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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사용하는 방법

손을 쓰는 게 귀찮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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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이 깃든 집밥, 직접 만든 가구, 뜨개질 한 목도리, 심지어 집안일까지. 손으로 해낸 일들은 자랑하고 싶은 뿌듯한 일이 되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만 지는 요즘, 굳이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만져가며 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7.09.08)

내 손은 어디에 있을까. 손의 주요 거처는 어디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기기를 사용할 때를 제외하고서 어떤 때에 손을 사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업무 시에는 대부분 컴퓨터를 사용하며, 틈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연락을 하거나, 쇼핑을 한다. 시간이 없다 보니 밥은 사 먹는 게 편하다. 집안일도 때로는 귀찮아서 로봇 청소기를 사고 싶기도 하다. 무얼 하려고 손을 대는 게 귀찮은 일상이다.

 

손을 사용하는 것이 귀찮은 일이 되다 보니, 시간과 공을 들여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더 가치 있게 여겨지고 있다. 직접 차린 식탁으로 밥 먹는 일이 SNS에 자랑처럼 올려지기도 하고, 취미 공예, 요리 등의 클래스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손을 사용하는 일은 일상이 아니라 여가로 자리잡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직접 만든 무엇에 대한 집착 비슷한 게 있었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함이 좋아서였는지, 유독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중 손으로 만드는 길을 택한 것이 많았다. 기념일에는 직접 만든 초콜릿이나 캐러멜을 선물하고, 동생에게 주기 위해 목도리를 뜨개질했으며,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는 케익을 만들었고, 일이 있을 때마다 손편지를 쓰곤 했다. 최근에는 혼자 먹어도 공 들인 식탁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제법 있어 보이는 요리들을 해 먹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피곤해지는 길을 선택하고 있던 것이다.

 

1.jpg

        나를 챙기기 위한 나의 식탁들. 기분 좋은 식탁 앞에서면, 공수를 들여도 피곤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내 손이 깃든 무엇을 포기할 수 없던 것은, 직접 만든 무엇은 내게 자신감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내 손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내 손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문득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던 취업준비생 때, 한밤중에 미역국을 끓이던 것은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작 미역국을 끓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무너진 나를 챙겨낼 것이 필요했다. 나를 위한 식탁을 차려내며 자신을 챙기고 나면, 그것은 꽤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손으로 나를 일으켜내는 과정으로서 손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내 손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온다. 요즘에는 더 완벽한 식탁을 위해 식기를 구입하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준비한 식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풀려난다. 공수를 들였는데 피곤이 풀린다니, 억척스러운 일이다.

 

나의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가족들은 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할머니는 아직까지 메주로 조선간장과 고추장을 담그시고, 아버지는 내가 집을 방문할 때마다 참치회, 전복찜, 감바스 등 새로운 메뉴로 나를 놀라게 하시는가 하면, 이모부는 나무를 손질해 가구를 만드시더니 목재 인테리어까지 직접 하기에 이르렀다. 동갑내기 사촌은 꽃다발도 직접 만들며, 베이킹에도 꽤 능숙해서 주변에서 주문을 받기도 한다.

 

가족들과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손길이 닿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손의 힘이 아닐까. 손을 사용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또 그 결과를 보면서 세상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비교적 큰 다툼이 없는 우리 가족들을 보면, 손의 거처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비단 우리 가족과 나뿐만이 아니라, 손길이 닿는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힘으로 살아간다. 내가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얼마 전 친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노후에는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하고 있자.”고 서로 약속했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더더욱 손을 사용한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감각보다 손을 이용한 촉각이 내겐 자극적인 때가 올 테니까. 그 자극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올 테니까. 언젠가 나이 든 내가 손으로 지극 정성을 들이고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꽃을 사 말린다.

 

나는 손이다. / 나는 손이었고 손이어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눈에 빼앗긴 몸을 추슬러야 한다.
귀에 빼앗긴 마음을 찾아와야 한다.

수시로 눈을 감아야 한다.
틈틈이 귀를 막아야 한다.
자주 숨을 죽여야 한다.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이 손으로 / 손에게 지극해야 한다.
-이문재, <손의 백서>,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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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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