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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의 측면돌파] 책, 읽고 싶은데 읽기 싫다! (G. 금정연 서평가)

“책을 정말 읽고 싶은데 읽기 싫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금정연 『아무튼,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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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신 분은 인세의 많은 부분을 택시요금으로 쓰시는 분입니다. “자신에게 약간의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 “약간의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서” 택시를 타신고 하는데요. 책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 이어 『아무튼, 택시』를 쓰신 금정연 서평가님 모셨습니다. (2018. 03. 22)

[채널예스] 인터뷰.jpg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물론 우리는 그곳이 아닌 지금 이곳에 있다. 여기와 저기. 그러나 저기까지 가는 길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돌아갈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심지어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매순간 우리는 원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점들을 지난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기를 희망하면서……

 

금정연 서평가의 저서 『아무튼, 택시』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생도 택시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 길을 잃고 헤매도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요. 하지만 삶은 택시와 달라서 우리는 목적지도 모른 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겠죠. 그래도, 지나온 길이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금정연 서평가 편>


김하나 : 처음  『아무튼, 택시』 의 집필을 제안 받으셨을 때, 이런 책이 될 거라고 예상을 하셨나요?

 

금정연 :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사실 제가 코난북스하고 책을 내기로 한지 4년 정도가 됐어요.


김하나 : 정말요? <아무튼, 시리즈>가 있기도 전이네요?


금정연 : 그렇죠.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코난북스와 ‘아무 책이라도 좋으니 하나 써라’라고 계약을 했고요.


김하나 : ‘아무 책’이 <아무튼, 시리즈>가 됐네요(웃음).


금정연 : 네. 제가 하도 못 쓰고 있으니까 <아무튼, 시리즈>를 런칭하고 나서 쓸 거 있냐고 해서, 뭘 쓸까 하다가 제가 ‘개’를 좋아하니까 개를 쓰면 어떨까 했어요. 그랬더니 코난북스 대표님께서 ‘개는 범위가 너무 넓다’, ‘닥스훈트, 비글, 믹스견 같은 범주면 괜찮은데 개라고 하면 너무 크다’고 하셔서, 그렇다면 ‘LG트윈스를 쓸까?’ 하다가, 그걸 쓰다가 제가 건강이 나빠질 것 같아서요.


김하나 : 맞아요, 다른 팀도 아니고(웃음).


금정연 : 그렇죠(웃음). 때마침 제가 『아무튼, 택시』 를 쓰기 전에 작년 3월부터 심심해서 택시 일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택시를 타면 몇 시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갔다는 걸 6개월 동안 써 놓은 것이 있으니까, 이걸 조합해서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튼, 택시』 를 쓰게 됐죠.


김하나 : 그렇게 시작했지만 결과물은 전혀 다른 책이 나오게 됐죠.


금정연 : 늘 그렇듯이요.

 

김하나 : 주로 ‘책에 관한 책’을 써오셨잖아요. 『소년이여, 요리하라!』 , 『일상기술연구소』 와 같이 『아무튼, 택시』 는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책을 쓰시는 게 ‘책에 관한 책’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느끼세요? 아니면 색다른 즐거움을 주나요?


금정연 : 두 가지가 다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어려운 점은, 쓸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에 관해서 쓰면 책을 인용한다거나 줄거리를 요약한다거나 작가를 소개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면, 책에 관해서 쓰면 아무래도 그 책을 리스펙트(respect)를 해줘야 하거든요. 책을 소개한다고 하면서 딴 이야기만 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종종 그렇게 하기는 하지만요.


김하나 : 네, 딴 얘기 참 많이 하시죠(웃음).


금정연 : 네(웃음). 그런데 이런 책에서는 눈치 안 보고 신경도 안 쓰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즐거움이죠.
 
김하나 : 제가 트위터에서 서평가 님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보면 항상 울고 계시잖아요. 글쓰기가 싫고, 또 마감이 있고, 굉장히 힘들어하고 계시는데요. 글을 읽어보면 ‘이런 서평을 계속 쓰려면 힘이 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금정연 : 정말 감사합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웃음).


김하나 : (웃음) 왜냐하면, 글을 멋있게 썼느냐 안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이 사람이 어떤 시도를 하고 있구나, 이런 시도가 다른 시도가 있음을 한 번 더 고민하는구나’ 이런 게 느껴지면 저는 그걸 알아보는 게 스스로 뿌듯하고 너무 재밌거든요. 그 부분이 저한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건 근면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거고, 계속해서 근면하려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지쳐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어요(웃음).


금정연 : 맞습니다. 정말 제 삶을 잘 요약해 주셨네요(웃음).

 

김하나 :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말하는 건 더 싫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뵀던 것도 제현주 작가님과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를 진행하고 계실 때였잖아요. 그때 게스트로 가서 만났는데요. 말하는 걸 싫어하시는데 팟캐스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금정연 : 서평가라는 것만으로는 생계가 불안하니까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되죠. 강연, 독자와의 만남, 아니면 다른 작가들의 독자와의 만남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의 일환으로 하게 됐는데요. <일상기술연구소> 측에서 먼저 제현주 작가님, PD님이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비가 내리는 봄날에 홍대 파스타 가게였는데요.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일상기술연구소>라는 걸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왜 저한테?’라고 여쭤봤더니 그냥 ‘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때는 약간 포맷이 정해지기 전이어서 제현주 작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남자 진행자는 금정연 작가님을 생각하고 있고, 여자 진행자는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요조 님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래서 제가 ‘아, 그런가요?’ 했죠(웃음). 이건 농담이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김하나 : 그랬는데 제현주 작가님이 직접 뛰게 되셨네요(웃음).

 

김하나 : 서평가라는 직업은 작가, 출판사 관계자들과 거리를 어떻게 두어야 할지 고민을 할 것 같아요.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금정연 : 이상적인 거리는 아마 안 만나는 거겠죠.


김하나 : 안 만나고, 딱 책만 보고.


금정연 : 이번 생에서 만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한국이 작은 나라잖아요. 사실 미국만 해도 유명한 서평가, 비평가들과 작가들, 혹은 작가들끼리도 만날 일이 없어요.


김하나 :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금정연 :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저것 디스를 하기도 하고, 그런 게 아무래도 조금 더 자유롭죠. 눈치도 덜 보게 되고요. 물론 미국에는 총이 있긴 하지만요(웃음). 그렇지만 한국 같은 경우에는 출판계가 워낙 좁기 때문에 만나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건 한국의 특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예전에 서점의 MD로 일하실 때는 책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읽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책을 원 없이 읽고 싶다는 욕구가 지금도 있으세요?

 

금정연 : 지금 저에게 있는 욕구는 ‘책을 정말 읽고 싶은데 읽기 싫다’는 거죠.


김하나 : 너무 정확한 것 같아요(웃음).


금정연 : 읽어야 하는 책은 늘 있고, 읽고 싶은 책도 늘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길항작용에 의해서 이도 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서 ‘책 읽고 싶은데 읽기 싫다’고 생각만 하는 상태가 되고는 하죠.

 

김하나 : 이쯤에서 ‘스피드 퀴즈’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금정연 : 네.


김하나 : 가능하다면 택시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싶다.


금정연 : Yes.


김하나 : 택시비만큼이나 지출을 아끼지 않는 항목이 있다.


금정연 : 네.


김하나 : 글을 쓸 때 더 어려운 것은? 1번, 분량을 채우기 위해 살을 붙이는 것. 2번, 분량에 맞추기 위해 내용을 덜어내는 것.


금정연 : 1번.


김하나 : 택시에 동승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다.


금정연 : 아니요.

 

김하나 : 글을 쓸 때 더 어려운 것은 살을 붙이는 거라고 하셨어요.


금정연 : 왜냐하면 저는 퇴고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김하나 : 심지어 좋아하세요?


금정연 : 네. 그런데 퇴고를 하려면 초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항상 딜레마죠. 좋아하는 걸 하려면 어떻게든 초고를 견뎌야 하는데, 심지어 마감 시간이 항상 있기 때문에 퇴고를 잘 못해요.


김하나 : (웃음) 그 좋아하시는 것을 잘 못하시고...


금정연 : 네, 잘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분량을 채우기 위해 살을 붙이는 것은 글이 아직 완성되기 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제가 원하는 분량은 10매이고 완성한 분량은 7매라면 3매를 추가해야 되는 건데,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밀도가 희석될 수도 있고 맥락이 전혀 다른 곳으로 새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10매를 써야 하는데 15매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면 사실 거기에서 5매 정도는, 5매는 너무 많지만 2~3매 정도는 충분히 뺄 수 있거든요. 그게 더 좋을 수가 있고요.

 

김하나 : 택시만큼이나 지출을 아끼지 않는 항목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뭔가요?


금정연 : 당연히 책이죠. 택시비보다 훨씬 더 많이 쓰는 게 책이고요.


김하나 : 아, 맞네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을 많이 보내주지 않나요?


금정연 : 네, 많이 받기도 하죠.


김하나 : 사시는 책도 여전히 많아요?


금정연 : 그럼요. 왜냐하면 제가 보고 싶은 책과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은 늘 다르기 때문에.


김하나 : 이건 너무 존경스러운 게, 저는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산 게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이 경우에는 일도 해당이 되기는 하는데 『서서비행』 이랑 『문학의 기쁨』 이었어요(웃음). 지금은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너무 많으니까,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사봤자 그게 또 숙제가 될 것 같아서, 지금 저는 약간 허덕이고 있거든요.


금정연 : 성향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읽을 시간이 없는데, 그러면 더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사기라도 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진짜 많이 다르네요.


금정연 : 네, 전혀 다른 성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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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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