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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일상에 스민 역사를 노래하다

장률 감독이 11번째 영화에서 주목한 곳은 ‘군산’

장률 감독은 공간을 거쳐 시간을 거슬러 올라, 즉 윤영과 송현의 현재 상황을 전반부의 군산에 배치하고 하루 이틀 전 서울에서의 사연을 후반에 밝히는 것처럼 일상에 스민 역사의 흔적을 좇는다. (2018. 11. 08)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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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산>의 한 장면

 

 

장률 감독의 작품은 관객에게 대중 영화와는 다른 독해를 요구한다. 사건 위주로 서술한다기보다 인상, 즉 특정 공간이 감독 개인에게 주는 정서와 분위기를 해독하여 제시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경주>(2014)를 비롯하여 <두만강>(2009) <이리>(2008) <중경>(2007) 등 장률 감독의 영화 제목에는 유독 지명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장률 감독의 영화를 더 잘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힌트다.

 

장률 감독이 11번째 영화에서 주목한 곳은 ‘군산’이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에서 관객을 군산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는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다. 둘은 커플처럼 보여도 관계가 애매하다. 윤영은 얼마 전 남편과 이혼했다. 송현은 윤영이 ‘돌싱’이 된 게 내심 기쁘다. 그런데 둘이 왜, 어떤 연유로 군산으로 여행 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들은 그 전날 술을 잔뜩 마셨는지 해장을 할 목적으로 들어간 식당에서 일본풍의 민박집을 소개받는다. 그런데 이 민박집은 손님을 가려서 받는단다. 사연이 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사장(정진영)의 딸 주은(박소담)이 자폐증이 걸려서다.

 

요약한 이 부분은 <군산>의 전반부를 이루는 내용이다. 영화의 반이 지난 후에야 이례적으로 제목이 스크린 위에 뜨는데 꼭 시간과 공간을 반환점 도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제야 윤영과 송현이 어떻게 만나 군산에 내려가게 됐는지 사연을 펼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서울의 공간에서 이 둘의 관계와 관련한 역사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군산이라는 곳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살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 영화의 보도자료에서 군산에 관해 서술한 문장을 가져오면, ‘일본식의 옛 가옥들과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마을 등 1930년대의 역사가 멈추어 버린 듯한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도시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 한국 안의 일본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여기에 중국도 포함할 수 있을 듯하다. 근거는 윤영이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윤영 어머니의 고향은 군산이다. 어머니는 윤영을 ‘영아’라고 불렀다. 군산에 함께 여행 온 송현도 종종 윤영을 영아라고 부른다. 영아는 또한 한문으로 쓰면 ‘?鵝’,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뜻의 중국 고시다. 뒤늦게 영화의 제목이 소개된 후 군산으로 오기 전 윤영과 송현의 사연 중에는 중국집에서 술에 잔뜩 취한 윤영이 뜬금없이 영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유년 시절 화교 학교에 다닌 덕이다.

 

윤영과 송현의 안내로 떠나는 군산의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가면 관객은 우리 일상에서 혼재한 한중일 삼국의 정체성을 여러 장면에서 목격한다. 위에 언급한 것들 말고도 특히 후반부에 이런 묘사가 집중되어 있다. 윤영은 연변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의 시위 현장을 지나다가 연변 출신이 맞느냐며 시비를 건다. 그런가 하면 윤영은 자신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역시 연변 출신 순이(김희정)의 이름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가 윤동주 시인의 증조부 사촌이란 사실을 알고는 대단한 사람을 몰라봤다는 양 방정맞게 야단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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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산>의 한 장면

 

 

실제 윤영이란 인물은 첫 등장 때와 다르게 그리 신뢰할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시인이라고는 해도 아직 제대로 된 시를 쓰지는 않은 전직 시인일 뿐이고 군산에 함께 간 송현이 사진으로 일상의 순간을 시로 포착하는 민박집 이사장에게 마음을 드러내자 노골적으로 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송현이 윤영보다 나은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군산에서 조선족으로 오해받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서울에서는 이혼한 남편이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가 함께 일하는 여자 친구(정은채)에게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는 등의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인물들의 연애담을 전반부 군산에 배치하고 그들이 재회하기 전후 각자의 사정을 후반부 서울에 배치한 이 영화의 형식은 그대로 공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가 하면 한편으로 혼재한 한국의 상황을 담아낸 이 작품의 백미다. 장률 감독은 <군산>의 여러 인터뷰에서 군산을 방문해 받은 인상에 관해 ‘부드러운 도시’라는 표현을 썼다. 공간은 거기에 속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윤영과 송현과 거기서 인연을 맺는 이사장 부녀의 관계까지, 이들의 사연은 온화하고 순한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와 다르게 서울은 정신없고 복잡하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사람들 또한 날이 서 있다는 느낌이다. 앞서 윤영과 송현의 인상을 표현하길 신뢰할 인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인물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간에 영향받은 인물의 또 다른 면모가 발현됐다고 수정해야 할 듯하다. 공간과 인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공간은 시간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그 관계를 흔히 역사라고 한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우연으로 맞닥뜨린 혼재한 관계이기도 하다. <군산>은 바로 그런 관계를 담은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공간을 거쳐 시간을 거슬러 올라, 즉 윤영과 송현의 현재 상황을 전반부의 군산에 배치하고 하루 이틀 전 서울에서의 사연을 후반에 밝히는 것처럼 일상에 스민 역사의 흔적을 좇는다. 이 과정을 흡사 윤영이 쓰지 못한 시의 방식으로 완성하는 장률 감독에게 삶이란 우연이다. 장률 감독이 군산을 찾게 된 것도, 군산을 찾아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것도 우연이다. <군산>에는 우연과 관련해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윤영과 오랜만에 만나 중국집에서 술자리를 갖던 송현은 1930년대에 만주에 가셨던 할아버지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조선족이었을 거라면서 “이게 다 우연이야, 우연”이라고 말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장률 감독이 확인하는 바, 역사란 삶이 시공간과 우연으로 만나 쌓은 결과라는 것. 장률 감독의 다음 작품은 <후쿠오카>다. 그는 여기서 또 어떤 인물과 일상으로 역사를 담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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