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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돌에 마음을 녹이다

『트럭 모는 CEO』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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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에게서 기대했던 것은 노련하고 기민한, 세상 물정 다 꿰뚫은 장사꾼이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묵직한 책 한 권 거뜬히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본 그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2018.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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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탁자 위에 티백 녹차 한잔과 작은 수첩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저자를 기다렸다. 두툼한 스웨터가 어울리는 서늘한 늦가을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들어선 저자는 ‘여름’이었다. 그을린 얼굴, 짧은 스포츠머리, 목을 많이 쓰는 사람 특유의 갈라짐에도 목소리는 신기하게 청량감이 넘쳤다.    

 

 보통 인터뷰 대상을 만날 때 편집자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뽑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타오른다. 수많은 질문 목록을 뽑고, 그러기 위해 그 사람을 열심히 공부한다. 이번에도 나는 편집자로서 마땅한 의무감으로 성실히 공부했고 만반의 자세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로서는 처음 만나는 저자지만, 우리 출판사와 이미 첫 번째 저서를 성공적으로 낸 전적이 있는 분이기에 자료는 충분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내가 미리 준비한 내용과 상관없이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인터뷰가 애초 생각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는 대신 그가 풀어내는 삶을 그저 따라가며 맞장구쳤다. 예비했던 ‘다음 질문’을 의도적으로 곱씹을 필요조차 없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저자가 청년기를 보냈던 과일가게, 인생의 밑바닥이자 디딤돌이었던 트럭 장사, 그리고 현재의 100억 매출 회사로 시간을 옮겨가며 나는 토크쇼의 방청객마냥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에게서 기대했던 것은 노련하고 기민한, 세상 물정 다 꿰뚫은 장사꾼이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묵직한 책 한 권 거뜬히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본 그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로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거꾸로 어떤 이야기든 그는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 같은 소박함, 꾸미지 않은 겸허함이 그의 말에, 표정에 묻어났다.


예감이 좋았다. 좋은 책이 나올 것 같다는 편집자로서의 욕심뿐 아니라, 책의 주인공을 굳이 각색하고 성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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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던 기일을 조금 넘겨 원고가 도착했다. 그의 글은 그의 말만큼이나 인심이 좋았다. 편집을 끝마쳤을 때는 원고를 절반 가까이 추려내었을 정도로 성실한 양이었다. 초고는 당연히 매만질수록 세련되어진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내가 절대 손대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구간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그런 구절을 만날 때마다 비닐로 보양하고 페인트칠을 하듯 각별히 보호했다. 그가 손님이나 동료들과 나눈 대화는 특히 현장의 생동감이 넘쳤다. 편집자의 필력만으로는 꾸며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자에게 원고 보충을 의뢰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요구도 “이 부분을 대화체로, 저자의 목소리로 표현해주세요”였다.


살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충전을 갓 마친 배터리처럼 존재를 과시하는 사람들. 저자는 방전되지 않는 에너지를 타고난 사람 같지만 요란하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그의 말은, 글은 그랬다. 오히려 묵직한 차돌 같은 에너지를 뭉근히 발산하는 사람이었다.


여담이지만 책의 제목이 ‘트럭 모는 CEO’로 확정되기 전에 거론했던 제목 중 하나가 ‘차돌 CEO’였다. 편집부에서는 ‘따뜻한 차돌’이라는, 그에게는 결국 전하지 않은 호칭을 만들고 좋다고, 딱이라고 우리끼리 만족했다. 

 

그의 인생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확장되어가든, 그 단단하고도 따뜻한 에너지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생각해본다.  


 

 

트럭 모는 CEO배성기 저 | 오씨이오(oceo)
한때 어두운 세계에서 ‘형님’으로 통하던 전라도 사나이,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홈쇼핑 쇼호스트 등, 팀원들이 저마다의 시련을 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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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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