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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쓴 호쾌한 축구 일기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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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다’는 말은 있어도 ‘발쉽다’는 말은 없는 이 세상의 셈법대로 순순히 흘러가주지만은 않은 그 뻐팅김(?)에는 어딘가 감동스러운 구석이 있어요. 매우 지적이면서 원초적이고 무모하게 아름다운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201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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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축구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 당연하게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축구를 하는 여자는 동일인일 수 있다. 『피버 피치』 로 알려진 영국의 축덕 작가 닉 혼비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신인 작가 김혼비의 본격 생활 체육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는 축구 좋아하고, 축구를 직접 하는 것은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근육을 키우고, 축구하는 데 거추장스러워 머리를 짧게 치는 이들, 그리고 그렇게 할 기회를 알게 모르게 놓쳐 왔던 당신의 이야기이다. 로빙슛처럼 우아하고, 오버래핑처럼 호쾌한 김혼비의 문장을 만나는 순간, 누구라도 달리고 싶어진다.

 

'여자 축구'에 관한 에세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데 어떻게 이 글을 쓰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축구일기로 시작했어요. 사실 일기를 잘 안 쓰거든요. 습관을 들여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늘 야심차게 준비한 다이어리의 1/5도 못 채운 채로 연말을 맞곤 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아예 장지갑 크기에 장지갑보다 두께는 얇은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는데 제게는 이게 딱이더라고요. 그 정도로 일기를 안 쓰는데. 그런 제가 축구 시작한 첫 해에는 축구만 다녀오면 적어놓고 싶은 게 넘쳐나서 일기를 한 시간 두 시간씩 쓰는 거예요. 나중에는 축구일기용으로 아예 노트도 따로 마련했어요. 그렇게 가끔 그림까지 그려가며 일기도 차곡차곡 쓰고 주변 사람들이 물으면 신나서 이야기도 해주고 하던 중에 그걸로 연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어요. 예전에도 다른 소재로 연재 제안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전 어느 정도 써놓은 원고 없이는 무서워서 연재 엄두를 잘 못 내거든요. 이 경우에는 그래도 써놓은 일기가 있어서 덜컥 해보기로 했고, 그렇게 해서 한 편 한 편 글로 쓴 것을 나중에 좀 더 단정하게 정리한 게 이 책이에요. 

 

필명이 '김혼비'인데,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시작할 때 거기에 맞는 필명을 지어야 했는데 축구에세이 하니까 떠오르는 게 그냥 닉 혼비의 『피버피치』 였어요. 마침 닉.혼.비. 세 글자라서 한글이름으로 활용하기도 좋을 것 같아 반은 장난 아, 그럼 김혼비로 하자!라고 거의 2분 만에 결정했는데 그때만해도 이 이름으로 이렇게 책을 낼 줄은 몰랐어요. 책에 쓰기에는 너무 장난스러운 이름 같기도 했고, 닉 혼비라는 작가의 명성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쓰지말까도 잠시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이 이름으로 1년 넘게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붙인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 물론 무척 좋아하지만 ‘가장’까지는 아니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더글러스 애덤스와 루이즈 페니인데, 루이즈 페니는 그래서 책에도 나와요. 라이벌 팀이자 가장 좋아하는 팀 이름에 “FC페니”로 슬쩍 이름 붙였어요.

 

이 책을 보면 작가님의 각별한 축구 사랑이 느껴지는데요, 축구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축구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야구, 농구, 배구를 훨씬 더 좋아했었고, 당시 축구는 제게 약간 낚시 같았어요. 상당 시간을 물에 찌를 던져놓고 가만히 있는 걸로 보내다가 찌가 움직일 때만 어!! 하며 반짝 설레서 집중해서 보게 되는, 고기를 낚을 때는 짜릿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그런 스포츠. 그러다가 어느 날 브라질의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정말 넋을 잃고 봤어요. 축구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게다가 찌를 던져놓고 “그냥” 기다리는 것 같았던 시간 동안 사실은 골대 먼 곳에서도, 심지어 공 없는 곳에서도 얼마나 다채로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점점 알게 되면서 열광하게 됐어요. 축구는 어떤 면에서 시 같아요. 야구처럼 촘촘한 규칙이 딱딱 형식을 잡아주지 않고, 농구처럼 빠른 득점이 성취의 눈금을 바로바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읽어내야 할 숨은 맥락과 행간이 훨씬 많거든요. 이를테면 공을 잡지 않은 나머지 선수들의 움직임이라든가. 게다가 쓰기 쉬운 손을 놔두고 굳이 서투른 발로 둥근 공을 다뤄 보겠다고 그 복잡한 훈련들을 거친다는 거, 너무 잉여롭게 재밌지 않아요? ‘손쉽다’는 말은 있어도 ‘발쉽다’는 말은 없는 이 세상의 셈법대로 순순히 흘러가주지만은 않은 그 뻐팅김(?)에는 어딘가 감동스러운 구석이 있어요. 매우 지적이면서 원초적이고 무모하게 아름다운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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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챕터가 축구 용어로 되어있는 게 인상적이에요.


이 책의 시작이 축구일기였잖아요? 당시 제가 일기를 쓸 때 서두가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0월 0일/ 오늘의 연습: 인사이드킥/ 연습경과: 디딤발쪽 무릎을 굽혀주는 걸 자꾸 잊어버려서 어쩌고저쩌고......기억할 것: 지금보다 자세를 낮추자> <0월 0일/ 오늘의 연습: 리프팅/ 연습경과: 공이 충분히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발을 갖다 대어서 자꾸만 튕겨나고 어쩌고저쩌고......기억할 것: 충분히 기다리자> 저런 식이다 보니 항상 글 시작에는 “인사이드킥”이니, “리프팅”이니 그 날 배우거나 훈련한 축구기술이 하나 둘씩 적혀있었어요. 그래서 일기를 죽 넘기다 보면 저 용어들이 마치 그날그날 일기의 제목처럼도 보였는데, 그 시각적 느낌이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나 봐요. 연재 첫 글 쓸 때 어쩐지 글머리에 제목처럼 축구용어를 써보고 싶어서 그렇게 했고, 그때부터 그냥 계속 그렇게 하게 됐어요. 말하다 보니 우리 팀원들이 축구 시작한 이유랑 똑같네요. “얼결에”!

 

아직도 축구를 좋아하거나 축구를 하는 여자들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존재할 것 같은데 실제 축구를 할 때 어떤가요?


우리팀 선수들 자녀들이 ‘우리 엄마 축구한다’고 그러면 애들은 우와! 그러는데 어른들은 걱정한대요. 엄청 무섭고 이상한 여자일거라고 생각한다고(웃음) 그런데 차라리 기가 셀 것이다, 억셀 것이다, 유별날 것이다 같은, 남다른 시선은 그래도 나아요. ‘여자들이 축구를 알면 뭘 알겠어’라는 무시가 기저에 깔린, 룰도 잘 모르면서 그냥 축구선수 얼굴이나 보고 좋아하는 거다, 여자들이 모여서 축구 해봤자 심심풀이 공놀이일 뿐이다, 같은 시선이 정말 많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눈에 잘 안 띄는데 반해 저런 류의 사람들은 목소리도 크니까 눈에 잘 띄고요. 축구가 운동 중에서도 워낙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운동이라 그런지, 여자들도 누구 못지 않게 진지하고 심도 있게 축구를 좋아하고 잘 알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어떻게든 ‘여자들의 축구’를 감정적이고 심미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 축소시켜놓아야만 비로소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이번 작품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혼자서 쓰고 있는 건 있는데 ‘차기작’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요즘 에세이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좋은 에세이들은, 이미 앞서 어떤 길을 걸어간 저자가 삶에 대한 나름의 태도나 노하우 같은 지혜를 귀뜸해 주거나, 아니면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 모두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격려와 위안을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에세이 쓰면서도 느꼈고, 이 이전에 다른 여러 글들 쓰면서도 느꼈지만, 저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건넬만한 확고한 태도나 결론이 없는 것 같아요. 여전히 많은 일들에 갈팡질팡 헷갈리고 이것저것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그러다 보니 결국 헷갈림, 엇갈림 어떤 머뭇거림 같은 것에 대해 계속 쓰게 되는데 이런 게 과연 계약까지 갈 수 있을까요(웃음). 하지만 회사 다니는 틈틈이 축구를 하고 축구를 보러 다니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인 것처럼 그냥 틈틈이 뭔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어서 혼자 재미있게 느릿느릿 하고 있어요(근데 일기는 왜 잘 안 쓰게 되는 것인지… 정말 미스테리예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남겨 주신다면?


혹시 ‘나는 축구에 별 관심도 없고 축구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면, 축구공 그 너머에 있는 여자들은 분명 여러분이 평소에 늘 관심 있게 봐왔고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일 것이기에 책을 한 번 열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뻔뻔하게(웃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축구는 물론이고 운동에 별 관심 없던 여자들이 얼결에 축구를 시작했다가 푹 빠져 웃고 울고 싸우고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의 힘이 되기도 하는 이 이야기가, 읽으시는 분들 마음속에 공을 차 넣을 수 있기를!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읽으시는 분들께 옮겨갈 수 있기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 저 | 민음사
로빙슛처럼 우아하고, 오버래핑처럼 호쾌한 김혼비의 문장을 만나는 순간, 누구라도 달리고 싶어질 거예요. 이미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우아하고, 호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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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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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축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그리고 매주 경기장을 뛰는 초개인주의자가 있다. 그녀가 어쩌다 입단하고 실수하면서 축구의 매력에 빠지는 이 에세이는 마치 경기장을 같이 뛰는 기분을 선사한다. "여자도 축구해요." 오늘도 피치를 딛는 발에 힘을 보태고 싶어진다. 같이 뛰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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