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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은희경, 자신도 오해할 수 있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0월호 장편 소설 『빛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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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각자 달랐고, 모두가 고유한 삶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2019.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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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은 8번째 장편 소설 『빛의 과거』  를 두고 “너무 오랫동안 썼다”고 말했다. 10년 전 실패하지 않았다면 6번째 장편이 됐을지 모르는 소설.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버리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지만 “과거의 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없다면 현재의 내 삶에 어떤 새로움이 있겠어”라고 자문한 시간이었다.  『빛의 과거』  는 중년이 된 주인공 ‘유경’이 1977년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희진’의 소설을 읽게 되며 시작된다. 서로를 좋아하지도 절친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40년간 친구로 관계 맺은 두 사람. 그들은 같은 시공간을 경험했지만 너무도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소설을 찬찬히 읽고 나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심오보다는 ‘묘’에 가까운 감정인데, 누군가에게 편집 당했을 나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재편했을 나를 돌이키게 된다. 과거, 기억, 오해, 해석, 유기, 회피와 같은 단어들이 은희경의 정확한 문장들로부터 숨어 있었다가 툭툭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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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물에 내가 있는 것 같다

 

‘장편’소설은 7년 만이에요. <문학과 사회>에 2017년에 연재했던 작품인데, 꽤 늦게 나왔어요.


너무 오래 걸렸어요. 연재할 때는 원고가 훨씬 많았는데, 이건 재료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나 문장은 뺐어요. 원래는 ‘유경’의 이야기만 쓰려고 했던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쓰는지, 확신이 안 서는 거예요. 그래서 희진의 이야기를 같이 했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양쪽에 놓으니까, 이 사이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활기가 생기더라고요. 소설을 끝내고 나니까 후련하고 뿌듯하기도 한데, 그동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구나 싶어요.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가제는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였어요. 연재를 준비하면서 지금 제목을 붙였는데요. 빛이라는 게 오래 전에 출발해서 지금 여기에 닿은 거잖아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언가를 생각했죠.

 

작품의 주요 배경이 1970년대 말 한 여자대학교의 기숙사입니다. 당시 사회상이 많이 반영된 작품이지만 세태소설로만 읽히진 않았어요.


세태소설만도 아니고 성장소설만도 아니고 청춘소설만도 아니에요. 어떤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저의 어떤 객관적인 균형이 필요해서 작품이 오래 걸린 게 아닐까도 싶어요.

 

주인공 ‘유경’은 희진의 소설(「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을 통해 미처 몰랐던 자신의 이면을 발견합니다. ‘희진’이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지만, 아마도 독자들은 ‘유경’의 모습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경을 비롯한 인물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우선 ‘유경’은 머릿속에 쉽게 찾아왔어요. 다른 인물을 만들면서는 어떤 캐릭터를 구현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이야기 안에서 역할을 해낼 인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부딪히는 인물, 계급적인 편견에 부딪히는 인물, 연애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휘둘리는 인물 등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에 의도 안에서 인물을 만들어갔죠. 또 제가 실제로 기숙사 생활을 했잖아요. 당시에 만났던 떠오르는 사람들을 쭉 그리고, 지금 제가 아는 인물을 섞어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어, 내 이야기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어요.


평소 제가 새 소설을 쓰면, 친구들이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냐?”고 물어와요. 그런데 오늘 친구 한 명이 『빛의 과거』  를 읽었다면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예전에는 그냥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이제는 모든 인물에 내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제 안에 있는 유경, 희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두 주인공 외에 특히 애착을 가졌던 인물이 있나요?


‘오현수’에게 마음이 좀 가요. 1977년도는 아직 개인이 존중 받지 못한 때잖아요. 하지만 그 시기에도 어떤 부류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스스로를 자각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는 걸 ‘오현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현수는 1990년대식으로 말하면 쿨한 인물이에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생각하고, 경쟁 대열에 끼지 않고 자기 나름의 취향을 갖고 자기 인생을 개인화하는 캐릭터. 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은 아닐지라도 개인 취향이랄지, 사적인 존재랄지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 여성 악역은 없어야 했다”고 생각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악역을 잘 안 그려요. 왜냐면 한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선과 악 안에서 갈등하면서 조금 더 좋은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게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에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극적인 장면이 없어서 이야기가 좀 심심해요. 하지만 저는 이게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특히  『빛의 과거』  는 여러 가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약자로서의 여성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이런 존재를 악역으로 만드는 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모든 약자가 선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1970년대 후반의 희진 같은 인물도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 시대적인 요건에서 자신의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악역으로 만들 순 없었어요.

 

유경은 희진에 비하면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자신의 뚜렷한 생각이 있지만, 타인에게 맞추는 편이죠.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캐릭터인데요. 왜 유경은 성인이 돼서도 희진에게 끌려갔을까요? 굳이 그래야 할 상황이 아닌데 말이죠.


비슷한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유경의 행동이 굉장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까칠한 마음이 있지만 권력 구조에 약한 사람. 나이브하다고 할까요? 회피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자신이 뭔가 바른 것을 구현하기에는 힘이 달리니까 한 발자국 물러서 버리는 인물.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개연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유경이 희진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희진이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것에 유경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느꼈던 거죠. 유경이 피하고자 했던 것들이 결국 희진으로부터 파장이 일었고 유경은 그걸 지켜보게 된 거예요.

 

희진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저의 주변 인물을 발견하게 됐어요. 희진은 ‘남과 비교해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멀어졌지만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했던 친구가 떠올랐는데요. 희진의 서사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묘사가 유독 많이 등장해요.


제가 희진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건, 희진도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소설 후반부에 희진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잖아요. 희진은 약자, 피해자로서의 당위적인 도덕성을 갖고, 세상의 권력, 부조리에 비판적인 사람인데 사실은 그녀도 권력을 갖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그 권력 안에 있는 사람이고 싶은 거죠. 저는 주변에서 이런 희진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봐요. 물론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습이죠. 스스로는 정의를 외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권력에 대한 의지였던 여러 행동들. 부조리한 것을 비판한 게 아니라 사실은 권력을 갖고 싶었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학생운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최성옥, 연애를 좋아하는 미워할 수 없는 양애란, 어딘지 슬퍼 보이는 송선미, 교회 오빠만 많은 곽주아, 호기심은 많지만 눈치는 없는 이재숙 등. 유경이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는 재미도 특별합니다. 꼭 이들이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대생은 아닐지라도요. 세월이 지난 지금, 대학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냥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어요. 그 시기의 대학생들을 유형화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면서 우리들의 삶이 각자 달랐고, 모두가 고유한 삶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현재도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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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자꾸 나쁜 인간이 돼요

 

“작가란 모든 감각을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생애가 근무기간으로 느껴지지만. 덕분에 일상 속에서 많은 소재를 포착할 수 있다.”(15쪽) 이 문장을 읽으며 소설가 은희경의 일상을 떠올려 봤어요.  『빛의 과거』  의 전작이 2016년에 나온 단편소설집  『중국식 룰렛』  이니까 3년간 책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소설가의 시간이 늦게 흘렀을까. 그건 아닐 것 같아요.


희진의 그 장면은 저의 작가적인 모습이죠. 어디에서 소재를 만날지 모르니까, 어떤 것에 꽂히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가로 살고 있는 시간이 더 클지도 몰라요. 자연인으로 사는 것보다.

 

112쪽 나오는 문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라는 문장을 읽으니, 어떤 위로도 들더군요.

 

최근에 인권의식이 많이 좋아졌잖아요. 자연스럽게 장애나 우울증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냥 다른 조건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왜 자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려고 하는지, 왜 그냥 다른 것을 두고 위아래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누군가의 조건을 편견으로 바라볼 때, 화가 나요. 일상에서 자주 분노하죠. 좀 다른 예지만, 제가 이번에 책을 내면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어요. 저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개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 골랐죠. 하지만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고,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왜냐면 저는 제 사진을 볼 때, 저의 약점만 봐요.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커버가 잘 됐냐만 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이 사진을 보고 호의를 가질지 판단할 수가 없어요. 즉 남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만 스스로의 약점에 되게 예민하잖아요.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희진에게 “그까짓 걸 갖고 약점이라고 하냐”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또 하나의 문장을 언급하고 싶어요. 소설가 희진이 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죠. “회피야말로 가장 비겁한 악이다. 애매함과 유보와 방관은 전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친다. 게다가 그녀는 적에게조차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다. 모두에게 맞춰주면서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이다.”(171쪽)


이것도 우리 사회의 산물이에요. 선택을 강요 받는 사회에서 애매하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많죠. 왜 여성에게는 적당한 ‘내숭’이 강요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자기 의견을 확실히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도 많고. 자기 의견을 확실히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좋은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요. 언젠가 제가 해외 여행을 갔는데 “이거 하실래요? 저거 하실래요?”라는 물음에 “전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순간 ‘아, 내가 애매하게 말해서 전세계에 폐를 끼쳤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문장이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괴로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구에게 비난 받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고. 저를 비롯해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문장이에요.

 

작가님은 후회하는 일이 있나요?


글쎄요. 일상적인 후회는 많겠지만 큰 후회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저라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저는 좀 성실한 편이고, 나도 존중 받고 싶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그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요. 그냥 더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할까요. ‘더 좋은 인간’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을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자꾸 나쁜 인간이 돼요. 그래서 나를 경계하면서 나쁘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나쁘지 않은 인간이 되려면, 스스로를 계속 성찰해야 할 텐데요. 그러려면 내 과거를 해석하는 일도 필요할 것 같아요.


필수는 아니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죠. 우리는 남도 오해하지만, 나도 오해하거든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요. “나는 누구로 알고 살아가는 걸까?” 이 소설에서 희진이 한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필해준 적이 있잖아요. 개인의 출세 욕망을 좇아 성공한 정치인을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한 것으로 묘사하죠. 희진도 어떻게 보면 그 정치인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준 걸 수도 있어요. 회피라는 선택을 통해서요.

 

출간 후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정확하고 건조한 문장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셨어요. 요즘 젊은 독자들은 직설적이고 읽기 쉽게 쓰여진 문장을 선호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문장을 두고 고민한 부분도 있었는지 묻고 싶어요.


그런 고민은 없어요. 제 리듬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건 만연체로 쓰고 싶고, 어떤 건 간결하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각각의 작품에 맞는 문장의 리듬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물론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도 의식하죠. 발표하는 글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학적 장치도 중요해요. 의식은 하지만 제 리듬 안에서의 의식이에요. 지금의 트렌드는 사라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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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어야 성실할 수도 있어요

 

요즘 인기가 많은 소설은 ‘동네서점 에디션’이 따로 제작됩니다.  『빛의 과거』 도 두 가지 표지를 입고 세상에 나왔어요.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사는 독자도 꽤 많더라고요.


2년 전에 일산의 한 동네서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낭독회를 했어요. 13번을 했으니까 1년을 조금 넘겼죠. 제 단편소설 한 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는데요. 꾸준히 와주시는 분이 계셨고 제게도 무척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책이라는 건 단순히 기능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성이라는 것도 있고. 어떤 관계라고 할까요? 컴퓨터 파일 속에서만 존재하는 책은 상상할 수 없어요. 동네서점이 많이 생긴다는 건, 작가로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에요.

 

소설을 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작할 때는 언제나 고통스럽고요. 마감했을 때 행복하죠. 가장 설레는 순간은 초고를 끝냈을 때예요. 이 소설을 어떤 모양으로 빚을까, 상상하는 순간이 좋죠.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여겨져요. 술 마실 자격도 있는 것 같고 조금 놀아도 될 것 같고, 그렇죠. (웃음)

 

『빛의 과거』  가 출간 3주만에 8쇄를 찍었어요. 은희경의 신작을 기다린 독자들이 참 많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책의 저자가 되는 일에 의욕을 잃은 것이 더 큰 실패였다”(341쪽)고 쓰셨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슬럼프라기보다는 책이 팔리고 독자를 만나는 일에 대해 조금 의기소침했었어요. 과연 내가 소설을 냈을 때 누가 관심이라도 가질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어요. 그러다가도 독자들이 “장편 소설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면 용기를 얻기도 했고요. 출판사에서 이런 소식을 전해준 날이면 오늘은 좀 더 써봐야지, 그렇게 용기를 얻었어요.

 

좀 놀라운데요. 은희경 작가님이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사실이.


전반적으로 사회가 책을 많이 안 보잖아요. 책을 보긴 해도 그것이 내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정보가 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눈총을 줘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자격증 시험, 취업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생존 조건이 중요한 거니까요. 다만 좀 낙심했었어요. 이런 상황이 싫다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하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 낙백한 기분이었어요. 이랬던 마음에 비하면 지금 저는 열심히 하고 있죠. (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며 독자 리뷰를 찾아봤는데 “은희경의 신작이라서 무조건 샀다”는 글이 많더라고요. 1995년 등단 후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성실함 때문일까요?

 

운이 좋은 거죠. 작가에게 지면이 없으면 독자를 만날 수 없잖아요.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어주지 않으면 지면이 생길 수 없고요. 저는 그래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성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까요. 누군들 성실하고 싶지 않겠어요. 기회가 있어야 성실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후속작은 몸에 관한 이야기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몸에 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몸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다가 결국 쇠락하는지. 죽음에 이르는 건 시간의 역정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몸과 인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 쓰진 않았고요. 이제 슬슬 시작해야죠.

 

아직  『빛의 과거』  를 읽지 않은 독자들도 이 인터뷰를 읽을 거예요. 이 소설을 어떤 마음으로 펼치면 좋을까요?


섬세한 마음으로 읽어주면 좋겠어요. 타인에 대해서도 너무 유형화해서 생각하지 말고요. 물론 자신에 관해서도요. 일상에서 섬세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은희경


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장편 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문학동네소설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빛의 과거은희경 저 | 문학과지성사
무엇보다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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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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