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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의 마음 튜닝법

『픽스유』를 읽고 중요한 것은 0을 1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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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작가가 인상깊게 본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당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매기스 플랜>, <45년 후>나, 책 『100만번 산 고양이』, 『깊이에의 강요』 등을 정신과의사가 아닌 작가의 처방으로 내놓는다.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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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당신은 불안장애 환자입니다

 

정신과를 찾아오는 사람의 매우 다양하다. 조현병, 치매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부터 시험을 앞둔 불안, 실연의 아픔에 의한 좌절로 잠깐 주저앉은 사람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어지러움을 호소하면 온 사람이라면 혈압을 재면 정확한 혈압 수치를 알 수 있고, 혈액검사를 하면 혈색소 수치로 빈혈 여부를 판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신과는 아직까지 객관적으로 호소하는 증상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이 몇 가지 없다. 솔직히 뇌MRI와 같은 영상 검사로 뭔가가 나온다면 그건 무척 많이 진행된 심각한 문제로 봐야하니,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안해요, 우울해요”라고 하면 일단 인정하고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안에 있는 것은 정말 심각한 사람이 이 문제를 부정하고 상대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원에서 볼만한 상황이 아닌, 일시적인 어려움을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인지 감별해야하는 문제다. 최근 들어 많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후자의 경우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정상에 들어가 환자의 영역에 온 것이라기보다, 건강함과 정상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약간 정상선의 경계선 언저리로 밀려 내려오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을 ‘우울과 불안’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 스트레스를 경험할 일이 도처에 있고, 완벽하고 깔끔한 세상에서 살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현재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함과 불가피한 실패를 심각한 증상으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 이럴 때 경험이 많은 정신과의사들이라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할 수 있다. 특히 의사로 살아온 사람은 ‘불편해 하는 것, 아픈 것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전문가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걸 모른다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건강과 정상 사이에서 일시적 삶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당신은 우울증이 있네요”
“당신은 불안장애 환자입니다”

 

라고 진단을 내리거나 심리검사등을 해서 성격의 문제점을 너무 정확히 지적하는 것은 썩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여긴다.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왔지만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이 분명히 있는 것도 아니고, 수술을 할 문제도 아니며, 물리치료를 해야할 것도 아니다. 다만 허리 주변 근육이 약해서 벌어진 일 같으니 이때에는 병원이 아니라, 피트니스를 다니거나, 집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야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당장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한다. 그냥 둬도 쉬면 좋아질 수 있는 것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지금도 수많은 정신과나 심리상담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모든 사람이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아야하는 것도, 심리상담소에서 오랫동안 상담을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 잠시 삶의 좌절을 경험하거나, 너무 빡 센 삶을 살면서 힘들어 헉헉 대며 숨이 턱에 차오를 때, 그런데도 쉬지 못하고 하던 대로만 하려고 할 때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경험이 많은 한 정신과의사가 라디오작가와 함께 책을 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의 윤대현 교수가 자신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정현주 작가와 『픽스유』라는 책을 낸 것이다. 많은 분이 KBS 2FM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알 것이다. 화요일마다 해열제라는 상담 코너를 진행하는데, 거기 고정 게스트가 윤대현 교수다. 나도 가끔 듣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은 게 일반적인 심리상담의 심각함, 이론적 접근은 일도 없이, 만담과 개그 코너를 듣는 거 같은 웃음 소리와 다소 거친 듯한 질러대는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다 보면 꽤 공감이 가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의 해법이 나오는데 ‘아하!’하는 깨달음을 얻게 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만한 게, 윤대현 교수는 다른 정신과의사들과 달리 10년 넘게 검진센터에서 의뢰된 환자 같지 않은 환자들을 상담해왔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덕분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검진을 받다가 스트레스가 많거나, 가벼운 우울, 불면, 불안을 경험하면 필요한 경우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데, 이들의 평소 사회 기능은 윤대현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나보다 훨씬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갖는 고민을 충분히 들으면서 한 두 번의 원 포인트 레슨을 통한 마음의 튜닝과 업그레이드를 해온 내공이 라디오 상담 코너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여기다 20년 공력의 라디오작가가 쓴 자신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합쳐졌다. 자칫 상담이야기만 있으면 지루할 수 있는데, 소곤소곤 옆에서 말을 해주는 듯한 친절한 말투로 이어지는 글이 함께 있는 것도 이 책의 색다른 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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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다른 쪽에서 푹 찌르는 면이 어떤 묘한 쾌감

 

이 책은 평소 정상과 건강의 사이에 있으면서 아슬아슬한 마음과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은 압박감속에 사는 사람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내용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분노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자유다. 성격대로 못살아서 생긴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 분노는 사라진다.

 

- 일하고 남는 시간에 놀지 말아라.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놀아야 한다. 안 그러면 뇌가 방전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일하듯이 놀지 말아라.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대로 놀아야 한다.

 

- 회사는 아름다운 곳이 원래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먹으면 역설적으로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일이 지루하고 권태로울 때는? 대출을 받아라. 힘이 날 것이다. 당장 갚아야할 게 생기면 집중할 이유가 생긴다.

 

- 자존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존감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 온 힘을 다해 나를 희생해서 일하지 마라. 월급날 ‘내가 이걸 다 받아도 되나’ 살짝 미안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일하는게 정신건강에는 확실히 좋다.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여러모로 역설적이지만, 평소 우리가 ‘이래야 한다’라고 여기던 방향성과 다른 쪽에서 푹 찌르는 면이 어떤 묘한 쾌감을 주는 맛이 있다. 이런 자극적인 면을 중화시켜 주는 것이 공저자 정현주 작가가 쓴 글들이다. 작가 생활을 하면서 힘든 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 그때 함께 해준 선배와 후배가 준 고마운 손길의 의미를 잔잔하게 적어내려 갔다.

 

더해서 정현주 작가가 인상깊게 본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당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매기스 플랜>, <45년 후>나, 책 『100만번 산 고양이』, 『깊이에의 강요』 등을 정신과의사가 아닌 작가의 처방으로 내놓는다. 이를 통해 변하는 사랑을 이해하는 법, 남들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릴 때, 비밀을 비밀로 둬야하는 이유와 용기, 이별을 한 후 고마웠다고 기억하는 일의 소중함을 책을 넘기면서 끄덕이게 되고, 그 영화와 책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저자들은 말한다. 세상 사는 것 힘들지만,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고, 손을 내밀어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살만하고 견딜 만할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기있는 사람들, 남들이 많이 찾아주는 사람, 인맥 넓은 사람이 되기 원한다. 0인 사람이 100을 원한다. 외롭고 고립되었다고 느껴질 때, 그 막막함이 0이라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0을 1로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줄 때 알량한 자존심으로 뿌리치지 않는 것, 손을 내밀어 잡으려는 마음을 수치스럽다고 느끼기보다 본능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으면, 0이 1이 되면 그때부터는 훨씬 든든하다. 0에서 1의 거리와 1에서 100의 거리 차이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정상적으로 잘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픽스 유정현주 ,윤대현 저 | 오픈하우스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온 윤대현의 상담은 현실적이면서도 명쾌하며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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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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