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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책방] 할머니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요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예민함이라는 무기』, 『수영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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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죠. 삼천포 책방 시간입니다. (2018.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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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일곱 번째 여름을 맞는 할머니의 일기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예민한 톨콩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예민함이라는 무기』 , 수영장을 지키는 여성들의 우정을 그린 소설 『수영하는 여자들』 을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옥남 저 | 양철북


현재 아흔일곱 번의 여름을 맞고 계신 할머님께서 30년 동안 쓰신 일기를 엮은 책이에요. 이옥남 여사님께서 쓰셨고요. 이 책에 대한 설명은 길게 할 것 없이, 작가님께서 에필로그에 쓰신 부분을 읽어드리고 싶어요.

 

“어려서는 그렇게 글씨가 쓰고 싶은 것을 아버지게서 못 배우게 해서 못 써보고 그것이 원이 돼서 부엌에 불 때면서 부주깽이로 재 글어내서 재 우에 가자 써보고 나자 써보고 이렇게 배워서 그저 그럭허니 하고 있었지 절대 글 안다는 표정을 안 했습니다. 아들 군대 갔을 때 편지가 오면 어디 가서 편지 써달라하기 싫어서 그냥 되는 대로 내 손으로 글씨를 써서 회답을 써서 우체국에 가 부치고 오고, 아들네가 다 군대 마치고 타관 객지에 가서 주민등록 떼어 보내 달라해서 면에 가서 주민등록 띠여 보내고 모든 것을 다 내 손으로 하다 보니 남편한테 별 말을 다 듣고 살아왔습니다. 풍구독에 쥐색기처럼 면에고 조합에도 드나든다고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살았답니다. 그럭저럭 살다보니 세월이 다 지나가고 남편이 저 세상 가고 나 혼자 살다보니 적적해서 글씨나 좀 나아질까 하고 도라지 까서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한 것이 손주가 그것을 일기라고 소문을 내서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책에 실린 일기는 굉장히 단출해요. 날짜, 날씨, 오늘 뭘 했는지 쓰셨는데 어떻게 보면 그 날이 그 날 같은 단조로운 일상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흥미로운지, 한 번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어요. 그저 씨 뿌리고, 수확하고, 두엄 주고, 나물 캐고, 삶고 말리고, 장에 가서 팔기도 하고, 자식들 소식도 듣고... 계속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이사이에 진하게 묻어나는 무언가가 있어요. 한숨 내쉬듯 말씀하시는 것들이 가슴이 콕콕 박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할머님이 살아오신 시간과 삶의 태도가 드러나요.


읽는 동안 자연의 시간에 따라서 사는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요. 할머님께서 보여주시는 삶의 태도 속에 자연에 대한 공생의 감각, 다른 존재와 공감하는 시간이 담겨있어서 좋았습니다. 
 

 

톨콩의 선택 -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 젤린 저/유영미 역 | 나무생각

 

롤프 젤린이라는 저자는 독일 최고의 관계심리학자라고 하는데요. 이 책은 저의 동거인이 저를 이해해보려고 사준 책이었어요. 저는 감각기관이 다 예민한 사람인데 까탈을 부리는 걸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민감하게 구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예민하지 않고 무던한 성격이라고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제가 예민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어봤더니, 정말 저 같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던 거죠. 예민한 사람들은 상대가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너무 감지를 잘하기 때문에 자꾸만 상대 입장으로 빙의해버린다고 해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걸 주장하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에게 계속 맞추게 되고요.


저는 30대까지도 백화점에 가면 정신을 못 차렸어요. 자극이 너무 많아서. 앞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그 자극이 쏟아져 들어오는 걸 힘들어했었는데요. 이 책에도 예민한 사람들에게 쇼핑이 어떻게 큰 자극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어요. 저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된 책이고요.

 

또 예민한 사람에게는 자기를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해요. 상대의 심정으로 계속 넘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 나의 신체감각을 많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외부의 자극과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나의 자아경계 안으로 계속 침투하기 때문에, 자아가 느끼는 것의 경계를 정확하게 설정해주는 게 중요한 거죠.


예민하다는 게 까질하다는 것과는 다르거든요.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게 크지 않은 자극을 굉장히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게 재능이기도 한 거예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예민한 팀장은 팀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어야 적절한지를 정확히 지각할 수 있고, 예민한 판매원은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예감하는 엔지니어, 고장의 원인을 정확히 감지해내는 기술자, 화가가 지닌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림을 일찌감치 사드리는 화랑 운영자” 등등 예민함이 어떻게 재능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 책이고요. ‘저 사람은 확실히 예민한 사람인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드는 주변 분에게 선물을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단호박의 선택 - 『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저/박성혜 역 | 구픽


리비 페이지 작가는 런던패션대학에서 패션 저널리즘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요. 졸업 후에 <가디언>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고요. “글쓰기 후 그녀의 두 번째 즐거움은 야외 수영을 즐기는 것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뭐냐 하면, 런던의 어떤 마을에 아주 오래된 야외 수영장이 있는 거예요. 시의회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고 ‘리도Lido’라는 이름을 가진 수영장인데요. 주인공은 어렸을 때는 수영을 했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수영을 하지 않게 됐고, 지역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인생이 힘들고, 가끔 공황발작이 오고,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내가 쓰고 있는 글은 의미도 없는 것 같고, 그런 거죠. 그러다가 리도 수영장이 없어진다는 뉴스를 취재하게 돼요.


그곳을 찾아갔다가 80대의 수영하는 여성 로즈메리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 여성이 너무나 활기차 보이고 즐거워보여서, 운명에 이끌리듯이 이 사람을 취재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수영을 하면 인터뷰를 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영을 시작하게 되고, 이 수영장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하니까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죠. 결국 수영장을 지키기 위해 좌충우돌하게 됩니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요. 이 결말이 작위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 종류의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야지, 이게 소설의 묘미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에서 ‘이 야외 수영장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읽어드려 볼게요.


“리도는 그저 땅속에 구멍을 파서 물을 채워놓은 곳, 사람들이 때때로 찾아가 수영하다 가고 마는 곳이 아니에요. 그 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죠. 그 의미가 너무 커서 혹시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건 그래야만 할 방식대로 눈을 사용하지 않은 탓이겠죠. 로즈메리와의 만남이 그걸 제게 가르쳐줬어요. 그리고 리도가 아니라도 도서관이든 청소년센터든 한 남자가 평생을 살아온 아파트든 지금도 거리로 내몰리는 곳들이 있어요. 모두 신문에서 매일 다루고 있거나 아니라면 마땅히 다뤄야 할 것들이죠. 그들은 모두 중요해요. 그리고 지금 괜찮지 않아요. 엄청나게 괜찮지 않다고요.”


이 수영장이 지역 주민한테는 너무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거예요. 로즈메리 할머니의 역사도 그곳에 남아있고요. 『수영하는 여자들』 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로즈메리 할머니와 인생이 불행했던 기자(주인공)의 우정도 너무 잘 그려져 있고요. 점점 더 마을의 사람들과 관계를 넓혀가는 과정도 쭉 나오기 때문에 ‘나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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