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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말하기ㆍ듣기ㆍ쓰기 생활

『무엇이든 쓰게 된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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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논리가 뭔지 다 보여요. 어지간해서는 글로 자신을 속이기 힘든 것 같아요. (2018.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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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하는 사람에게 재능은 늘 골치 아픈 주제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것만 같고, 옆 사람은 다 나보다 잘 만드는 것 같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소설가 김중혁의 이번 에세이집은 선언 같아 보이는 제목(『무엇이든 쓰게 된다』)에다 부제는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다. 음식점에서도 마지막 비법의 가루는 안 보여주거늘, 이렇게 비밀을 밝혀도 되는 걸까. 하다못해 펜과 아이패드까지 보여주는데,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읽어두면 무엇이든 쓸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담았다. “나도 당신도 천재는 아니다. 천재 같은 건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면 이제부터 당신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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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희열


도구 소개, 창작을 시작하는 법,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꼭지를 모아 책을 펴냈는데, ‘글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네요.

 

다양한 장르의 창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많은 분이 글쓰기를 실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보면 글쓰기의 비법이나 팁 같은 구체적인 방법은 없어요. 실용적이지 않게 쓰는 게 목표였어요. 이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건질 게 없네 싶겠지만, 글쓰기 책보다는 창작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어요.


창작을 독려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면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선을 그어도 재밌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지 모르잖아요. 밤새 뭔가 만들어보는 재미, 자신이 노동을 하거나 공을 들여서 창작품을 완성한 순간의 희열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걸 소개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제가 소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음악 듣기, 이런 거죠.


제목이 주문 같아요. 정말 무엇이든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낸 책 중에 제목이 ‘ㅁ’으로 시작하는 게 많아요.  『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모든 게 노래』…. 운이 맞은 것 같아요. 또 물건 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돈을 쓰게 된다’ 이런 농담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소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무슨 펜을 쓰는지까지 소개했는데요.


늘 에세이를 쓸 때면 사소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은 작가에게 비법을 찾아내고 싶어 하는데, 사실 찾아낼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작가에게 24시간 카메라를 붙여서 관찰해도 비법을 알 순 없겠죠. 작가로서의 제 정체성은 물건을 사 모으고 분위기를 조성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무슨 펜을 사고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작가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세상을 보는 리듬


창작에 관한 책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가 처음이죠?


매년 나름대로 테마를 정했어요. 예를 들어  『메이드 인 공장』을 쓸 때는 공장 탐방기를 일 년 동안 연재했고,  『바디 무빙』을 쓸 때는 몸에 관한 에세이를 여러 군데에 썼어요. 작년에는 창작이 테마였죠. 원래는 더 나이가 들어서 창작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저도 창작이 뭔지 찾아가는 과정인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인 팁이 없다고 했지만, 읽으면서 유용한 팁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똑같은 단어가 여러 번 들어간 건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같은 문장도 있었고요.


비문을 쓰지 않는 방법이라든지, 문장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방법 같은 기술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제가 글을 쓸 때도 그런 건 중요하지 않거든요. 제 목표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단 위주로 쓰고 문단에서 제일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으로 써요. 책을 읽는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나도 나의 기준을 따로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글에서 정제되지 않는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어떤 사안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한편으로는 모든 걸 너무 많이 말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메모도 비슷해요. 저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머릿속에 메모하는 것 같아요. 메모를 들여다보고 이 메모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고요. 어떤 메모는 쉽게 날아가버려서 잊어버리기도하고, 어떤 문장은 계속 생각나서 그 문장으로부터 글이 완성되는 것 같거든요. SNS도 막 떠오르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올렸을 때 즉시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면 생각이 좁아지는 사람이라 SNS를 안 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혹시 SNS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하고 의문을 한번 제기해보는 거죠. 어렵네요, SNS를 말하면 SNS를 쓰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작가들을 만나면 SNS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게 되더라고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매일 농담처럼 ‘SNS를 하지 않는 이유는 원고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게 진실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활자로 제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활자가 곧 제 정체성이에요. 글을 쓸 때는 좀 더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오래 묵혀둔 다음 내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혼자 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더 혼자가 된 느낌을 받나요?


과거와 현재를 떠나 글쓰기가 늘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서 정말 엄청난 걸작을 쓰고 발표할 수도 있죠. 하지만 새벽에 감정적인 글을 쓴 다음에 그 글을 온전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도 필요하거든요. 작가들에게는 ‘감성적인 나’와 ‘이성적인 나’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춰야죠.

 

“가언을 만드는 일과 표언을 찢어버리는 일 사이에 글쓰기가 있다”는 말도 했는데요.


문자로 쓰인 걸 말로 들으니까 다르네요.


지금 좀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은데요?


부끄럽고 민망하죠. 말과 글을 많이 하고 쓰는데, 말하다 보면 텁텁할 때가 많아요. 더 정돈된 말, 완성된 말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고, 글은 좀 더 즉각적으로 쓰고 싶은데 그것도 잘 안 되고요. 글을 쓰면서도 최대한 말에 가깝게 쓰고 싶고, 말을 할 때는 최대한 글에 가깝게 쓰는 균형을 잡고 싶어요. 끝끝내 쓰고 싶은 글의 롤모델은 어머니의 글이거든요. 어머니의 글에는 맞춤법이나 문장은 엉망이어도 이상한 리듬이 있어요. 이 리듬이 대체 뭘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게 어머니의 리듬이고 세상을 보는 리듬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는 리듬을 찾는 게 어쩌면 글쓰기의 완성일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에도 집중하는 것 같아요. 대화를 상상하는 힘이 개성을 만드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소설 쓸 때 대사 쓰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어떤 캐릭터를 처음에 만들 때는 이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가,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대화하는 걸 보고 있으면 자기만의 말투로 이상한 환청 같은 게 들려요. 모든 사람이 말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을 하면 거기에는 매우 많은 게 녹아 있죠. 어릴 때 기억, 읽었던 책, 수많은 기억이 말하는 방식을 결정했을 텐데 다 다른 게 너무 재밌고, 글로 그 모든 사람의 리듬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소설에서도 말의 맛을 살리려고 대사 부분은 정말 많이 고치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말의 맛이라는 게 구어체는 아니에요.


‘문장 대화체’인 건가요?


문장에 들어 있는 대화는 또 다른 말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으면 어색한데 눈으로 봤을 때 말의 맛이 살아나는 문장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문장으로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편에서 문장을 거칠게 세 가지로 나누었어요. ‘~이다’, ‘~라고 생각한다’, ‘~라고 들은 적이 있다’로 끝나는 문장인데, 이 중 작가님은 어떤 축에 가깝나요?


그것도 말하기 톤과 상관이 있는데요. 예전부터 고쳐야지 하는데 안 고쳐지는 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 같아요”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이게 대체 어디서 온 건가 생각해보면 모든 걸 단언 내리기 싫어하고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회의가 계속 들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이렇게 말했네요(웃음). 글에도 단언하는지, 회의하는지, 묻고 싶은지 중에서 자신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타일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고요.


어느 순간  ‘이런 스타일로 말하고 있구나’  깨달으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순간이 있을 텐데요.


말은 고정화되고 고착화될 수밖에 없어요. 자기 스타일의 말투가 굳어지면 그걸 지각하는 순간 말하기 너무 힘들어지잖아요. 글은 그렇지 않거든요. 글은 교정하고 퇴고할 수 있어요. 회의하거나 반성하거나 돌이키는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저에게는 더 강력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느껴져요. 글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논리가 뭔지 다 보여요. 어지간해서는 글로 자신을 속이기 힘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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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보다 글쓰기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와 함께 <이동진의 빨간책방>, <영화당>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소설 쓸 때 영화가 많이 도움되기도 하고요. 짧은 시간 내에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영화 시작 전에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영화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볼 수도 있고요. 영화 보는 김에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생계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얼굴을 비추고 말을 하는 일을 많이 맡게 되었는데요.


말을 잘한다는 생각은 아직 못 하고 있고요. 익숙해져서 떨리지는 않는데 여전히 말하기보다는 글쓰기가 훨씬 좋아요. 처음에는 방송을 하고 나면 집에 와서 매일 술 마셨어요. 제가 했던 말들이 문장이 되어서 머릿속을 떠다니더라고요. 말할 때 쾌감이 있지는 않아요. 초반에는 정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말을 하다가도 이게 아닌 것 같으면 다시 수정하는 방식으로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직 저는 글쓰기가 한 300배 좋습니다.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소설을 쓰려고요. 2017년에는 정말 소설을 단 한 자도 안 썼어요. 자료를 모으고 생각은 했지만 한 줄도 쓰지 않은 건 2000년에 데뷔하고 나서 처음이었어요. 안식년 같은 느낌으로 활시위 당기는 시간 같은 걸 즐겼어요. 2018년은 다른 활동을 약간 줄이고 소설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글쓰기 강연은 못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글쓰기 수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농담하거나 진행할 수는 있어도 글쓰기를 강의하라고 하면 할 말도 없고 가르쳐줄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하겠어요.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보필하면서 중간중간 빈 자리를 채우는 쓸데없는 멘트나 농담은 잘할 수 있어요. 이 책도 비슷할 것 같아요. 빈 구석을 하나하나 메우는 거죠.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책을 보실 때 곁가지로 보기 좋지 않을까요? 모든 글쓰기 책과 1 1로 붙어서요.

 

 


 

 

무엇이든 쓰게 된다김중혁 저 | 위즈덤하우스
“지금 무언가를 만들기로 작정한,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당신을 존중하며, 그 결과물이 엉망진창이더라도 기꺼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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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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