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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랑의 순간들, 별무리 낭독공연

닉 페인, 『별무리』 출간 기념 낭독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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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멀티버스에선, 우리가 했던, 그리고 하지 않았던 모든 선택, 그 모든 결정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숫자의 평행우주들에 존재하게 돼요. (2019.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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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대안공간 루프에서  『별무리』  낭독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현대 희곡의 신예로 떠오른 닉 페인의 희곡 작품  『별무리』 의 출간을 기념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름다운 가상을 만들어내는 활자 극장’을 표상하는 알마의 희곡 시리즈 ‘GD(Graphic Dionysus)'에서는 첫 시리즈 작품으로 닉 페인의  『별무리』 와  『인코그니토』 를 선정했다. 닉 페인은 영국 3대 연극상 중 하나인 ‘이브닝 스탠다드 최고 연극상’을 최연소로 수상하고, 극작가 핀터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헤롤드 핀터 상’을 받은 영국의 주목받는 극작가다.

 

그가 2012년 발표한 연극  『별무리』 는 양봉업자인 롤란드와 물리학자 마리안의 사랑이야기로, ‘우리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우주는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평행우주론이 극의 중심을 관통한다. 

 

 

별무리 낭독공연 4.jpg

 

 

우리의 우주는 어디쯤일까

 

왜 우주에 목적이 있어야 하나? 우주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인간 정신의 발명을 낳았지만, 학문적 추구와 이를 추구하는 학자들의 심리학을 조명한다는 점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인간적인 태도와 질문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엔, 우리의 위풍당당한 우주가 그냥 거기 떠 있다는 것, 완전히 아무 목적 없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상당한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다.
- 피터 앳킨스, 『존재에 대하여』

 

첫 장에 쓰인 ‘피터 앳킨스’ 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공연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기존의 연극과 달리, 두 배우가 자리에 앉아 희곡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희곡의 내용을 귀로 듣는 경험은 관객에서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선사했다. 무대 장치가 최소화되고, 두 사람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은 절로 극대화된다. 자리를 메운 이들에게 이번 연극이 각기 다른 풍경으로 기억될 것임이 자명했다.


『별무리』 는 한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배신하고, 다시 돌아오고, 헤어지고, 낯선 타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얼핏 익숙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지만 평행우주론으로 이를 풀어낸 닉 페인의 재치에 마치 처음 보는 색다른 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극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펼쳐진다. 

 

("~~~~~~"은 다른 우주를 뜻한다.)

~~~~~~
M 팔꿈치를 핥는 게 어째서 불가능한 줄 알아요? 팔꿈치 끝에 불멸의 비밀이 담겨 있거든요. 만약 당신이 팔꿈치를 핥을 수 있다면 당신은 영원히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모두가 자신의 팔꿈치를 핥을 수 있다면, 보나마나 카오스 상태가 되겠죠. 그냥 계속 살고 또 살고 또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R 나는 그래요. 연애중이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별무리』  15쪽

 

~~~~~~
M 해봐요.
R 뭘요?
M 당신 팔꿈치요, 핥아봐요.

마리안, 팔꿈치를 핥으려고 해본다. 만만치 않다. 롤란드, 처음엔 망설이다 자신의 팔꿈치를 핥으려고 해본다.

R 당신이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알겠어요. 난 롤란드예요.
M 마리안.
R 비가 오다니 정말 질색인데요.
M 눅눅한 바비큐도 정말 질색이에요.
R 어, 당신도, 당신도 제인 친구인가요, 아니면…
M 아뇨, 제인, 그래요. 제인과 난 같은 대학을 다녔어요.
R 그렇군요.
M 당신은?
R 아내가 제인과 같은 직장에 다녀요. 
-  『별무리』  19쪽

 

 

별무리 낭독공연 8.jpg

 

 

삶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결과도 달라진다. 막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 롤란드와 마리안은 수많은 감정과 망설임 사이에서 때로는 같은 말을 주고받기도, 조금씩 다른 말을 내뱉기도 한다. 각각의 자리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는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 된다.

 

~~~~~~
M 앞이 편한 바지 입었네. 난 퇴근하고 곧장 왔거든. 지난주에 집에 들어가는데
   가랑이가 씨발 용광로 같았어.

짧은 사이.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찜찜할 거 같아 얘기해야겠어.

R 마리...
M 한잔하러 가. 아무튼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딱 한 잔만.
   그리고 다시는 날 보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보지 않아도 돼. 
- 『별무리』  80쪽

 

~~~~~~
R 마리...
M 한잔하러 가는 거 어때? 아무튼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딱 한 잔만.
그리고 다시는 날 보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보지 않아도 돼. 
-   『별무리』  81쪽

 

~~~~~~
R 마리...
M 딱 한 잔만. 그리고 다시는 날 보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보지 않아도 돼.
-   『별무리』  82쪽

 

닉 페인은 아버지와 사별하며 겪은 이별의 아픔과 ‘브라이언 그린’의 3부작 다큐멘터리 <우아한 우주>에서  『별무리』 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별무리』 를 통해 관객이 만나는 다양한 우주는 각기 다른 선택의 결과이자 사랑의 모든 순간들이다.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 사랑했던 날들, 저질러버린 실수, 내뱉지 말았어야 하는 말, 후회가 될 머뭇거림 등 우리가 사랑하며 겪는 수많은 일들은 모두 우연의 선택이 쌓여 이뤄진 것이다. 개연성을 가진 수많은 우연을 포착해 한 편의 극으로 완성해 낸 닉 페인의 『별무리』 는 낭독이 끝나고 난 뒤 더욱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알마의 희곡 시리즈 ‘GD(Graphic Dionysus)'닉 페인의  『별무리』 와  『인코그니토』 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별무리닉 페인 저/구현성 그림/성수정 역 | 알마
사랑하며 저지른 실수, 돌이키고 싶은 어떤 순간들을 닉 페인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단숨에 돌려놓는다.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을 하는 수많은 이들이 품은 단 하나의 염원을 포착하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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