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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생활자, 평생의 다이어트에 대하여

이 사회는 과체중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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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 오늘의 내가 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시간이 지난 후엔 나는 분명히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걸 알았다. (2018.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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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과체중으로 살았다. 어른들은 날씬한 체구의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네 언니 먹을 것까지 다 빼앗아 먹었지?”라며 농담했다. 웃자고 한 소리지만 같은 말을 295837948번쯤 듣는 어린아이는 상처받는다. 내 부모는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욕하고, 상처 주었다. 어머니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맛있게들 먹고 예희는 못 먹게 해라”라고 항상 말했다. 친구들은 간식을 먹으며 나에게 미안해했고, 나는 울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같은 말을 들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게 되었고, 음식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먹지 않았느냐고? 숨어서 먹었다. 동네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사 들고 와 화장실 문을 잠그고 급히 먹은 다음, 포장지는 가방에 숨겼다가 집 밖 쓰레기통에 버렸다. 밖에선 아이스크림도 캔 음료도, 먹고 마시지 않았다.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누군가에게 비난받을 것 같았다. 저거 봐, 저러니 살이 찌지.

 

과체중 아동이 자라 과체중 청소년이, 과체중 성인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그 뚱뚱한 애’로 통하고 싶지 않았다. 단체복이라는 ‘프리사이즈’ 티셔츠가 내 몸에도 맞길 바랐다. 조심스레 손을 들고, 더 큰 사이즈 없는지 물을 일이 없길 바랐다. 그럼 다들 쳐다볼 거고, 나는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질 테니까.

 

그런데 사실 나는 나서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강연이나 방송 출연 기회가 생기면 저요! 하고 냅다 일어나 덥석 잡는다. 하지만 그런 나를 주저앉히는 데는 긴말이 필요 없었다. “뚱뚱한 년이 나댄다”는 한마디면 충분했다. 사회가 나를 주저앉히고 주눅 들게 했다.

 

이 사회는 과체중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라며 등 떠민다. 온갖 이름이 붙은 다양한 다이어트를 경험했는데, 시대별로 유행하는 건 한 번씩은 다 해본 것 같다. 90년대 중반, 단식원 붐이 불었을 땐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보름간 입소했다. 3일쯤 지났을 때 엉엉 울며 집에 가고 싶다고 전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보름 내내 맹물과 이온 음료만 허락되는 곳인데, 냅다 굶으니 체중이 줄기는 한다. 하지만 출소, 아니 퇴소 후엔 금방 회복된다. 풀무원 다이어트와 덴마크 다이어트도 여러 차례 반복했다(덴마크엔 가본 적도 없지만). 90년대 말, 자몽을 구하기 쉽지 않을 때라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귤이나 낑깡은 안되는 걸까 고민했다(안된다고 합니다). 한의원에선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고, 양의원에선 주사를 맞고 양약을 먹었다. 성분이 뭐였을까?

 

식사량을 줄이면 배가 고프고, 힘들고, 짜증이 난다. 누가 뭘 먹는 걸 보기만 해도 화가 바짝바짝 날 정도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런 줄 몰랐다. 한참 나중에 친구들이 슬쩍 말해줘서 알았다. 너 그때 성질 대단했다고. 그랬구나. 나는 그저, 나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날씬해지고 예뻐지면 분명히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몸무게 숫자에 집착하는 건 나를 괴롭히는 행위일 뿐이다. 날씬해지기 전까지는 미완성 상태의 인간이라며, 저기에 고지가 있으니 도착할 때까진 눈 딱 감고 참으라며 나를 채찍질하는 행위. 고지는 66사이즈였다. 55면 더 좋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성 의류회사 디자인 팀에 입사 지원을 했고, 면접에서 탈락했다. 신입사원은 피팅모델 일도 겸해야 하니, 55사이즈의 ‘표준’ 몸매가 아니면 애초에 안 되는 자리라고 했다. 그렇구나, 나는 표준이 아니구나. 옷을 사러 가도 다르지 않다. 고객님, 55세요 66이세요? 77 이상이시면 저희 매장엔 옷이 없어요.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쭉 켜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강한 몸. 나에게 적절한 몸무게와 근육량, 관절 상태를 알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이 사회는 55, 66이란 숫자와 S, M, L 같은 기호만을 이야기하며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라고 한다. 그게 수치스러워 옷을 사자마자 사이즈가 적힌 라벨부터 떼어낸다는 사람도 많다.

 

빼고 찌고를 반복하다 서른이 되었을 때, 어느 때보다 독하게 식사량을 줄여 30킬로그램을 감량했다. 저녁 6시 이후엔 물도 마시지 않다가, 익숙해지자 5시로 앞당겼다. 다시 4시, 3시, 2시가 되었다. 잘하고 있는 거라 굳게 믿었다. 주변에선 난리가 났다. 대단해, 많이 빠졌네! 턱이 뾰족해졌어! 그래서 더 나를 몰아세웠다. 급기야 낮 12시에 그날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물을 마셨다. 내가 잘못하는 거라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당장 몸무게 숫자가 줄어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나.

 

어느 날은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심하게 체했고, 억지로 힘주어 토했다. 거울을 보니,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눈 주위 실핏줄이 톡톡 터져 작은 빨간색 점이 잔뜩 돋았다. 그래도 기뻤다.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생각했다. ‘야, 이건 살로 안 가겠구나!’ 그리고 그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밥을 먹고 나서 포만감이 들자 문득 또 토하고 싶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간편한, 바로 눈앞에 있는 다이어트 방법. 얼굴에 가득하던 빨간 점과 핏발 선 눈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두 번 하지 않아 정말로 다행이야.

 

어쨌든 30킬로그램이라니, 이 정도까지 살을 뺀 건 처음이라 신이 났다. 몸에 딱 맞는 원피스를 잔뜩 사들여 입었다. 원피스도 하이힐도, 모두 서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입고 신어보았다. 다양한 사이즈, 다양한 디자인의 여성 의류가 있었다면 그걸 입었겠지만, 당시엔 힙합풍 티셔츠와 청바지가 최선이었다.

그 무렵 동생이 결혼했고, 나는 비장의 원피스를 차려입고 예식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네 언니 먹을 것까지 다 빼앗아 먹었지?”라는 말로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 앞에서 ‘어때, 이제 언니보다 내가 낫지?’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실제로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어른도 있었다. 당황했다. 언니와 함께 손님을 맞이하던 중이니 분명히 언니가 상처받을 텐데. 그 순간,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뿌듯해한 거지? 그리고 나와 내 언니가 왜 이런 사람들 앞에서 정육점 고기마냥 대놓고 평가받아야 하지? 왜 경쟁해야 하지? 자매간만 그런가, 또래 사촌 간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 지인의 자녀와도 마찬가지다. 누구네 집 애는 이번에 몇 등 했다더라, 그렇게 예쁘고 늘씬하다더라, 키가 몇이라더라, 신랑이 그렇게 괜찮다더라. 서로 경쟁하고, 미워하게 만든다. 이 사회는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나저나 이상하다. 살을 그만큼이나 뺐으니 당연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자신감이 넘쳐 홀딱 벗고 다니고 싶고(범죄입니다), 뭐 그럴 거 아닙니까? 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완전히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여전히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난 아직 뚱뚱해, 표준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정체불명의 ‘표준’이라는 게 있다고 믿은 것이다. 매일같이 근사하게 차려입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쭈구리. 어쩌면 그래서 더 신경 써서 꾸몄는지도 모른다. 사진 찍힐 일이 생기면 가방으로 배와 옆구리를 어떻게든 가리고, 팔뚝과 볼살이 덜 나오는 자세를 찾아 몸을 뒤틀었다. 찍힌 사진은 물론 사전 검열. 이건 뚱뚱하게 나왔으니 지워줘. 요건 턱이 뾰족하게 나왔으니 합격.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그 어렵게 뺀 살들은 다시 살금살금 집으로 돌아왔다. 이거 봐, 그럴 줄 알았어, 내가 그렇지 뭐, 라며 꽤나 울적해졌는데…

 

얼마 전 페이스북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 SNS에는 독특한 기능이 있는데, 몇 년 전에 업로드한 사진을 뜬금없이 다시 보여주며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나에게 날아온 추억의 사진엔 30대 중반, 그때 그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정장 원피스와 하이힐, 클러치백 차림. 나도 모르게 소리 내 말했다.

 

“세상에, 나 너무 날씬했는데?”

 

하지만 분명히 이 사진을 찍던 날, 나는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했고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 도망 다녔고 1킬로그램이라도 더 빼야 한다며 전전긍긍 안달복달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그랬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때 그 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 오늘의 내가 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시간이 지난 후엔 나는 분명히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걸 알았다.

 

다시 한번 그때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음식 섭취량을 줄여 변비에 시달리던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아침 공복에 소금물을 한 컵씩 억지로 먹던 때였다. 다행히 진한 화장 덕에 배고픈 티가 가려졌다. 지금도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때 딱 좋았다며, 다시 다이어트를 하라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겪은 혼란과 고통을 모른다. 당연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남의 겉모습만 본다.

 

날씬해지기 전에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눈높이와 요구를 내가 충족시켜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정한 눈높이도 아니며, 애써 채워줘도 곧 다시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독립한 후 서서히 마음도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는 나에게 상처를 준다. 반가워하실 거라 기대하며 카카오톡으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니 대뜸 살이 더 쪘네, 빠졌네 같은 외모 품평을 한다. 과거엔 속수무책으로 상처받았지만, 지금은 거절하고 거부한다. 그런 대화라면 하지 않겠다고 딱 자른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한다.

 

살이 찌면 쪘다고, 마르면 말랐다고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잊자. 지금의 나,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아주기 위해선 내 눈에 내 몸이 익숙해지는 게 먼저다. 내가 나를 자꾸 봐야 정이 들고,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비주얼 롤모델을 정하는 것도 좋다. 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의 SNS를 팔로우하며 도움을 많이 받는다. 다양한 의상을 입고 여러 포즈를 취한 사진과 영상에 감탄한다. 이 모델은 그래도 나보단 허리가 가늘어서 좋겠네, 이 사람은 비율이 좋으니까 부럽네, 하며 처음엔 그들의 우월함을 기어이 찾으며 기죽었지만, 계속 보면 서서히 달라진다. 시각적 자극의 효과다. 내 눈에 익숙해지면 내 마음에도 친숙해진다. 그리고 내 몸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한 번에 바뀌진 않지만,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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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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