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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 하얀 눈썹

만화가 간올 검은 고양이 파농과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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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는 외과 의사, 고양이는 정신과 의사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개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영 틀린 말이라고 본다. 고양이는 우리의 정신을 돌보지 않으며 돌봐야 할 의무도 없다. 우리는 피차 적응해서 산다. (201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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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아직 재건축 바람이 불지 않았던 망원동 한 주택가에서 하루 종일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당시 대학생이던 내가 보고서를 쓸 무렵부터 마칠 때까지 였으니 적이 네 다섯시간은 되었을 터다. 나는 홀린 듯 ‘시끄럽다’와 ‘저놈이 왜 우나’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왔고, 소리의 근원은 옆집이었다. 훌쩍 높은 담벼락과 강철살 대문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이 초인종을 누르면 인생에 고양이가 들어올 수도 있어. 숨을 크게 쉬고 그 집에 간단한 보고를 알렸다. 소리를 찾아 돌아 들어가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폭이 좁은 계단 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여느 모로 도저히 혼자, 혹은 다른 고양이의 도움으로도 나올 수 없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고양이가 왔다. 작고 엉성한 걸음새. 밥을 내주어도 그릇 가생이에 주둥이가 닿는 느낌이 어색한지 거푸 헛입만 켜는 이 멍청한 고양이에게 똑똑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프란츠 파농. 온통 검은 털에 눈가만 희미해 흰 것이나 다름없는 고양이의 적절한 이름이 되었다.

 

견디는 법을 아는 고양이

 

파농이 집에 있을 무렵부터, 그리고 지금도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양극성 우울증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우울증보다 우울감이 깊다. 우울증 환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반려동물도 우울 증세를 보인다는 데에 있다. 좋아하는 것도 마땅치 않고, 싫어하는 것도 별로 반응이 없고, 밥이나 간식 등에도 시큰둥하고 무엇보다 그 반짝반짝한 눈을 보기가 어려운, 매일 자거나 가만히 있거나 때로는 자신을 원망이라도 한단 듯이 바라보는 그들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얼마 전 개는 외과 의사, 고양이는 정신과 의사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개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영 틀린 말이라고 본다. 고양이는 우리의 정신을 돌보지 않으며 돌봐야 할 의무도 없다. 우리는 피차 적응해서 산다. 파농의 눈에는 내가 조금 침울하고 침체되어 있지만 그래도 몸을 기대고 누이면 마뜩한 존재이다. 나는 그의 아주 아주 작은 것을 무척 무척 온 힘을 다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맙다. 어떤 집에도 적응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도 적응하고 어떤 밥과 물에도 기꺼이 먹어주는 그의 수더분함은 너무 예민하고 과잉된 초조에 시달리는 나에게 아주 고마운 짝이었다.

 

물론 고양이를 안고 있어도 불면의 밤이 오고, 고양이가 밥을 조르거나 흐르는 물을 달라고 칭얼거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팔배게를 하고 누운 파농의 배를 쓸고 뱃살을 만지고 털을 결방향으로 쓸어주면서 말하지 않아도 파농은 절로 몸을 데운다. 까끌까끌한 혀로 손가락을 쓸다가 잠이 들다가 다시 몸을 털고 일어나 나간다. 고양이를 내 가까이에 두는 것이 익숙해졌듯 고양이도 나를 견디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까다로운데도, 이렇게 어려운 사람인데도, 때로는 진절머리나고 때로는 울적함을 멀리멀리 전염시켜도 그리고 때때로 너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도. 파농은 나를 찾아와 함께 잠들고, 내가 자리를 비우고 집에 없으면 울며 찾는다. 기간이 길어지면 털이 부스스해지고 울음소리가 날로 애처로워지는, 밥을 잘 먹지 않거나 계속 밥을 먹거나 하는.

꽉 찬 육키로, 나이는 다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파농은 암컷 고양이치고 꽤 크고 묵직한 편으로 무게가 6-7kg에 육박한다. 하지만 외양은 그보다 날씬한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가족들이나 고양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얘 개 아니야?” 할 정도로 큰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고양이 주인들의 마음은 ‘실은 우리 고양이가 이렇게 작고 여리고 애기고양이인데...’ 하는 바이다. 늘 파농을 보고 있지만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조고만 고양이! 토끼 고양이!(귀를 뾰족하게 세워주며), 폴드 고양이!(귀를 접으며) 하며 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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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농은 얼마 전 내가 가족들과 살게 되면서 지방의 한 고장으로 내려왔는데 특유의 고양이의 아름다움을 뽐내주시며 가족갈등 화합의 선봉을 도맡아 하고 있다. 어머니는 그 많은 놀잇감을 마다하고 고장 난 선물용 리본을 흔들어주면 흥분하는 이 고양이가 절약을 안다며 좋아하시고, 아버지는 먹이 캔을 톡톡 두드릴 때마다 와앙와앙 울며 애교 아닌 애교를 피우는 모습을 흐뭇해하고, 형제들은 따뜻한 제 방 이불위에 고양이가 올라와서 잔다든지 오다다다 도망 놀이를 하며 종일 움직이지 않는 히키인 자신을 달리게 하는 고양이의 품성에 흠뻑 빠졌다. 물론, 놀아주고 재미를 주는 사람들이 다섯 배가 된 만큼 이 고양이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내 방을 와오와오 배회하며 이상한 것을 갉갉 소리를 내며 바각바각 긁는다든지 침구 주위를 아바바바 뛰어다니다가 풀썩 배 위로 온몸의 무게(육키로)를 실어서 점프를 할 적마다 나는 고얀히 성을 내는 시늉을 하며 고양이 목을 답싹 잡아다가 이불에 처넣고 함께 잠이 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파농은 일곱 살 정도 되었을 것이며 언제부턴가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망막질환이 있는 나를 닮아서인지 물체를 보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데 특히 가까이 있는 물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또 이 고양이는 무슨 성격인지 높은 곳을 올라가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물건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당시에는 착한 고양이~ 라며 추켜세웠지만 이제 고양이 나이도 나이인 만큼 그런 모습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게 이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할 정도로. 그러니까 구구절절 말했으나 요지는 착한 고양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말썽을 피우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고양이도 나도. 그래서 새로운 것을 흡수하고 그에 행동 양태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귀찮지만 너무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이를테면 고양이는 집에 내려오면서 화장실에 세면대로 흐르는 세면기 물을 찹찹 먹는 버릇이 들었는데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화장실 앞에 둥지를 틀고 지나가는 모든 만만한 이들에게 와옹와옹 울면서 물을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 번거롭지만, 너무나 기쁘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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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농의 취미

 

파농은 자기 것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다른 고양이들이 하듯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특정 장소에 숨겨두거나 자기 마음에 아주 드는 물건이라는 게 없다. 파농은 좀 더 분위기를 사랑하는 고양이이다. 다른 처음 보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마뜩잖아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오면 공간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내가 기분 좋아한다는 점을 좋아하기 때문에. 파농이 옛날 집에서 의문을 가진 것은 왜 사람들이(나와 동거인) 약 한 시간에 한 번씩, 세탁기가 있는 춥고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일까- 였다. 물론 우리는 담배를 피우러 가는 것이지만 담배라는 것을 고양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던 것인지. 게다가 그 작은 창고방에는 파농의 먹이통이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결론은 “저 녀석들이 내 밥을 먹으러 간다!” 비슷하게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을 들어서 문을 닫자마자 밖에서는 갖가지 고양이 소리를 내면서 위야옹위야옹 울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나오면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조사하기를 바랐다. 바보 고양이....

 

그랬던 집에서 훨씬 넓은 지금의 집으로 온 파농의 나날은 훨씬 널럴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소파 자리에 앉아서 지그시 바깥 구경을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발톱 긁개 위에 누워서 소일하다가 집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방으로 걸어 들어가 이불 속에 숨어 잔다. 낮에 사람들이 없을 때 고양이는 그렇게 있고 싶은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도 꾸다가 사람들이 저녁때 오기 시작하면 한 사람씩 맞아준다. 다리에 머리를 비비거나 하면서. 그리고 그즈음에 내가 앉아 자리를 펴고 작업할 준비를 하면 그 위를 곡예 수준으로 돌아다니며(곡예 수준으로 어지럽혀져 있기에) 놀다가 그림을 그리는 내 무릎위로 내려와 보고 있거나 잔다. 몸이 따끈따끈해지면 저리 가서 자! 하며 고양이를 던지지만 일은 반복될 뿐이다. 게다가 파농은 내가 작업 직전에 펼치는 흰 노트의 질감을 좋아해서 그 위에서 몸을 뒤집고 난리가 난다. 그래서 작업을 마칠 때까지 밖에 내놓으면 바깥에서 사람들과 놀다 잘 무렵에 되면 들어온다. 이불 굴을 만들어 유인하고 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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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도 여러 유형이 있다. 내 친구들의 고양이들의 면면을 보았을 때 선생님이나 해탈 유형이 있었고 현실적인 말썽쟁이 타입도 있었고, 우울증 고양이도 있었고, 인간화된 고양이나 아니면 고양이 사회화가 가속화되어 인간과 별다른 유대를 만들지 않는 유형도 있었다. 파농은 어떠냐 하면 다분히 인간 중심적 사고이지만 그는 절대적으로 나를 믿는 고양이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밥을 주고 물을 주고 같이 좁은 방에서 살았기에 나오는 것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 고양이는 때로 내가 너무 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자기를 생각할 여력이 없는 믿음직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인 것이다. ‘그래도’인 것이다. 그 고양이가 어째서 나를 신뢰하고 사랑하는지에 대해 나는 의심과 자기 불신투성이 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 사이에 대해서 우리의 유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앞으로 있을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대해 생각하자고 끊임없이 느낄 수 있다. 역시 파농은 좋은 고양이이다. 고양이와 있으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말이라고 파농이 조용히 답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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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간올(리단)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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