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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오늘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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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아기 고양이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1월호

삶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2018. 11. 05)

정이현(소설가) 사진김잔듸(516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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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동염이 계속 재발했다. 병원에서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권했다. 며칠 후 결과지를 쭉 훑어보던 담당의사가 갑자기 말했다. “몸 안 좋을 때, 숲속에 들어가 고기 구워 드시면 안 되겠네요.” 이상한 농담이면 좋았겠지만 진담이었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쇠고기에서 꽤 높은 수치의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항목에서 양성이 나왔으나 내게는 별로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타공인 육식주의자에게 쇠고기라는 단어의 충격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 목록 어딘가에 ‘고양이’가 적혀 있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그 애와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 아기고양이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 도 몰랐다. 빌라의 동과 동 사이, 작은 마당 한편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 말곤. 내가 처음 봤을 때 고양이는 흙바닥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았다. 작고 여윈 몸을 더욱 움츠러트렸을 뿐이다. 아기고양이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작은 몸을 더 작아 보이도록 하는 것, 그래서 아예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미고양이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얼쩡거린 적도 있지만 이즈음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경비아저씨의 전언이었다. 아기고양이 앞에는 밥그릇이 놓여있었는데 여러 주민들이 앞 다퉈 사료를 부어주기 시작한 게 벌써 며칠 째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저 종일 흙바닥에 엎드려 있기만 했다. 스스로 먹을 힘도 없는 것일까. 가만 보니 털에는 윤기가 하나도 없고 꼬리도 꺾여 있었다. 앙상한 뼈대가 드러나는 그 어린 동물의 등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집에 올라왔지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깥에 어둠이 내렸다. 식구들과 함께 다시 마당으로 나가보았다. 아기고양이는 여전히 그대로, 거기 있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거나 도망칠 여력조차 없는 상태. 사료를 잘게 부순 후 물에 적셨다. 티스푼으로 조금씩 떠주자 고양이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벌렸다. 남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여기 두면 못 살겠다.
무엇이 맞는지 깊게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아기고양이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인간의 품에 안겼다. 그때 처음으로 내 눈과 그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감정이 없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박정은, 『내 고양이 박먼지』  중에서

 

동물병원에서 측정한 아기고양이의 체중은 600그램이었다. 구강 상태로 보아 생후 2-3개월 쯤 되었을 거라는 수의사의 소견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태어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싶은, 작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기본검진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만 영양부족 상태가 심각하니 접종을 시작하려면 체중을 늘려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질문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돌볼 거예요. 저희가.

 

말하는 동안 확신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약속을 하는 기분이었다. 당장 필요하다는 몇 가지 물품들, 화장실과 모래, 키튼용 사료 등을 사서 돌아왔다. 아기고양이는 조심스레 쓰다듬는 사람의 손길이 싫지 않은 듯 했다. 아이들이 어느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라라고 토마토. 줄여서 마토. 집안에 들어온 마토는 비로소 제 힘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려움증이 나를 덮친 건 바로 그 밤이었다. 머리꼭대기부터였다. 걷잡을 수 없이, 홧홧하고 날카롭게 피부 표면 위를 번져 가던 그 느낌을 글로 온전히 표현하기는 힘들다.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 전체에 찬물을 퍼부었다. 약통에 하나 남은 항히스타민제를 입에 털어넣었다. 가려움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약을 열흘 째 먹었을 때 마토를 입양하고 싶다는 좋은 분이 나타났다. 지인이 회사 인트라넷에 마토의 사진을 올려준 덕분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들 했다. 세상에 ‘묘연’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마토와 우리 식구와 새로 데려갈 분 사이의 인연에 대해, 투명하게 이어진 그 실에 대해 생각했다. 고양이가 떠나기 전날 밤, 아이들은 엉엉 울면서 편지를 썼다. 입양하실 분께 드릴 거라고 했다. 머리통을 쉴 새 없이 벅벅 긁어대면서 나는 모두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떠나는 날 아침엔 다시 마토의 체중을 재보았다. 1200그램. 그새 딱 두 배가 늘어있었다. 하나의 존재가 머물다가 떠난 자리는 휑하고 쓸쓸했다. 그 사이 여기 아기고양이가 살다 갔다는 사실이 꿈인 것만 같았다.

 

삶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 를 주문했다. ‘고양이작가’ 이용한 님과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함께 쓴 책이다. ‘길고양이를 돌보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한 권’이라는 문구가 눈에 박힌다. 돌볼 거예요,라고 했던 내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공존을 위한 길고양이 안내서이용한, 한국고양이보호협회 저 | 북폴리오
길고양이를 위해 길 위에서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초보 캣맘들에게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마음을 다독이게 해 줄 현실적인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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