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거실 한 구석엔 맥을 짚는 여인이 있고 얼굴과 두피를 비롯한 신체 곳곳에 침을 꽂은 중년의 여성들이 마치 영화 <헬레이저>의 '핀헤드' 모양으로 바글바글 바닥에 앉아서 라면도 끓여먹고 화투도 치며 여러 가지 볼 일을 본다.  거기서 빈티지 옷을 파는 여자도 봤다.  깊은 신뢰를 가지고 형성된 커뮤니티라는 사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녀는 내 맥을 짚더니 “심장이 남자네!”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어머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마치 내 심장이 남자인 줄 나만 몰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여인은 그때부터 막 아무데나 내 여기저기에 침을 꽂기 시작했고 그러면 막 피도 나고 멍도 들고 그랬다.  그래도 얼굴을 팽팽하게 만들어주고 신체나이를 젊게 만들어준다는데 좀 참을성 있게 다녀볼까 생각을 1분 했지만 자꾸 피가 질질 흐르는 게 좀 그래서 그만 뒀다.   

 

쓰다 보니 우리 엄마가 좀 무식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된다.  우리 엄마는... 절대 아니다.

 

아무튼,
엄마는 나의 손목 염증이 맘에 걸리셨는지 이번엔 상도동 성당으로 날 데리고 가셨다.  거기 가면 땅의 수맥을 짚듯이 신체의 맥을 짚어주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이 짚어주는 맥을 따라 몸에 스티커를 붙이면 그게 그렇게 효과 있단다.  최근 엄마의 아킬레스건 염증과 허리 통증도 이 덕분에 좀 좋아지셨다니 나도 그 곳을 찾아갔다.  그 분은 나를 보자마자 내 정수리에 손을 얹더니 “침대 밑에 수맥이 흐르는구먼!“  아니, 내 침대는 경기도 화정동에 있고 내 머리는 지금 서울 상도동에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어머나, 세상에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화들짝 되물었고 ”좀 있으면 왼쪽 어깨가 아플 거야...“ 라고 그는 중얼거리며 ‘꽃게랑’ 과자처럼 생긴 스티커를 막 내 몸 여기 저기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킬레스건 주변과 허리, 배 일대에 붙어있던 바로 그 ‘꽃게랑’ 스티커다.

 

‘꽃게랑’ 스티커 하나에는 여섯 개의 구멍이 있다.  그 스티커 구멍마다 매직으로 색칠하고 스티커가 떨어지면 표시된 자리에 맞춰 다시 붙여야 된다.  ‘꽃게랑’ 스티커는 6개에 만원이지만 앞으로 성당 좀 열심히 다니라며 그냥 붙여주셨다.  그리고 수맥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한번 수맥이 흐르는 집에 살던 사람은 이사 갈 때 꼭 수맥이 더 세게 흐르는 집으로 가더라. 그게 바닥에 동판 깔고 이사 간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도 아느냐. 그게 일본 칼인데 칼 알지?  칼!  이렇게 생긴 무시무시한 칼!  언제든지 나를 불러!  애초부터 수맥의 흐름을 바꿔줘야 해!  좀 맥락이 오락가락,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쓰다 보니 우리 엄마가 진짜 계속 무식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절대 아닌데...

 

아무튼,
내 살에 붙은 ‘꽃게랑’ 스티커의 구멍은 총 360개다. 유성매직으로 내 몸에 360개의 구멍을 색칠하면서 나는 또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스티커 구멍마다 매직으로 색칠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가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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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미(영화감독)

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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