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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희 교수 “사상가, 실천가, 문헌학자 루쉰의 재발견”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루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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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정말 사심 없이 평생을 살아간 사람이라고 봐요. 개인적인 것에 끌려간 사람이 아니죠. 루쉰이 ‘입인(立人)’이라는 말을 썼잖아요. ‘사람을 세운다’는 건데요. 그건 결국 주체성의 문제라고 보거든요. 이 사람은 자기 줏대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2018.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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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늙은이를 위해 기념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내가 목도한 수많은 청년들의 피가 층층이 쌓여 숨도 못 쉬게 나를 억눌러 이런 필묵으로 몇 구절의 글을 쓰게 했으니, 진흙 속에 작은 구멍을 뚫어 간신히 숨을 쉬며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어떤 세계일까? 밤은 바야흐로 깊어가고, 길 역시 한참 멀다. 나는 차라리 망각하고 말하지 않는 게 낫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니라도 미래에 그들을 기억해낼 것이고, 그들의 시대를 다시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을.(335쪽)

 

『후통, 베이징 뒷골목을 걷다』, 『소설로 읽는 중국사 1, 2』,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등을 쓰고 루쉰의 『중국소설사』와 데이비드 롤스톤의 『중국 고대소설과 소설 평점』 등을 번역한 상명대학교 중문과 조관희 교수는 신작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루쉰』에서 루쉰의 생애를 따라가며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루쉰을 재발견했다. 시간을 따라서 총 6부로 나누어 루쉰의 행적과 글을 통해 그의 사상을 톺았는데, 루쉰의 삶을 통째로 조명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흔히 『광인일기』, 『아큐정전』을 쓴 문학가로만 알려진 루쉰이 실은 평생을 타협하지 않은 실천가로, 청년을 호명한 시대의 사상가로, 고대소설사를 총망라해 정리하는 작업을 해낸 문헌학자로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관희 교수가 ‘루쉰의 싸움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싸움이야말로 루쉰의 존재 이유였던 걸까?’라고 적었을 만큼 루쉰의 삶은 투사의 삶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안정된 삶도 번번이 포기했다.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그의 희망과 신념이 향한 곳이 다름 아닌 청년들이었다는 점이다. 한 세기 전 중국의 루쉰이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에게 건네는 말도 물론,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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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지향하려고 했던 바


왜, 지금 루쉰일까요? 지금 루쉰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 것도 같아요.

 

저는 루쉰 전공은 아니에요. 사실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시작했는데요. 시작하고 보니 루쉰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더 나더라고요. 루쉰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어요. 루쉰이 초기에는 중국 고대소설 연구를 많이 했고요. 소설사도 썼죠. 그 소설사를 제가 번역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아요. 전체적인 것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면서 보니 저도 공부가 많이 되더라고요. 

 

새롭게 알게 된 루쉰은 어떻던가요?  


루쉰이 여러 일을 많이 했지만 크게 보면 다 글 쓰는 것이죠. 그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소설이고요. 그런데 루쉰의 전체적인 글쓰기로 볼 때 소설은 굉장히 일부분이에요. 루쉰 소설의 의의나 영향력이 깊기 때문에 사람들한테는 소설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 건데요. 그것 외에, 루쉰은 문헌학자이기도 하고요. 중년 이후에는 산문을 많이 썼습니다. 현실과 밀접한, 당시 중국이 안고 있던 문제점들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 사람은 글쓰기를 선택한 거죠.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산문가로서의 루쉰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또, 현실에서 굉장히 치열하게 싸웠던, 투사로서의 면모를 많이 발견했고요.

 

역시 사상가로서,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인상 깊더라고요. 시대와 긴밀하게 호흡했기 때문이겠지만 특히 과학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나 사람을 세워야 한다고 했던 루쉰의 말들은 그야말로 사상가 루쉰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왜 글을 썼는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자신의 목표가 있어서 썼거든요.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도 했죠. 생활인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중국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을 타개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로써의 글쓰기를 했다는 점이에요. 사회 문제 타개를 위해 어떤 사람들은 교육 현장에 나가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군인이 되어 현실의 적과 싸우기도 했겠죠. 그런데 루쉰은 글을 써서 사람들을 계몽시키겠다는 것을 확실한 하나의 글쓰기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요. 이 사람의 글 하나, 하나가 각각 지향하는 바가 있어요. 그것을 읽어내는 게 루쉰 읽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려운 면도 있고요. 이 책의 후속으로 루쉰의 소설선, 산문선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그 중 산문 선정이 꽤 어려웠는데요. 루쉰이 지향하려고 했던 바에 대해 현재를 사는 우리한테 적용시켜보자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어요.

 

20세기 초, 한 세기 전에 루쉰이 살았던 시대와 21세기의 한국은 시간과 공간에서 모두 거리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루쉰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보편적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루쉰이 고민했던 몇 가지 화두가 있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우매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의식이에요. 중국이라는 나라가 외부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잖아요. 그 상황을 해결하려면 사람들이 중요한데요. 사실 이것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은 편향들이 있잖아요. 최근 몇 년의 일들을 보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차라리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죠.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진 것은 그런 일이 가능하게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 과연 지금 이 사회가 루쉰이 살았던 당시 중국 사회보다 나은 게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죠. 물론 없다고는 볼 수 없어요.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라는 부제가 더욱 의미 깊어요.


루쉰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희망이 없다, 하는 것이에요. 루쉰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청년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네. 나로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후배들이 이 사다리를 딛고서 더 높이 오를 수만 있다면 설령 내가 짓밟힌다고 한들 무엇이 아쉽겠는가!(중략) 실패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기만을 당하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없어지지 않더군.(297쪽)

 

교수님은 현직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교수님이 직접 보는 지금의 청년들은 어떤가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후학이라는 게 없거든요. 인문학을 하지 않아요. 그것은 왜냐하면, 희망이 없어요. 저희 세대 같은 경우에는 공부해서 박사까지 받으면 대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런 희망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그런데 지금은 박사를 받은들 대학에 자리 잡기가 어렵죠. 인문학은 점점 위축되고 있고요. 정규 교수보다는 비정년으로 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이기 마련이잖아요. 요즘 학회를 가면 신진 학자들이 안 들어와요.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고사가 되겠죠. 그런 면이 안타까운데요.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문학 역시 고답식의 접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그게 무엇이냐, 라고 한다면 아직 저는 모르겠어요. 다만 과거처럼 책 읽고, 논문 쓰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 같아요. 

 

루쉰이라는 사람의 탁월함


문학가로서의 루쉰에 대해서도 꼭 짚어야 할 것 같아요. 비교적 많지 않은 작품량에 비해 『광인일기』, 『아큐정전』 등 문학사적 의의가 큰 작품들이 많잖아요.


루쉰은 소설 분야에 있어서는 일단 독보적이에요. 지금도 이걸 넘어서는 작품이 많지가 않아요. 그것은 어찌 보면 루쉰이라는 사람의 탁월함도 있겠고요. 또 운도 있었겠죠. 처음 했으니까요. 이 사람이 워낙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후에 하는 사람은 뭘 해도 빛이 안 나잖아요. 또 저는 루쉰이 일찍 죽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루쉰은 56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었잖아요. 만약 이 사람이 더 오래 살아서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를 살았다고 한다면, 글쎄요. 그때 중국은 격변기였어요. 50년대 ‘반우파투쟁(1957년 시작된 사건. 공산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우파로 몰아붙이면서 탄압하고 학대했다.)’, 60년대 ‘문화대혁명’ 같은 것들을 루쉰이란 사람이 비켜갈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것 같아요.

 

굉장히 역설적인 이야기네요.


또한 루쉰은 마우쩌둥이 굉장히 좋아했어요. 중국이라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루쉰을 좋아한 거죠. 그러니까 루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많은 사람들이 루쉰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덕을 좀 본 것 같아요. 루쉰의 의도는 아니었지만요. 일례로 문화대혁명 시기는 모든 게 다 멈춘 시기죠. 대학도 문을 닫고, 학문도 없었어요. 논문도 쓰이지 않았고요. 그때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던 게 딱 두 가지라고 하잖아요. 마우쩌둥 어록과 루쉰 책이라고요. 사실 책날개에는 위화가 루쉰에 대해 한 좋은 말을 실었는데요. 위화는 루쉰을 싫어했대요.(웃음) 어려서 가장 감수성 풍부할 때 다양한 책을 읽지 못하고 루쉰만 읽었다는 거예요. 위화의 얘기가 루쉰의 시대성을 폄하하는 건 아니고요. 그런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다는 거죠. 만약 루쉰이 오래 살았다면 심하게 핍박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결코 쉽게 타협하지 않았잖아요. 개인에게 이로운 선택도 번번이 소신에 따라 포기하고요.


우리가 루쉰을 문학가, 사상가로서 그에 대한 페르소나를 씌우고 보지만요. 만약 루쉰을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알았다고 생각하면 어땠을까요.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워낙 괴팍했고요. 성질도 고약하죠. 편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 보면 만나도 사귀기 힘든 사람이었을 거다(웃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 『광인일기』를 통해 루쉰이 창작 실천의 훌륭한 본보기를 제공했다고 평가하셨거든요.


루쉰을 이야기할 때 『광인일기』『아큐정전』을 많이 얘기하는데요. 『광인일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첫 번째는 최초의 현대소설이라는 점이에요. 그러면 자연히 고대소설과 현대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죠. 그런데요, 거기에 대한 논문을 쓴 사람이 없어요. 상투적으로 다 그렇게만 얘기할 뿐이죠. 그래서 그것도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요. 제 생각에는 이런 것 같아요. 내면의 문제를 다루는가 하는 것이죠. 고대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삼국지』를 보세요. 관우의 심리가 나오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사건만 있을 뿐이지 그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는 없어요. 그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점이 있고요. 또 하나는 『광인일기』라는 작품이 던져준 파문이 굉장히 컸다는 점이에요. 기왕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신청년> 발표 당시 대중의 호응이 엄청났다면서요.


루쉰이라는 사람이 처음 문단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광인일기』예요. 당시는 필명을 썼거든요. 궁금증을 자아냈죠. 『아큐정전』도 마찬가지고요. 『광인일기』에서 촉발된 궁금증이 『아큐정전』에서 정점을 찍는데요. 이 작자에 대한 궁금증이 루쉰이라고 밝혀지면서 대단히 유명해지는 거예요. 당시 루쉰은 소설만 쓴 게 아니고요. 생계를 위해 교육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대학에서는 소설사 강의를 한 사람이에요. 소설은 어찌 보면 자기의 주업은 아니었는데 그게 오히려 파문을 일으킨 거죠.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 문제를 제3자의 입장에서 비판하던 것에서 벗어나 루쉰은 『광인일기』에서 문제가 결국 나 자신과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자각을 드러냈다고 짚어내셨는데요. 이 대목에서 또 생각할 것은 루쉰의 자기 점검의 태도예요. 시사점이 많아요.


그것은 루쉰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가가 쓰는 글이란 결국 작가 내면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저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요. 결국 자기 내면의 세계가 거기에 투영이 되어 있는 거죠. 이를 테면 제가 역사책을 엮었어도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있는 건 아니에요. 행간에 작가의 생각이 들어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서술은 물론이고 선별하는 것 역시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고 봐야 해요. 루쉰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에필로그에 ‘루쉰의 싸움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싸움이야말로 루쉰의 존재 이유였던 걸까?’라고 적기도 하셨는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좌충우돌이죠.(웃음) 그게 어떻게 보면 루쉰의 강점이죠. 이 사람이 존경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사심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상황을 전혀 생각 안 하잖아요. 신념만 생각했죠. 옳다고 생각한 것만 생각한 거예요. 그러한 주관이 있었기 때문에 좌가 됐든 우가 됐든 자신과 안 맞으면 싸웠던 거죠. 쉽지 않죠. 가장 큰 게 생계문제예요. 그 사람이라고 해서 왜 돈이 필요하지 않았겠어요. 당시도 대학교수, 괜찮았어요. 루쉰은 마음만 먹었다면 대학에서 지낼 수 있었어요. 중산대학, 그곳이 어떤 데예요. 지금 중국 10대 대학 가운데 하나예요. 당시 ‘4.12 쿠데타(1927년 장제스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 공산당과 좌파 인사들을 대거 숙청했다.)’라고 하는 사건이 있었고, 루쉰이 학생들이 탄압 받으니까 항의하는 의미에서 사표를 냈는데요. 그렇게 하기 힘들죠. 그리고는 월급 받은 게 그게 마지막이에요. 이후에는 글로만 살았어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을 썼죠. 원고료가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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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살았던 곳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루쉰의 탁월함은 뭔가요?


저는 고대 중국소설을 전공했기 때문에 루쉰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한계가 있어요. 다만 재미난 건 제가 이번에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게 있다는 점인데요. 루쉰은 엄밀하게 따지면 현대 문학가잖아요. 그런데 루쉰이 해놓은 것 가운데 일부가 고대소설에 관한 것이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고대소설사도 루쉰이 쓴 적이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것을 능가할 만한 소설사가 나오지 않았어요. 일종의 경전이 된 건데요. 거의 백 년이 됐는데도 루쉰의 소설사를 능가하는 게 없거든요. 그런데 루쉰 연구가 대개 현대문학에서 진행이 되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고대소설을 전공한 제가 새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계속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헌학자로서의 루쉰에 대한 일종의 연구 공백인데요. 중국 학계 사정도 비슷한가요?


중국은 워낙 루쉰 연구가 많기 때문에 없지는 않아요. 그런데 비슷한 것 같아요. 현대문학 쪽에서 바라보는 루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죠. 없지는 않지만요. 다만 저도 처음에는 루쉰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을 했는데요. 21세기 들어서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논문이 나한테는 의의가 있지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작업을 해야겠더라고요. ‘지역학’도 그중 하나예요. 의외로 한국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가 낮아요. 예를 들어 중국 베이징에 대한 책을 한 번 찾아보세요. 다 관광서예요. 베이징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없더라는 거죠. 있더라도 번역서고요. 그래서 제가 베이징 골목, 골목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쓴 게 『베이징 800년을 걷다』예요. 이런 작업을 앞으로 계속 하려고 해요.

 

문학과 역사에 대해 좀 더 문턱을 낮추는 작업들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중문과 교수잖아요. 학생들은 중국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잘 모르는 게 있어요. 중국어를 배운다는 것을 단어를 배우고, 표현을 배우는 것으로만 알아요. 물론 그게 기본이 되지만 중국어를 잘하려면 문화를 알아야 해요. 중국이라는 곳을 알아야 하거든요. 언어란 결국 사상의 집이니까요. 더구나 대학에서는 다양한 것을 배워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역사예요. 제가 학교에서 중국 역사 수업을 개설해서 가르치고 있는데요. 수업을 하려고 보니 교재가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사학과 선생님이 쓰신 것은 너무 어렵고요. 강의를 4년 정도 하다가 책을 내가 쓰겠다고 생각해서 대중들을 위해 쉽게 또 책을 썼어요. 그것이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조관희 교수의 중국 현대사 강의』죠.

 

앞서 후학이 없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런 면에서 봐도 대중이 진입하는 문턱을 낮춰주는 작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게다가 논문처럼 자세히 알 필요도 없죠. 큰 줄기만 찾아가서 교훈만 얻으면 되잖아요. 저는 강의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거든요. 자세한 내용은 필요 없어요. 그건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고요. 과거의 사건에서 말 그대로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뜻하지 않게 방송 출연도 하고, 역사 이야기를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어요.(웃음) 

 

책을 쓰시면서도 일본 센다이, 중국 사오싱 등을 직접 답사하셨다면서요? 사진 자료도 많이 수록되었어요.


저는 현장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살았던 현장을 가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루쉰이 살았던 곳을 한 번 가본 거죠. 다행히도 루쉰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진 않았어요. 중국도 중국이지만 루쉰은 일본에서 유학을 했잖아요. 지금 루쉰의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일본 센다이예요. 그가 공부했던 하숙집도 남아 있고요. 강의실도 보존이 되어 있더라고요. ‘환등기 사건(1906년 루쉰이 일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는 강의실에서 환등기를 통해 중국의 현실을 목격하고 학교를 자퇴한다.)’이 일어날 때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 말이에요. 현장에 가보면 조금이나마 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물론 저는 관광객으로 현장을 보는 것이지만요. 저는 현장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루쉰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어떨까요?


이 사람은 정말 사심 없이 평생을 살아간 사람이라고 봐요. 개인적인 것에 끌려간 사람이 아니죠. 루쉰이 ‘입인(立人)’이라는 말을 썼잖아요. ‘사람을 세운다’는 건데요. 그건 결국 주체성의 문제라고 보거든요. 이 사람은 자기 줏대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은 사람이죠. 한 마디로 자신의 주체의식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정리를 하고 싶어요.

 

 

 

 


 

 

루쉰조관희 저 | 마리북스
우리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오늘의 서’이자 ‘미래의 서’이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청년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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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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