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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부모님 나라로 떠난 여행기”

『인생극장』 펴내 개인적인 마음이 완전히 달랐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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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독자는 스물 셋 남학생이에요. 사실 전 큰 기대를 안 했어요. 너무 옛날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친구가 책을 읽으면서 세 번을 울었대요. (2018.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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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인생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다면, 극본은 누가 쓸 수 있을까. 사회학자 노명우가 쓴 『인생극장』 으로 들어가보자. 2016년 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날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았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평범한 아내, 부모로만 살아온 어머니의 인생 속에서 어떤 응어리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아들은 ‘가족 호칭에 가려져 있던 한 여자의 일생’을 기록하며, 부모의 심정(心情)을 한국 현대사와 마주치게 했다.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영상사회학’ 강의실에서 출발해, 한국고전영화를 함께 보는 프로그램 ‘세상물정극장’을 거쳐 사회학자 아들이 대신 쓴 자서전으로 완성된 『인생극장』 . 기록도 자료도 없는 보통 사람의 삶은 과연 복원될 수 있을까. 당대의 대중영화 속으로 들어가 만난 이름 없는 필부들의 이야기. 이 생경한 자서전은 이상하리만치 측은하고 냉정하고 또 따뜻하다.

 

저자는 말했다. “나의 부모가 인생극장의 무대에 올랐다가 퇴장했고 나는 그 무대를 물려받았다. 무대 장치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부모를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무대 장치 또한 투덜댄다고 바뀌지 아니하니 그것을 원망하며 째려보기보다는 찬찬히 살펴보는 편을 택하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부모가 살아온 생애를 기록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를 떠올린 아들, 사회학자 노명우의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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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노스탤지어가 되어선 안 된다

 

책을 읽기 전에 북트레일러를 봤어요. 울컥하신 느낌이었어요.

 

조금 그랬던 것 같아요. 인터뷰하다가 강연하다가 보면,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이 있어요. 얼마 전 팟캐스트 녹음을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목에서 울컥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생기더라고요. 이런 건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감사의 말’부터 책이 시작됩니다. 이후에는 머리말, 차례, 프롤로그가 이어지고요. 1부가 열리기까지 꽤 긴 글을 읽어야 하는데, 참 좋았습니다. 기대를 갖고 책을 읽게 만든다고 할까요.


감사할 분이 많았어요. 정말 길게 썼잖아요. 이 책은 제가 썼지만 제 부모님과 관련된 책이기도 하니까요. 초판 1,000부에 사인을 했는데요. 저자의 어떤 진심, 흔적을 전달하고 싶어서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사인했어요.

 

‘사회학자 아들이 대신 쓴 부모의 자서전’입니다. 사회가 읽히는 동시에 사람도 읽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읽혔어요.


초고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따져보면 2년이 걸린 책이에요. 처음에는 아버지에 관한 책으로 기획했는데, 전체 원고의 1/3 정도를 썼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병세가 나타났어요. 병원에서 병을 알게 됐을 때가 2월이이었는데 길어도 6개월 밖에 못 사신다고 했어요. 결국 4개월 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면서 책 콘셉트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영화로 치면 남자 주인공이 단독 주연을 맡았다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블 캐스팅이 된 거죠. 제가 대신 쓴 자서전인 동시에 부모님의 나라로 떠난 여행기이기도 해요.

 

살아 생전 부모님께서 직접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두 분의 방식은 많이 다르셨다고요.


아버지의 경우, 제가 이런 책을 쓸 거라는 걸 모르시는 상태였어요. 책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아버지는 치매 증세가 시작됐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이 좀 엉뚱했어요. 진위를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들이 많았고 그래서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죠. 어머니께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하는 자신의 여러 가지 인생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녹음한 분량이 10시간 가량 돼요.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새로운 이야기가 꽤 있었는데요. 두 분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남자와 여자의 의사소통 방식이 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었어요. 아버지는 자기 인생을 회고할 때도 대개 정보 중심이었는데요. 어머니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 정서를 주로 이야기했어요.

 

아버지는 집에서만큼은 ‘동굴 속의 황제’셨다고요.


가끔 아버지께서 가위에 눌리시곤 했어요. 그러면 각종 욕을 동원하여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고하셨죠. 내세울 것 없는 아버지였지만, 최소한 집에서 만큼은 아버지는 그저 그런 남자가 아니셨어요. 평범한 사회적 지위 때문에 밖에서는 심정을 내지르지 못했지만, 집에서는 감정을 억누를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죠. 기쁨과 애정의 표현은 드물고 서툴렀지만, 보통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분노는 다스릴 필요가 없었죠.

 

반대로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예민했지만 사려 깊었고 섬세했지만 까탈스럽지 않았다”고 쓰셨어요.


어머니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전이 속도가 빨랐어요. 어머니의 병은 어머니를 닮았던 것 같아요. 슬그머니 찾아와 야금야금 어머니의 몸을 휘저었으니까요.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았던 어머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병을 꼭꼭 숨기고만 있었어요. 인생극장의 막 또한 어머니의 성품처럼 요란하지 않게 살며시 내려왔죠.

 

후반부를 갈수록 이 책의 주연은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어머니의 삶, 한 여자의 삶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책이 있었나, 궁금해졌습니다. 책은 계속해서 주어를 ‘사회학자 아들’로 명명하고 있는데요. 자신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서 따라오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바로 썼으면 이렇게 못 썼을 거예요. 6월 말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름방학이 시작돼서 원래는 방학 때 글을 써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마무리가 되지 않아 아무 것도 못 쓰는 지경이 됐어요. 어떤 날은 이런 책을 쓰는 게 맞냐 싶었고, 어떤 날은 그냥 가슴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서 못 썼어요. 결국 8월 말쯤 당분간은 쓰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냥 책만 읽었어요. 저도 책을 쓰다 보니까, 항상 책을 읽을 때는 이유가 있거든요. 서평을 위해서라든가, 내 책을 쓰기 위해서든가. 그런데 이 때는 목적 없이 책을 읽었어요. 중구난방으로 두어 달쯤 소설, 자연과학 가리지 않고 읽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냈죠. 그러다가 아버지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시 송곡리도 가보고, 어머니가 사셨던 서울 창신동 꼭대기도 가보면서 책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공간이 주는 흔적, 기억은 작게라도 존재했을 거고요.


어머니의 회고를 들으면서 제가 생각한 키워드가 ‘심정’이었어요. 그래서 일종의 상상을 했죠. 어머니, 아버지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해서 상상을 하면서 심정을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13세 소년이 학교를 다니면서 걸었던 그 긴 거리는 어떤 거리였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오갔을까, 만주에 갈 때는 어땠을까, 청년기로 접어들어 가족을 꾸린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8세 소녀가 산동네에서 내려와서 하필이면 이화장을 자주 지나야 했고, 공부는 잘했지만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모자이크처럼 이어서 조각나있는 조각보를 이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통해 부모님을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것도 같아요.


아직도 밤에 자려도 누우면 부모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요. 슬프니까 잊어야지 했는데 이건 잊히는 게 아닌 거예요. 그리움은 그림자 같은 거라서, 잊는 게 아니라 갖고 사는 거죠. 그렇다면 기억해야 하는데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다만 노스탤지어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살아온 생애에는 분명 시대적 한계가 있었지만, 그걸 어떤 한으로써만 기억해서는 안 되죠. 한계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대적 한계를 중지할 수 있는 방법, 그런 환경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어떤 조건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즉 미래에 대한 상상이 있어야 해요. 부모가 살아왔던 생애를 기록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를 떠올렸어요.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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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마음이 완전히 달랐던 책

 

책을 쓰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이게 과연 얼마만큼의 보편성을 띨 수 있느냐의 문제였어요. 그런데 원고를 검토해주신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남의 이야기 같지만 읽다 보면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의 삶과 연결되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고 했어요. 어떤 공통분모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우리 아들 장하다”, “엄마는 기분이 너무 좋다”, “우리 아들이 이래서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 이런 말을 많이 하셨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생각해봤어요. 한 가지는 이거더라고요. 제게 좋은 일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말씀 드렸는데, 이제는 내 좋은 일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어진 거예요. 작은 일에도 물개박수 급의 반응을 보여주신 분이 사라지니까 너무 허전한 거예요. 아버지는 근엄하고 무뚝뚝한 편이셨지만 제 책이 나오고 서평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말 없이 신문을 들고 나가서 한 시간 뒤에 코팅해오는 분이셨어요. 내 일에 대해 무한히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들어도 잘해보자는 힘이 생기잖아요. 그게 사라진 거예요. 지금은.

 

전작 『세상물정의 사회학』 을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하셨는데, 이번 책의 경우는 어떤가요?


어떤 연령대나 성별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부모의 자식인 어떤 한 사람? 부모가 생존해 계시든 이별을 했든, 사람이 태어나면 누군가의 자녀가 되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부모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고요. 불현듯 내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책은 개인적인 마음이 완전히 달랐어요. 예전에는 책을 낼 때, 잘 팔렸으면 좋겠다, 반응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어떤 백일몽을 꿨는데요. 이번 책은 백일몽을 꾸는 과정이 전혀 없었어요.

 

프롤로그에서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이나 부모가 물려준 유산과 씨름해야 한다”(25쪽)고 하셨어요. 유산은 대개 받는다고만 생각하는데, ‘씨름’이 맞는 것 같아요. 받는 자세에 따라 유산이 이어질 수도 있고 커질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죠.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태도 중 하나는 부에 대한 사유 방식이에요. 과도한 부에 대한 경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남에게 굴복 당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어야 하는데요. 부로 인해 인간의 품위를 잃어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하죠.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세계관이 바로 그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1950년대 미군 부대 앞에서 일하면서 달러를 쉽게 버셨어요. 하지만 그 부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모르시지 않았어요. 돈은 어떤 행위들에 대한 결과물이기도 하잖아요. 부모님이 버신 돈에 담긴 컨텍스트를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떳떳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늘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돈이 없다고 남을 업신여겨서도 안 되고, 남들이 업신여길 정도로 돈이 없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었어요. 어릴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말과 행동들이 제 세계관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죠. 어머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소중한 가치들,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40대 이상의 독자들이 이 책을 가깝게 받아들일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의외로 20대 후반부터는 충분히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독자는 스물 셋 남학생이에요. 사실 전 큰 기대를 안 했어요. 너무 옛날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친구가 책을 읽으면서 세 번을 울었대요. 독자들의 리뷰를 들어 보니,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굳이 나이의 장벽이 느껴지는 것 같진 않아요. 물론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50대인 분들로부터 받았는데요. 왜냐면 50대들은 자신이 부모로서의 정점에 도달했고, 부모와의 이별을 겪은 분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형제 분들도 이 책을 읽었나요?


읽었죠. 형제들은 저보다 더 감정이입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책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저는 쓰는 과정에서 ‘사회학자 아들’이라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돈할 수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냥 우리 엄마, 아빠를 이야기한 책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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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구나

 

편집자에게 감사의 말을 적으셨는데요. 유독 눈길이 갔어요.


어떤 한 원고에 애정이 가장 많은 사람은 글쓴이일 테지만, 글쓴이 못지않게 원고에 애정을 갖고 읽는 사람이 있다면 편집자일 거예요. 저자와 편집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긴장감과 갈등은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논문 심사 과정을 보면 보이지 않는 적과 갈등하는 것 같아요. 편집자와 저자 사이도 물론 이 긴장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요. 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어요. 어떤 책이 나오든 편집자와는 약간의 살얼음을 걷는 듯한 긴장 관계를 거치는데, 『인생극장』 같은 경우에는 편집자와 저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긴장감이 가장 적었던 것 같아요. 초고를 쓰고 여행을 다녀와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여행 중 제가 원고에 대해 생각했던 이야기와 완벽하게 맞았어요. 싱크로율이 99%에 가깝더라고요. 원래 초고는 여러 번 수정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 수정한 원고로 끝까지 갔어요.

 

출판사에서 가제본으로 독자들의 서평을 받았잖아요. 굉장히 평이 좋더라고요.


세상에 진심이라는 게 통하는 것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서평을 보는 순간 제 마음속에 정리된 게 또 하나가 있어요. 책이 잘 팔리든 안 팔리든, 이 독자 서평만으로도 됐다는 마음이었어요. 책을 쓴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기쁜 평 중 하나가 “부모님의 인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만나면 부모님께 여쭤보고 싶은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였어요.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부모에 관한 원망과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는 글을 읽고 참 고마웠어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줘서 굉장히 고마웠어요.

 

책을 많이 쓰셨는데 강연은 거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많이 안 해요. 특히 돈을 받고 하는 강연은 좀 피하려고 하는데요.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급에 오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미디어에는 여전히 관심이 많지만, 방송은 제게 편집권이 없잖아요. 제 성격이나 말들을 방송용으로 재구축해야 한다면 피하고 싶은 거예요.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거나, 이 방송을 통해 독서의 세계를 넓힐 수 있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겠지만요. 어떤 방송에 출연했다는 타이틀로 책을 쓰고 싶진 않아요. 물론 제가 월급쟁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거고요.

 

인기, 유명세를 얻고 싶어 하는 교수도 많은데요.


강연을 가면 사람들이 막 박수를 쳐주잖아요. 학교에 가면 학생들은 다 졸고 있고요. 그러다 보면‘아, 너희들은 내 진가를 몰라’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유명세는 무서워요. 유명해져서 망하는 경우도 많고요.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유명해진 케이스라면 괜찮겠지만, 부족한 컨텍스트를 가지고 나왔다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면, 그건 문제죠. 『세상물정의 사회학』 이 나왔을 때 저도 쉽지 않았어요. 만나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처음 거절할 때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러다 이거 위험하겠다 싶었죠.

 

유명해진 후 책을 못 쓰는 저자들도 있죠.


결국 쓴다고 해도 강연의 녹취를 풀었거나 팟캐스트에서 한 이야기들을 풀었거나. 문장으로 읽었을 때 그 사람의 문체도 안 느껴지고, 특유의 깊이도 안 느껴진다면. 독자로서는 좀 아쉽죠. 글 쓰는 입장에서 인물평으로 소비되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쓴 텍스트가 읽혀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거죠. 소설가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그 사람의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출판을 살펴보면, TV에 나와야만 책이 화제가 되고 팔리잖아요. 저자의 본업과는 관계 없이 셀렙이 돼야만 주목을 받아요.


그래서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싸움이에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의 말에 대한 권위는 점차 작아지고, TV에 나오는 유명인사가 하는 말들은 그대로 진리가 돼요. 요즘 아이들은 독서의 경험이 적잖아요. 뭐든지 시각적으로 물질적으로 확인하는 게 익숙한 세대예요. 그래서 유명하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TV에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기준이 TV에 나왔는지 아닌지로 평가되는 세상이 됐죠.

 

생각하고 계신 후속작이 있나요?


지금 구상 중인 건 의식주를 주제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 그러나 성찰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써볼까 해요. 타협하자는 건 아닌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책을 많이 못 읽으니까요. 3시간 내지 4시간을 투자하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SNS에 있는 글을 옮긴 책은 아니고요. 밀도가 있으면서 좀 짧은 분량으로 정리하려고 해요. 또 다른 책으로는 예술사회학 강의를 다뤄보려고 해요. 『세상물정의 사회학』 의 미술 판 같은. 그림을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를 살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노명우의 인물조각보’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요. 책으로도 나올까요?


아마 나올 것 같아요. 한 편 한 편보다는 다 모았을 때 의미가 있는 글이라서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걸 펼쳐 보이고 싶어요.

 

 


 

 

인생극장노명우 저 | 사계절
식민지배,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산업화 등 현대사의 큰 줄기가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면밀하면서도 매우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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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인생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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