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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특집] 가수 이랑이 반려동물 ‘준이치’와 사는 법

<월간 채널예스> 10월호 청춘들의 냥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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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험 들기도 힘든 현실에 고양이 보험은 더더욱 그림에 떡이다. 12년차 냥이 집사 이랑이 고양이 키우고 살기 힘든 현실을 말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의 가난한 청춘은 고양이마저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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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이랑은 17살에 가출 겸 출가를 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미대 입시도 준비해 봤지만 열 시간 넘게 석고상만 그리다가 오만 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일러스트와 만화 그리기는 소중한 밥벌이가 되어 주었다. 수능을 안봐도 된다는 말에 들어간 대학에선 영화연출을 전공했지만 미술이론이나 애니메이션 수업을 기웃거리며 진지하게 전과도 고민했다. 간간이 기타도 치고 노래도 만들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음악과 미술, 사운드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은 바로 영화구나. 생각의 전환이었고 그 때부터 영화도 그녀의 것이 되었다. 여전히 이랑은 노래를 부른다. 앨범을 냈고 상도 탔다. 네 컷 만화를 그리고 에세이도 썼다. 단편 영화도 만들고 웹드라마도 찍었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소설도 써야 한다. 이야기를 생산하는 제조업자! 그녀의 가슴속 컨베이어 벨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져 나온다. 꼭 어느 하나의 형식일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 그녀의 이야기고 엇비슷한 또래의 시간살이며 종내는 이 시대 청춘의 풍경이 어느 하나의 그릇에만 담길 리도 없다. 허나 모든 이야기에 한 가지 맛은 빠지지 않고 담겨 있다. 사랑에도 희망에도 위로에도 통쾌한 권선징악에도 기본양념처럼 배어 있는 것은 바로, 생은 고달프다는 깨달음! 그녀 스스로가 지나온 시간에 고스란히 자리 펴고 앉은 터줏대감이다. 이 정직한 고백에 그녀의 냥이 준이치의 삶도 붙박혀 있다. 가난 속에, 팍팍한 세월의 텃세 속에 꿈의 이부자리를 편 청춘의 보고서 위에, 식빵굽는 자세로 앉아 있다.

 

준이치는?


건대근처의 위험천만한 도로 옆에서 발견된 길고양이다. 십중팔구 어미를 따라가다 놓쳤을 거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깽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행여 다칠세라 데리고 온 친구의 품에서 내게로 넘겨졌다. 한 때 빠져들었던 우스타 쿄스케의 만화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에 등장하는 재규어 준이치에서 이름을 훔쳐왔다. 이후 나의 준이치로 12년을 살아가고 있다.

 

12살, 준이치옹은?


한 성격 하시는 할배다. 장난감을 던져줘도 무심, 나한테도 심드렁하다. 외박하고 들어오면 베개에 똥도 싸고 오줌도 갈겨 주신다. 친구 집에 맡겨 놓고 여행을 다녀오면 벽 보고 앉아서 눈물도 뚝뚝 흘린다. 잠도 따로 자고 어릴 때와 달리 잘 치대지도 않는다. 좀 쓸쓸하다. 슬프다는 생각도 든다. 헌데 난 준이치로 바라기를 멈출 수 없다. 혼자 자는 방에서 지난 세월이 자주 씹힌다.

 

키울 때 힘들었던 기억은?


아프면 힘들다. 병원에 데리고 가면 나도 준이치도 곤욕이다. 안부리던 성질을 부리길래 혼내기만 했는데 하품할 때 보니 어라? 뭔가 이상했다. 익숙한 그림이 아니라 살펴보니 송곳니 하나가 반쯤 부러져 있었다. 에고고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전부 노출돼 있으니까 뽑아야 했는데 이 하나 뽑는데 30만원 이었다. 도통 오줌을 못 싸고 이불을 긁으며 지리길래 병원을 찾았더니 결석이었던 적도 있었다. 돈 한 푼 없는 학생이라 하는 수 없이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준이치는 그 외엔 별다르게 아픈 곳 없는 건강한 고양이었지만 주변의 아픈 고양이들, 아픈 고양이를 치료해야 하는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 생각한다.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쉽게 결정할 일이 절대 아니다.

 

함께 했던 좋은 기억은?


매일매일이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문 앞까지 마중 나온 다소곳함, 잠자는 발치를 맴돌며 슥슥 부드러운 털질을 해주던 촉감, 식빵을 굽는 나른함, 홀린 듯 창 밖을 응시하는 둥근 옆모습, 그루밍을 멈추지 않는 청결함, 참치캔에 코박은 식욕까지 사랑스럽지 아니한 찰나가 없다. 가장 좋은 건 말없음, 괜한 말로 오해하고 다투는 사람의 말을 갖지 않아 좋다. 하지만 돌이켜보 건데, 난 더없이 사랑스러운 준이치에게 그다지 잘 해준 게 없다. 언젠가 못했던 기억을 헤아려봤는데 너무 많았다.

 

준이치는 이야기 제조업자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예술가에게 선사하는 영감? 그건 좀 사기 같다. 대신 나는 준이치를 이용한다.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만화를 그릴 때 고양이를 넣으면 사람만 등장하는 것보다 좋아한다. 청탁 요청을 할 때도 “고양이도 같이 넣어주세요” 한다. 같이 사니까 자연스레 그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걸 안다. 영화 <터널>에서 하정우만 나오면 재미가 없다. 개 한 마리가 등장해주니까 그거 보는 맛으로 끝까지 본다. 가끔 준이치를 향해 말한다. 너를 팔아서 산다. 이 은혜 언제 갚냐.     

 

바야흐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10년 넘는 집사로서 할 말 없나? 


할 말 많다. 동물 키우는 기준이 엄격했으면 좋겠다. 일본의 경우 입양조건도 까다롭고 집 얻을 때 방세도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래서 생활이 안정적인 나이 많은 이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나는 아예 운전면허처럼 따로 시험이 있었으면 싶기도 하다. 반려동물은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예쁘다고 귀엽다고 기분에 돈 지불하고 데려오는 대상이 아니다. 생명을 들인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어야 함께 살 수 있다. 알아야 할 지식도 많다. 나 역시 그런 각오 없이 시작했다가  빡센 경험을 했고 괴로웠다.   

 

준이치의 입을 빌어 인간세상을 향해 한 마디 한다면? 


“인간아! 나도 너랑 똑 같은 생명이다! 같은 권리를 갖고 세상에 태어났다!” 가끔 도시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 끝없는 주택가, 즐비한 아파트와 마천루가 장악한 땅에 있던 것은 무엇인가. 들과 산은 어디로 흩어졌으며 그 속을 뛰놀던 생명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인간은 자꾸 제 영역을 표시하고 다른 생명을 내쫓는다. 갈 데도 없는데 내몰고 보이면 혐오하고 해치고 죽인다. 그래놓고 화성인이 침공하면 그러겠지. 지구의 주인이 인간 혼자였던 것마냥 살려고 사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그런 현실, 그런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있자면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한편으로 우리는 참 못된 존재다.

 

PS: 이랑은 충고한다. 돈 없는 청춘들이여 냥이의 솜발바닥을 매만지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고민하라. 생명 하나를 책임 질 수 있는지 가늠하고 또 가늠하라. 이건 정서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냥이의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 지를 따져보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다. 답을 얻었다면, 충분히 넉넉하다면 시작하라. 구름 같은 보드라움과 침묵으로 핥아주는 충만한 위로가 당신의 가슴을 부벼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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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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