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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쓸 공간, 어디 없나요?

SNS에 다시 도전하다

나중에 살아가는 데 비료로 쓰이기는 똥이 되나 흙이 되나 어느 거나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아무도 내 말에 관심가지지 않을 것을. 누가 뒷덜미 좀 잡아채면 어때.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또 모든 게 해결되나? (2018.08.10)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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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정신을 차려보니 인터넷상에서 갈 곳이 없었다. 한 시대를 장악한 플랫폼들은 격렬한 땅따먹기를 하다가 10년이 채 가기 전에 사라지고, 거기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피난민이 되어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났다. 몇 군데 깨작거리다 말기를 여러 번, 적절한 인터넷 공간이 하나둘씩 없어지면서 글을 쓸 만한 곳이 SNS밖에 남지 않았다. 황폐한 계정을 살리겠다고 팔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 말도 안 해서 절반이라도 갔지만, 절반 이상 가려면 절반 이하로 깎여나갈 생각으로 말을 던져야 한다. 남긴 말의 조각들이 모여서 나를 구축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덜그럭거린다. 내 조각은 너저분해지기에 십상인데, 잡다하게 일을 벌여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일을 벌이는 가운데 나를 아는 사람들이 겹치지 않아서 서로 초대할 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쪽 사람들은 이 시간 이후의 나를 모르고, 저쪽 사람들은 저 시간 이후의 나를 모른다. 이 모든 사람은 두서없이 내 이름으로 된 SNS 계정에 모여 있다. 이 이야기를 하자니 저 사람들은 모를 거고, 저 이야기를 하면 이 사람들의 마음이 상할 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세 단어 어느것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하호호 사교적인 '나'를 만들 생각도, 주변의 훌륭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 의지도 없다. 이 플랫폼이 나에게 주는 서비스가 내 개인정보를 털어가려는 게 아닐까 먼저 의심한다. 이것 참, 이시대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걸 파는 세상, 팔 게 나 자신밖에 없어서 자신을 열심히 팔아야 하는데 SNS만 들어서면 처음 영업에 나선 사람처럼 쭈뼛쭈뼛대게 된다.


이를테면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부계와 부부계와 본명계와 가명계를 따로 파 놓고 운영하면서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말만 할 수도 있다. 이쪽에서는 부당한 수사 소식에 분노하고 저쪽에서는 새로 내한한 밴드의 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반대편에서는 지인의 안 좋은 소식에 눈물짓는다면 나는 충분히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역할은 만날 일이 없게 되고 나는 계속 조각나 있겠지.


분명 비문을 쓰는 것도 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을 하는 것도 나인데 그래도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첫발을 못 내딛게 한다. 결국에는 보여주자고 쓰는 말이다. 가벼운 마음. 가벼운 마음. 계속 주문처럼 되뇐다. 가볍게, 가벼운 걸 가볍게. 모두에게 맞는 글은, 게다가 나 자신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글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생각해도 막상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정성껏 빚어놓은 구슬을 구경만 하다 로그아웃한다. 저번 주에는 피아노를 치면서 쓴 일기를 올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즐겁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상처받지 않게 하는 피상적인 말에 불과하다. 정치 이야기를 해도 되는가? 불평을 늘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하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일이다. 친구랑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마침 근처 중학교도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해맑게 "잘 봐, 내가 여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라고 말하고는 벽처럼 앞을 막아선 중학생들 사이를 요래조래 빠져나갔다. 무리를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쯤 누군가 뒤로 넘어갈 만큼 내 뒷덜미를 세게 잡아챘다. 얼이 빠져서 뒤를 보니 동급생 남자애가 씩씩대고 있었다.


"야, 너 왜 나 욕해!"
"내가 언제...?"
"너 방금 미꾸라지라고 그랬잖아! 내가 왜 미꾸라지야!"


인파를 헤치고 나를 찾아온 친구가 오자 나는 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불행히도 별명이 미꾸라지였던 그 친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채 우리 둘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자리를 떴다. 그저 나는 평소보다 큰 소리로 말했고 그저 그 친구가 뒤에 있었을 뿐이다. 이상한 애야, 웃으면서 집에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도 저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별거 아닌 일을 정말 별거 아니게 쓰려고 해도 손가락을 거두게 된다. 행여나 누가 뒷덜미를 잡아채면 어쩌나 싶어서. 근데 그 걱정만 하고 있으면 언제 글을 쓰나. 그 아이 잘살고 있나. 근데 왜 별명이 미꾸라지였지. 미 씨도 아니었는데. 생김새가 닮았었나....


최근 든 생각은 '아끼다 똥 된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기획물이 어딨나. SNS에서 자기를 열심히 예쁘게 조각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결국 같은 이야기다. '나'의 조각을 다 모아서 완벽한 나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 하다 보면 누구는 오해하고 그 오해가 기록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싹 다 갈아엎고 시작하면 사람들도 모두 갈아야 하나? 기록만 지운다고 쳐도 이제까지 해온 모든 알량한 토대가 아깝고... 아낀다고 금이라도 됐단 말인가. 나중에 살아가는 데 비료로 쓰이기는 똥이 되나 흙이 되나 어느 거나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아무도 내 말에 관심 가지지 않을 것을. 누가 뒷덜미 좀 잡아채면 어때.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또 모든 게 해결되나?


일단, 피아노 일기를 계속 써보기로 한다. 운이 좋으면 뒷덜미 잡힐 일 없이 즐겁게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갈 수도 있겠지. 늘 섬찟한 마음은 한쪽에 남겠지만.


아아, 완벽하지 않아도 편히 쓸 공간,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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