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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았으면

무의식 중에 자주 아이의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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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키우고 싶지 않다. 부모의 바람을 아이가 자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 (2018.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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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많아졌다. 책에서 아이를 떠나 보내는 장면이 나올 때, 아픈 아이들의 얼굴이 TV화면을 가득 채울 때 여지없이 울컥한다. 차량에 방치된 아이 기사를 읽었던 여름날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납품 주문을 처리했고, 지난 달 붕괴된 유치원 소식에도 안도의 눈물을 떨궜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를 직접 낳지 않은 내 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놀랍다. 아이가 태어난 후 2년 남짓 흘린 눈물의 총량이 그 전 20년간 흘린 눈물의 총량을 이미 넘어선 것 같다. 아이와 그 부모들의 마음이 상상되면서 타인과 나 사이 경계가 일순간 허물어진다.

 

타인의 고통에 관해 생각하다가,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워하다가, 부끄럽게도 내 생각은 자기만족으로 이어진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는 내가 슬쩍 괜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고통조차 자기만족의 근거로 삼아버리는 무례가 내 안에서 작동하곤 한다. 이 무례를 자각하는 순간 다시 예를 차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무례를 인식하며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자신이 또 흡족하다. 나는 만족의 근거를 계속 투입해줘야 하는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이런 나를 깨닫게 되면 혹시라도 누가 알까 싶어 속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되뇌어 보지만 그 역시도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물은 금방 마른다. 브라운관에 나열된 이미지들, 슬픔과 분노의 기사들을 읽는 동안 샘솟던 눈물은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연결 짓는 일에 쓰이지 않는다. 강이 하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풍부한 유량을 뽐내듯, 수많은 원인들이 결합해 ‘사건’이라는 모습으로 하류에 모습을 드러낸 뒤에야 눈물도 터져 나온다. 공공의료나 보육정책, 교육정책, 가계 소득의 양극화 같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 상류에서 이미 결정되는 순간, 내 눈은 그저 건조하게 뉴스를 훑고 지나갈 뿐이다. 내 눈물은 문제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 작은 힘이나마 모으는 일로 나아가지 못한다. 비로소 내가 못마땅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기만족의 자원으로 소모하고 있다는, 반박할 수 없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무례하지 않고 의미있게 공감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과제로 삼고 노력해야 한다. 내 삶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슬쩍 끼어드는 생각이 있다.

 

“내 아이는 나보다 나았으면…”

 

무의식 중에 자주 아이의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든 잘 자라라 생각하는데도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꽤 구체적으로 우후죽순 솟는다. 공놀이를 잘하면 좋겠어. 캐치볼은 물론 둘이서 족구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 대형쇼핑몰이나 테마파크 뿐만 아니라 적막한 폐사지를 사랑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요즘은 유튜브와 스낵 컬처의 시대라지만 내 아이는 대하소설에 흠뻑 빠져들 수 있기를 등등.

 

그리고 이런 거창한 것도 덧붙는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결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일순간 분노를 터뜨리기 보다는 문제의 상류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이익을 좇기 보다는 뜻을 좇는 사람, 시류를 따르지 않을 때 생기는 불안감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돌아보면 모든 게 나로부터 비롯된다. 공놀이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큰 부분이고 관광지보다 유적지를 선호하는 건 내 여행 취향이다. 어떤 미디어보다 책을 윗자리에 두는 내 고집이 아이와 대하소설을 나란히 두게 만들고, 소시민적 삶을 넘어서고 싶다는 아빠의 과제가 아이의 마음이 더 강건하길 바라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거의 나를 복사해 붙인 모습의 아이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아이가 나보다 낫길 기대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이에게 권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조심하고 싶다. 내 마음을 키우고 싶지 않다. 부모의 바람을 아이가 자각하게 하고 싶지 않다. 가급적 스스로의 마음에서 피어 오른 것들로 아이의 삶이 세워지길 바란다. 가능한한 넓은 여백을 아이 스스로 채우게 해주고 싶다.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길 바란다.

 

다짐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기대는 불쑥불쑥 드러날 것이다. 마음이란 누른다고 누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길을 터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삶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좋은 출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시간을 할애하고, 내가 나의 한계를 상대하며 성장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아이로 향하는 기대를 나에 대한 기대로 돌림으로써 내 마음은 충족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너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나이를 먹어도 자기 몫의 삶을 놓지 않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 아름답게 비칠 테니 말이다.

 

아이의 눈에 부모가 아름답게 비친다, 그런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바라지 않으면서 그저 나의 삶을 상대하는 모습으로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다. 그 다음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고, 어쩌면 아이가 스스로의 손으로 나를 닮은 삶을 그릴지도.

 

이런, 아이에 대한 기대를 끊는 게 이렇게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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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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