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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배가 곁에 있다는 행운

히라노 타로 『나와 선배』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중요한 롤 모델이 된다는 것. (2018. 07. 09)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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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선배』  표지 사진

 


주변에 본받을 만한 좋은 선배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행운이다. 그 사람이 내게 대단한 가르침을 주는 게 아니라 해도 좋다. 그저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될지 무형의 가르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자꾸 뭔가 가르치려고 하고, 알려주려고 하고, 고쳐주려고 하는 선배는 고맙기는 하지만 버겁고 부담스럽다. 말을 듣다보면 솔직히 겉으로는 “네, 네, 맞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꼰대’라는 두 글자부터 갈수록 선명해진다.

 

역지사지의 순간이 내게 왔다. 이제 나이를 어느 정도 들다 보니,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선배 입장이 되는 관계가 더 많아져 버렸다. ‘어떤 사람이 좋은 선배인가’하는 고민이 더 많은 비중을 갖게 된다. 좋은 선배를 찾는 것만큼 더 많은 순간 자책과 자성의 순간을 느낄 때가 종종 생기고는 한다. 최소한 ‘나쁜 놈’, ‘이용만 해먹는 선배’, ‘상종해서는 안될 인간’은 아닌 것 같으니, 기본은 하고 있다고 자위하지만 뭔가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이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서, ‘좋게 나이 먹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할 지 이제 본격적 고민을 해야한다는 현실적 부담을 느끼고는 한다.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훨씬 강렬한 책

 

이런 고민에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에세이를 한 권 발견했다. 히라노 타로의 나와 선배』  다. 1973년생의 사진가인 저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잘 살아왔고, 이제 멋지게 늙은 인생 선배 36명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어 일본의 대중잡지 <POPEYE>에 연재한 내용이다. 인터뷰라고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사를 탈탈 털어 넣을 만큼 길지 않고, 아주 짧은 두 세 페이지 남짓한 인상평을 에세이로 쓴 것이 인상적이다. 도리어 그런 면이 각각의 선배에 대해 느낀 것을 마치 한 컷의 사진으로 핵심을 가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저자가 사진작가라는 점이 반영된 구성이다. 짧은 글에 이어서 두 페이지에 걸쳐 선배의 모습과 일터와 삶의 공간이 소개되는 사진이 펼쳐진다. 글보다는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훨씬 강렬한 책이다.                  

 

히라노 타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가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정치가나 교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만난 사람은 염색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건축가, 작곡가, 자전거 빌더, 떡붕어조사관, 만화가, 프로야구 해설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자기 영역에서 수십 년간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조직 안에서 자리를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자기 이름이 바로 브랜드가 되도록 치열하게 인생을 만들어낸 독립적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분들이 50대~60대로 넘어가면서 자기 영역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바라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이 책을 넘기면서 들은 부러운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가 90세의 염색 작가 유노키 사미로에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유노키 사미로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한창 일 할 나이가 지나고 처자식을 돌보지 않아도 될 때부터 일세.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일이 명확해지거든”이라고 답했다. 조바심 내지 말고 긴 호흡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파이와 브루투스, 올리브 등을 창간하고 편집장을 지낸 일본 잡지계의 전설 ‘기나메리 요시하사’는 80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사장실 옆에 최고고문으로 출근하며, 사무실이 있다. 그는 “스무 살이 넘으면 다 동갑이니까”라는 유쾌한 응대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수십 년의 나이차를 잊게 하는 병렬적 느낌을 주며, 어떤 일에 대해서든 장점을 찾아내 칭찬을 해주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누구든 유쾌해진다. 빨간색 스웨터를 입고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80대 중반이라고 절대 생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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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아사이 신페이’

 

 

50년째 주문 제작 자전거를 만들고 있는 자전거 빌더 ‘와타나베 쇼지’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50년 동안 만들어오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 또 하나는 70년을 만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걸 만들 수 있다는 확신” 우리는 2-3년 정도 노력해보고 포기하기 일쑤다. 이 책에 나온 이들은 이와 같이 최소 50년 이상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왔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만족하기보다, 앞으로도 더 잘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그 길을 지속적으로 가고 있었다. 
 
이 에세이집은 글보다 사진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멋지게 나이들은 사람들의 표정과 일터에서의 모습은 몇 페이지의 글보다 훨씬 큰 임팩트를 주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자전거 빌더 와나타베 쇼지가 제작소에서 프레임을 용접하는 모습, 1970년대에 뮤지션, 타워레코드의 점장을 하다가 지금은 고향 후쿠오카에서 작은 생활 잡화점을 하는 70대 다케스에 미쓰토시의 멋진 스타일, 일본에 레게뮤직을 들여오고, 55세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기 시작한 68세 이시이 시즈오의 날렵한 보딩 자세등이 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욕심 내지 않고, 지금 내가 하는 일 중, 하고 싶은 일을, 잘 한다고 여기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남과 비교해 더 높은 자리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탐욕스러워 하고, 그게 안되면 실망하기보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고 자책하고 후회하기보다, 50년을 했는데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으니 70년을 하면 더 잘할 것이라는 원대한 긴 호흡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지치면 포기하기보다 잠시 쉬웠다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머무르다가 힘이 나면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히라노 타로의 ‘나와 선배’는 대단한 통찰이 있는 해석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70살이 되고, 80살이 되어서 삶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여전한 현역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준다. 어떤 삶의 가르침을 후배에게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면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중요한 롤 모델이 된다는 것,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선배의 역할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었다. 물론, 탐욕에 눈이 멀어 자기 자리를 지키느라 후배의 앞길을 막는 선배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나와 선배방현희 역 | 한스미디어
각자의 방면에서 입지를 굳힌, 일본은 물론 국제적으로 이미 유명한 사람부터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탄탄한 실력의 숨은 장인들까지, 직종이나 캐릭터가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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