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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랑이 현실로 소환될 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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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비밀이 새어나가는 일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비밀을 이용하는 세상의 부류가 있다는 것. 그게 가족이라면 손쓸 방법이 참 없다. (2019.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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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모든 것이 좋았다.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 여동생 ‘아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우아한 ‘라우라’의 귀향은 들뜬 분위기에 유쾌하고 쾌활했다. 결혼하여 아르헨티나에 살던 라우라는 숙녀가 된 딸과 어린 아들만을 데리고 집안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작은 마을이니 모두 가족 같은 느낌. 도중에 만난 이들도 반겨주었고 늙은 아버지, 집안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세 자매 중 큰언니 ‘마리아나’까지 따뜻하고 감동적인 포옹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고, 한때 연인이었던 ‘파코’를 만나고부터는 표정이 한결 더 밝아졌다.
 
아나의 결혼식은 은총 어린 성당에서, 피로연은 그야말로 축하의 말과 기쁨의 춤으로 마을 축제처럼 펼쳐진다. 과거 지주 집안의 딸 결혼식은 완벽한 듯 보였다. 모두 환호하며 춤추던 중간에 정전이 되어버렸지만 하객들은 개의치 않고 파티 분위기를 즐겼다.
 
이 정전은 라우라의 딸 이레네를 납치한 범인들이 전선을 끊은 것으로 나중에야 밝혀진다. 왜 이레네일까. 파티에서 술 한 잔에 취한 이레네의 옆에는 어린 남동생 ‘디에고’도 잠들어 있었는데. 돈을 요구하려면 이레네보다 몸집 작은 디에고가 더 쉬웠을 텐데 말이다.
 
이란 중상류층의 가족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 수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가족’ 이야기 <누구나 아는 비밀>은 미스터리한 납치 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사건 뒤에 숨겨진 사랑의 상처와 업보를 일깨우는 한 편의 뛰어난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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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각본과 연출은 나라와 인물 개인을 떠나서 세계인 모두 공감할 가족을 언어화했고 영상화했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서사 구조와 그물망처럼 얽힌 치밀한 표현 방식으로 관객이 쉴 새 없이 추리하게 만든다. 게다가 <누구나 아는 비밀>의 출연 배우는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다. 실제 부부이기도 한 배우들의 명연기는 몰입도를 높인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감독의 뛰어난 각본과 연출력에 열연, 가족이라는 소재, 미스터리한 전개로 올여름 가장 흥미롭고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었다.
 
은퇴한 경찰의 조언으로 대략 면식범 가능성이 높아지자, 가족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들쑤신다. 화기애애했던 초반 분위기는 반전을 거듭한다. 돈 많은 남자로 알려진 라우라의 남편은 사실 파산한 실직자이고, 그래서 딸의 납치범에게 돈 한 푼 줄 수 없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레네의 친부는 파코라는 것. 정작 파코만이 몰랐던 이 사실이 납치 사건의 핵심이다. 소작농의 아들로서 지주의 딸인 라우라에게 실연당한 뒤 헐값에 황무지를 사들이고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와이너리로 만들어낸 파코에겐 아름다운 부인이 있으니 라우라와의 과거는 느닷없이 찾아든 것이다. 이레네의 납치범은 파코의 돈을 노린 것.
 
파코가 농장을 급매해 납치범에게 거액을 주고 이레네를 되찾으며 영화는 끝난다. 라우라는 아픈 이레네를 데리고 서둘러 아르헨티나로 떠나지만, 이제 라우라 가족을 들쑤셨던 문제에 파코 가족 문제까지 끝나지 않는 형국이다. 자, 라우네 대가족 중 범인이 있다. 이레네의 핏줄 문제를 알게 된 파코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 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는 딜레마를 제시하며 가장 친한 타인인 가족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첫 화면, 성당의 시계탑과 파코가 와인에 대해 ‘시간이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묘사하는 장면에서 ‘시간’이라는 화두가 던져진다. 현실을 살지만 과거의 어떤 순간은 현실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순간은 지속적으로 현실로 남는다.
 
누구나 아는 비밀이 있다. 평온한 세상에서는 그 사실이 숨겨지고 무심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일단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비밀의 세목 하나하나는 분해되고 밝혀진다. 그래서 비밀은 언제나 기막힌 전복을 포함한다.
 
조용히 비밀이 새어나가는 일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비밀을 이용하는 세상의 부류가 있다는 것. 그게 가족이라면 손쓸 방법이 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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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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