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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간호사로 사는 법

『간호사를 부탁해』 저자 정인희 인터뷰

말로 하면 가볍게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막연한 정서를 스스로 납득이 가게 풀어가는 것이 제 성장에 도움도 돼요. 쓰면서 위로받는 기분? 글쓰기의 이유가 좀 슬프죠. (2017.12.07.)

글ㆍ사진출판사 제공

최근 한동안 ‘간호사’라는 단어가 뉴스에 오르내렸다. 이번에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적어도 나쁜 사람으로 비친 건 아니니까. 간호사의 삶이 매체에 보도되는 그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보통의 간호사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낄까? 일생을 통해 누구나 한 번 이상은 만나지만 아무나 알지는 못하는 간호사의 일상 속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10년째 수술실 간호사로 일해오고 있는, 지금은 호주에 정착한 정인희 간호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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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막힌 수술실 안에서 빛이라고는 형광등과 무영등의 인공조명뿐인 환경. 비 오는 날의 축축함도, 햇빛 가득한 날의 뽀송함도 수술실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의 미묘한 습도 차이로밖엔 느낄 수 없었다. 하루 10시간 창문 없는 수술실에서 지내고 밖으로 나왔는데 퇴근이 늦어 바깥조차 어둠이 가득하면 그때는 정말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간호사 에세이라고 해서, 간호사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조금은 가벼운 글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제 세계와는 별로 겹치는 게 없는. 그런데 막상 읽다보니 ‘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막 공감이 되니까.

 

공감해주신 건 아마도 제가 간호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고 직장인이기 때문 아닐까요. 환자의 건강과 목숨이 달렸기에 병원 일이 일반 직장 일과 아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간호사로 일하면서 그 의미를 항상 되뇌지만 그것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보통의 인간인 저 자신이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전 좋은 간호사도 되고 싶지만 그 전에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다고 믿기도 하구요. 그렇다 보니 병원 생활 하면서 머리나 가슴에 남는 일이 생기면 간호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가 생긴 것 같아요.

 

글을 보면, 무언가 고리 같은 게 느껴져요. 어떤 사건에 탁 걸려버려서 그냥은 풀리지 않는 감수성이랄까.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글쓰기고. 그렇게 일상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무심한 듯 예민한 스타일이라 그냥 지나쳐도 됐을 일들에 의미를 새기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안겨주는 생각, 감정은 꽤나 무겁기도 하고요. 그런 게 한번 마음에 닿으면 정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더라고요. 마음을 정리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 수단이 글쓰기가 된 건 아닌가 싶어요.


간호사들은 보통 그런 일을 마음 맞는 사람과 수다 떨면서 풀곤 하는데, 저는 글로 쓰는 게 정리가 더 잘 되었어요. 음… 이런 감정들, 삶이나 인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은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정리가 되기는커녕 더 큰 상처로 남기도 하잖아요. 어렵게 꺼낸 이야기인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해?' '뭐가 그렇게 심각해?' 같은 반응이 오면 움츠러들거든요. 실제로 남에게 어설프게 말을 걸었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경우도 있어요.


말로 하면 가볍게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막연한 정서를 스스로 납득이 가게 풀어가는 것이 제 성장에 도움도 돼요. 쓰면서 위로받는 기분? 글쓰기의 이유가 좀 슬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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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것’ 또는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악기를 연주하고 경제학 책을 읽고 하는 것 같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 왜 필요한가요? 또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본능이죠. 혼자 있는 시간을 지키게 된 건.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힘이 나더라구요. 왜 그럴까 돌아보니 몇 가지 이유가 보였어요. 첫째, 휴식이죠. 혼자 있으면 관계 속에서 마음 쓰는 일이 없으니 마음의 피로가 풀려요. 둘째, 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죠.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남도 이해 못할 거예요. 그래서는 잘 살기 어렵죠. 셋째,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건데, 병원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에요. 하루에 거의 10시간을 수술방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둘러싸여, 수많은 사람들과 심각하게 대화하고, 가끔 쓸데없는 신경전이라도 벌이면, 퇴근시간 즈음엔 정말이지 ‘절대 고요’가 그리워 집니다. 퇴근해서 씻지도 않고 소파에 누워 있다 보면 ‘이제야 좀 조용하네. 아~ 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수술실을 떠올리면, 저 같은 사람은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장면들이 막 떠오르거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술실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수술실 간호사에게 수술실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나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어요. 크게는 삶과 죽음이 있는 공간이지만 생활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저에게는 일단 직장이에요. 내 능력을 보여서 인정받고 싶은 곳. 그 다음으로는 집 같은 생활 공간이랄까. 또 좋고 나쁘고 힘들고 재미있는 시간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는 동아리방 느낌도 있습니다. 반면 절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을 견뎌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시험당하는 곳이기도 해요. 가끔은 흐트러진 마음을 일을 통해 정돈하는 명상소 같기도 하고요.


한가지 분명한 건 이제 수술실 없는 제 삶은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여느 직장인들처럼 출근하기 싫다고 말은 하지만, 긴 휴가 중에는 종종 수술실을 그리워하거든요. 뭐,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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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들이 타인의 신체적 고통에 무감할 거라는 편견 같은 것도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적 고통 앞에서 무엇을 먼저 떠올리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병원 밖 사람들은 ‘아프겠다. 어떡해.’ 하는 감정이 먼저겠지만 의료인들은 ‘여기를 이렇게 다쳤으니 이런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하고 현실적 해결 방법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학교에서부터 오랜 기간 훈련받았으니까요. 그렇다고 감정적인 면을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이 어디서 생겨나는지는 짐작이 돼요. 교통사고로 전신 골절이 된 환자나 말기암 환자 같은 중증 환자를 자주 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아프다는 말에 “그 정도는 그냥 푹 자면 나아. 한숨 자도 계속 아프면 병원에 가보든가.” 같은 말을 뱉기도 하니까요. 또 제가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의 경계가 명확하다 보니 제 영역 밖의 요청에 대해서도 가끔 무신경하게 대응하곤 합니다. “내가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해도 상대는 서운해하지요.

 

우리는 언제 냉정해져야 할까요? 수술실 장면을 소재로 한 글들을 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의료인의 자세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긴박한 순간을 의료진들은 자주 경험합니다. 특히나 저는 중증외상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런 순간에 더 자주 노출돼요. 하지만 그간의 ‘훈련’ 덕에 그 순간들에 압도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더 냉정해진달까?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지금 이 순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환자를 살릴 방법만 빠르게 생각하고 실행합니다. 물론 인간이다 보니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엔 감정이 생기긴 하지만, 슬프다 기쁘다 같은 극적 감정은 잊고 일에만 집중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죠. 


 우리는 언제 냉정해져야 할까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섣불리 답을 내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질문이지 싶어요. 그 답을 알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정년퇴직하는 그날까지 찾지 못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에게 주어진 열쇠 아닐까 짐작만 해요.

 

한국에는 무언가에 올인하지 않는 인생을 문제가 있는 인생으로 보는 문화가 있고, 거기에 반발하여 ‘꿈 고문’ ‘희망 고문’ 그만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았는데 얼마나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인가요.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한 고려 없이 ‘열심히 하면 다 돼!’라고 말하는 건 짜증이 나요. 저도 물질에서 자유롭지 않아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남보다 좋은 집, 좋은 차, 비싼 가방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전 각자 본인의 삶을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지랖 그만 부리고, 물건 자랑뿐인 SNS 그만 들여다보고, 너는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간호사를 부탁해 정인희, 고고핑크 저 | 원더박스
병원에서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속품 정도로 바라보는데,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간호사들끼리의 문화까지 더해져서 몸과 마음이 늘 기진맥진이다. ‘워라밸(워크 & 라이프 밸런스)’을 꿈꾸는 건 간호사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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