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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츠티어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발견한 이야기”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당신 혹은 당신의 무엇에 담긴 슬픔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감정인 슬픔을 바라보자는 태도였어요. 슬퍼하는 사람은 슬퍼하도록 두고,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2018. 07. 11)

이수연 사진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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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제각기 따로 놀지만 어떤 순간 하나의 궤를 그리며 이어진다. “간밤에 비가 왔고 죽은 지 30년 된 아버지가 나의 황무지에 다녀(52쪽)”가던 날 발자국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저버리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116쪽)”던 순간을 발견하고 만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날에는 “힘이 머리끝까지 솟는(125쪽)” 것을 느끼며 횡단보도를 지난다. 누군가, 혹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일상은 지속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힘을 주어 이야기한다. 삶 귀퉁이 어딘가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던 풍경을 발견한 작가가 그를 대신해 사진을 남기고, 풍경이 남긴 이야기를 전한다. 헤르츠티어(‘마음’을 뜻하는 독일어 ‘Herz’와 ‘짐승’의 ‘Tier’를 합성한 조어. 헤르타 뮐러의 소설 『마음짐승』 에서 가지고 옴.) 작가의 첫 번째 에피그램,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이 그렇게 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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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카메라를 줍고, 사진을 줍다

 

‘열다섯에 길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줍는 것으로 셔터를 처음 눌렀다’고 하셨어요.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길에서 줍는 걸 잘했거든요. 동전, 지폐, 달력 같은 걸 줍곤 했는데 그날은 길에 일회용 카메라가 버려져 있었어요. 코닥 카메라였는데 필름이 몇 장 남아 있었어요. 남은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 운영하시던 친구 아버지에게 맡겨서 현상, 인화도 했어요. 제가 찍은 사진 몇 장과 이미 찍혀 있던 사진이 있었죠. 현상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었던 거예요. 재미있었어요. 이후에도 종종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한참 뒤였겠네요.


20대 후반에서야 첫 카메라를 샀어요. 당시 만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언니의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온 거예요. 물욕이 강한 편은 아닌데 그때 처음 ‘아,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전엔 이상하게 카메라 살 생각을 못 했어요. 심지어 동생에게도 디카 선물을 했으면서. 목에 건 카메라의 무게가 익숙해진 뒤로 제 일상이 많이 달라졌죠.

 

어떻게 달라졌나요?


스물여섯 살 때 문학편집자로 첫발을 뗐어요. 오래전부터 글을 써왔기에 텍스트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사진이 더해진 거예요.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상을 찍었어요. 똑같은 날인데 셔터를 누를 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그냥 일상이 아니더라고요.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이 그거 하나로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것 같았어요. 마법 같았죠.

 

2016년 말부터 그라폴리오에 사진 연재한 계기가 있었나요?


십 년 지기 친구인 일러스트레이터 클로이 씨의 강한 권유가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개인 블로그나 지인 위주의 SNS에만 사진을 올려왔는데 그게 아깝다면서요. 그라폴리오, 들어보긴 했는데 그땐 일러스트 위주였고 또 ‘창작자들의 놀이터’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위축되어서 망설여지더라고요.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클로이 씨가 괜찮다고, 다들 좋아할 거라고 용기를 줘서 시작하게 되었죠. 연재를 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제 작품을 두고 소통하게 되었어요. 점점 제 안에서 편집자의 정체성뿐 아니라 사진 찍는 사람의 정체성도 만들어졌고요.

 

사진 찍는 사람의 정체성이라면 '헤르츠티어'인가요?


맞아요. 예명은 이전부터 썼던 거예요. 2013년에 정유정 작가님 소설 『28』  이 나왔을 때 소설 OST 음반을 만들었어요. 제가 프로듀싱을 하고 에필로그 테마곡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때 예명을 헤르츠티어로 쓴 거예요. 이후에도 사진이나 음악, 영상 등 창작 영역의 작업들은 모두 그 이름으로 했어요.

 

예명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아예 다른 정체성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문학편집자라는 직업은 어떻게 보면 검열자에 가까워요. 이야기의 흐름뿐 아니라 작가가 고른 어휘나 표현의 뉘앙스까지도 세세하게 살피고 의심을 하며 잠시 동안 그 원고 속에서 살게 돼요. 작가가 신뢰하는 첫 독자니까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게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자기 자신에게도 엄중하게 대하게 돼요. 편집자인 제게 충실한 자아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자아는 검열의 범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마음짐승’이라는 말도 그래서 와닿았던 거고요. 한 사람의 마음에 담긴 ‘마음’엔 동물성, 역동성, 욕망, 정적임, 평화로움 등 들쑥날쑥한 에너지가 다 담겨 있잖아요. 예술 작업을 통해서 저의 마음짐승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분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어려웠어요. (웃음) 처음엔 물리적인 공간이 분리될 때를 기점으로 삼았어요. 편집자라는 직업이 퇴근해도 퇴근한 게 아닐 때가 많아요. 봐야 할 원고도 계속 있고, 여러 가지로 일 자체에 관해 꾸준히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단은 야근을 하더라도 회사 일은 회사에서 끝내자는 게 첫 번째 원칙이었어요. 그리고 회사 밖으로 나가면 헤르츠티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죠. 처음엔 저도 쉽지 않았어요. 예전엔 금요일 밤에 야근하고 집에서 원고를 보는 일이 많았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에도 많은 편집자들이 그렇게 해요. 그렇게 오래 하다 보니까 번아웃이 왔죠. 이걸 끊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천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자신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잖아요.

 


길에 선 풍경의 이야기를 담다


그라폴리오에 올라온 작품들을 봤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작가님의 시간 활용법이었어요.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만들어서 함께 올리잖아요. 이번엔 책도 출간하셨고요.


시간 활용에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정말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같아요. 사진은 주말에 훌쩍 어디로 떠나거나 평소에 퇴근하고 나서 자주 찍어둡니다. 메모리카드에 담긴 사진들을 아이패드로 바로 볼 수 있는데, 그러면서 작업이 좀 더 효율적이 된 것도 있어요. 그리고 사진을 올리면서 글을 함께 쓰고 있어요.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는 사소한 만남들에서 얻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자주 메모해놓는 편인데, 거기서 영감 받은 이야기들을 많이 반영해요. 아, 그리고 주로 길을 걸어요. 거리 사진가(street photographer)로서 저는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줍는다고 표현하길 좋아하는데, 그렇게 걷다 보면 사진을 줍게 되고 문장도 줍게 돼요. 이번 책은 길에서 주운 사진들의 첫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길에서 사진을 찍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길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흥미로워요. 다 이야깃거리인 것 같아요. 특히 뭐랄까, 예쁘고 잘 짜여 있고, 누가 봐도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버려져 있거나 중심에서 소외된, 조금 덜 빛나는 것들에 눈길이 가요. 어떤 풍경이나 사람은, 무작정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카메라를 두고 멀리서 그런 것들을 바라봐요. 그런 날에는 보람이 있어요. 특별히 해준 건 없지만, 카메라에 담았다는 게 공감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무심히 지나쳤던 슬픔을 느꼈다는 것, 그리고 그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에 담았다는 게 좋아요. 책에도 그런 사진이 많아요. 211쪽 「당신의 잠」 에 수록된 사진이 그래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광화문이었어요. 낮이었는데 광장에는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중심을 벗어난 인도에서 한 남자가 웅크리고 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많은 사람의 열망과 욕망이 들끓는 광장 한편에서 이 사람은 자기만의 싸움을 하는 것 같았어요.

 

길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사진으로 담는 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은, 그렇죠. 주목받지 못하는 감정인 슬픔을 바라보자는 태도였어요. 슬퍼하는 사람은 슬퍼하도록 두고,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러 감정 중에서도 슬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괴로운 일을 겪거나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에게, 마치 슬픔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처럼 굴어요. 가령 일정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그 정도 슬퍼하면 됐지’ 하는 말도 하고요. 기쁨이라는 감정은 당연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인데 슬픔은 ‘우울증’이나 치료해야 할 것, 혹은 자연스럽지 못한 감정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들에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표지와 뒤표지에 쓰인 사진부터 좀 쓸쓸해요. 앞표지는 빈자리이고, 뒤표지는 뒷모습이에요.


표지 사진은 학쌀롱이라는 술집이에요. 처음 갔던 날에 찍은 사진이거든요. 들어가자마자 딱 보이는 장면에서 전율이 느껴졌어요. 아무도 없는데 빛이 떨어진 이 장면을 보고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사진을 찍고 정리할 때 ‘아무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다(117쪽).’라고 쓰기도 했어요. 뒤표지에 쓰인 사진에는 ‘있을 땐 있음을 보고 없을 땐 없음을 본다(189쪽).’라고 썼어요. 둘 다 상실의 태도예요. 아무도 없었지만 없는 게 아니었다는 태도와 있었던 것이 빈 상태를 보겠다는 게 제가 상실에 임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두 컷이 앞뒤에 쓰였어요.

 

「착한 풍경」(236쪽)의 장면은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어요. ‘찌든 점퍼 속에 백 년의 눈빛을 감춘 사람’이 ‘냉기가 발에 채는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있는데, ‘길을 재촉하던 중년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노파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어요. ‘체온을 나눠주고 있다’고 썼는데요. 정말 발견한 순간이었나요?


저도 정말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어요. (웃음) 사진 속 앉아계신 분이 혼자 있을 때 그 앞을 저도 왔다 갔다 했거든요. ‘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렇게 처량하게 계속 앉아 계신가’ 하고 빤히 바라보는데 한 분이 다가와서 가만히 손을 내미는 거예요. 처음엔 돈을 드리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손을 잡아주는 거였어요. 이 ‘착한 풍경’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었어요. 좀 더 가까이서 담지 못해 아쉽긴 합니다. 좋은 장면을 잘 포착하려면 용기도 필요하답니다.

 

눈물이 많은 택시 기사님을 만난 이야기(159쪽)도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고 하는 일 다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건강하고 안전운전 하겠습니다.”라는 덕담을 하시고 우는 기사님이었어요. 둘 다 일상에서 발견했다기에는 생경한 일이에요. 작가님에게 유독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감지한다고 하잖아요. 슬픔의 감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느껴지나봐요. 특히 택시 기사님 만났던 작년은 제가 유독 많이 힘들 때였어요.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기사님이 그렇게 덕담해주시는 거예요. 저도 제 이야기를 좀 하고 그랬는데, 10분 남짓한 짧은 대화였는데 서로 알아준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일하러 밖으로 나오기 전에 울고 나온다고 하셨어요. 누군가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같이 아팠어요.

 

글과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요. 때로는 사진과 글이 같이 읽히고, 때로는 따로 읽혔어요. 처음엔 어떻게 읽어야 할지,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어려웠어요.


한 편의 글에 한 장의 사진이 들어가 서로를 설명하는 구성은 독자의 상상을 제한하고 해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저는 그 방식을 취하되 글과 사진에 차이를 두고 싶었어요. 둘 사이가 가까운 게 있는 반면 어떤 건 멀어요. 나란히 둔 텍스트와 사진이 공유하는 정서는 닿아 있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글은 사진의 서브일 수도 있고, 어떤 글은 글 자체일 수 있어요. 사진도 마찬가지고요. 개인의 신변을 위주로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제가 빠져 있는 장면. 헤르츠티어라는 화자가 빠지고 카메라가 화자로 등장해서 카메라가 바라보는 사람과 장면을 담고 싶었어요. 이 책의 주인공 또는 내러티브 화자는 제가 아니라 카메라, 일종의 시선인 거죠.

 

카메라의 시선이 곧 책을 읽는 사람의 시선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보는 사람의 이야기일 수 있죠.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니까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누군가 바라보는 순간 완성되는 이야기인 거죠. 카메라로 순간을 담은 건 저이지만, 저 역시 거리를 둠으로 다른 사람이 상상할 여지를 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찍힌 대상과 거리에 보는 사람이 누구든 그의 생각과 메시지가 고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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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이야기하는 상실과 슬픔을 담다

 

사진을 찍으면서 슬픔이나 상실을 담아보자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었나요?


사진은 제게 좀 슬픈 매체예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의 제대로 된 증명사진 한 장이 없었어요. 그러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사진관에 가서 확대해서 아주 조악한 화질의 영정사진을 만든 거예요. 화질이 좋지 못하니 화면이 흐릿한, 영정사진이었어요. 그게 지금도 기억이 나요. 앨범을 찾아도 찾아도 제대로 된 아버지 사진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진은 좀 더 슬픈 이미지로 다가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이 그랬고, 기본적으로 늘 가지고 있는 감정에 슬픔이나 상실감이 바탕에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에도 간혹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있어요. 「나의 유년」이나(65쪽) 「환상의 빛」(302쪽)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나의 유년」이라는 글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그러니까 그날 밤의 이야기예요. 이전까지 아버지를 피해 다락방에 숨던 날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날은 아니었어요. 똑같은 밤이었는데 그러다가 새벽에 「환상의 빛」에서처럼 가셨어요. 제가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그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저 자신이 30년째 애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왜냐하면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산 사람은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장례를 치르고, 계속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데 그 상실감 같은 게, 계속 있어요. 아직 탈상하지 못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금 더 아프고, 슬픈 사람, 마음이 다친 사람, 상실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마음이 더 잘 헤아려지는 것 같아요. 책에 담긴 텍스트가 어떤 면에서는 문학적이지만 추상적으로 읽히는 부분이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풀어낸 깊은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슬픔을 간직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거나, 슬픔을 터부시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작가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책 전반에 사랑이나 상실감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신 것도 오랫동안 상실감에 빠져 있는 작가님 본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버지가 좀 위압적이셨기 때문에 돌아가신 후 당장은 아버지의 상실이 슬픔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간혹 아버지 없다고 놀리는 친구를 볼 때나 청소년기에 어른 남자의 모델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죠. 여자 형제밖에 없어서 남성적인 모델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란 거예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 날 아버지 꿈을 꿨어요. 비가 잔뜩 내리고 있는 황무지에 아버지가 서 있었는데 물리적으로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 거예요. 가서 만져보고 느끼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사라지고 발자국만 남았어요. 비가 그치니까 발자국마저 사라지고 없는데 그 자체가 정말 강렬했어요. 서른아홉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기를 쓰셨어요. 아버지 일기를 읽으면서 한번 더 떠올리고, 그의 죽음을, 아니 그를 이해하려 애를 썼어요. 그렇게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 거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 슬퍼지고요. 그렇게 슬퍼지면 주변에선 새삼스러워하는 거예요.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러냐고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환상의 빛>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너무 놀라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영화를 보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게, 힘들 것만 같은데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 이야기를 공명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어요. 다 잊으라고, 털어내라고 하는 말은, 사실 바람 같은 말인 것 같아요. 아버지가 서른아홉에 돌아가셨는데 서른이 될 때쯤에 굉장히 두려웠어요. 나도 아버지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저를 사로잡더라고요. 당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조금 안심이 됐어요. 이게 일반적인 감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저 역시 다른 것보다 책으로 마음을 나눠주고 싶었어요. 그게 누구건 무엇이건, 소중한 것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보고, 마음을 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는 건가요?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제대로 슬퍼하지 못했던 거죠. 올바르게 자라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어요. 『콰이어트』 라는 책에 보면 저와 같은 유형이 나오는데, 강인하고 적극적이고 모범적이고 밝아야 한다는 의무를 자신에게 지우는 사람이요. 성격이 내향적임에도 학창시절 내내 학생회장을 했어요. 자발적인 거였지만 어쨌든 슬픔을 외면해야 하는 세계에 있어야 했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프롤로그에 슬픔의 단계를 본문 구성으로 취했다고 하셨어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게 있다고 하잖아요. 이게 미션 완료가 아니라 계속 반복되는 거 같아요. 반복하면서 흐려지고, 다시 반복하고 흐려지는 거예요. 두세 번 반복하면서 슬픔의 농도가 묽어지는 거예요. 사람은 계속 나아가게 되니까요. 수용하면서 나아가기도 하고요. 또 가끔은 다시 처음처럼 진한 슬픔의 단계로 되돌아가기도 하지만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거치면서 묽어져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렇게까지 깊게 파고드는 게 애도 말고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2014년 4월 16일 이후였어요. 출판사에 전화가 한 통 왔는데, 자신이 쓴 소설이 세월호 사건과 너무 비슷하다고 지금 출판하면 대박날 거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였어요. 정중하게 안 되겠다고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표현하진 못했지만 너무 화가 났어요. 사람들이 타인의 아픔에 이렇게까지 둔하구나,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도 둔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 슬픔이 있다고 인식해도 깊게 보려고 하지 않잖아요.


슬플 때 슬픔에 몸을 맡겨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안 보려고 외면하려고 하지 말고, 바라보자는 거죠. 바라본다는 게 추상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자기 안의 방에서 자기를 바라봐도 좋고 아니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나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줄 사람들 속에 있어도 좋아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작가 헤르츠티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주제가 있나요?


어릴 때 말을 심하게 더듬었고 그 때문에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 되었고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쓰는 오늘에 이른 것 같아요. 사진 역시 제게는 또 하나의 언어적 수단이에요.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게 지금은 잘 맞고, 많은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저는, 길에 떨어져 있거나 외진 데 있는 조각들에 숨을 다시 불어넣어주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야기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존재들에 목소리를 부여해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고, ‘대신 말해주기’를 하고 싶어요. 대신 말해줌으로써 사람들이 모든 것에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하고, 시선을 넓힐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다음엔 여행 관련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올해 가을에 필름을 잔뜩 챙겨서 필름사진을 잔뜩 찍고 오려고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헤르츠티어 저 | 싱긋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면서 또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아픔인 상실감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둠 속을 더듬어 빛을 찾아가는 사진의 원리나 과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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