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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소설가와 강연

<월간 채널예스> 2020년 2월호

하지만 무료, 공개 강연에서는 무례한 청중이 있을 가능성도 각오해야 한다. 질의응답 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일장연설을 하는 정도면 귀엽다. (2020. 02. 03)

장강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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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_ 이내

 


지난해 낸 연작소설집 『산 자들』 에 「음악의 가격」이라는 단편을 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지푸라기 개’라는 예명을 쓰는 인디 뮤지션이다. 그는 지방 도서관에서 열리는 강연회에 노래를 부르러 갔다가 대기실에서 ‘장강명’이라는 이름의 소설가를 만난다.


지푸라기 개는 장강명에게 자신의 주 수입이 이런 행사와 레슨, 아르바이트라고 설명한다. 음악 시장이 스트리밍 서비스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음원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소설 캐릭터 장강명도 이 작품 속에서 곤혹스러워 하는 중이다. 2시간짜리 강연료가 2주 동안 끙끙대며 쓰는 중인 단편소설 고료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노래를 만들고 글을 써야 하는가?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자 몇몇 젊은 작가들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표정으로 “저도 주 수입이 글이 아니라 강연이에요” 하고 고백해왔다. 에…… 뭐 새삼스럽게……. 이미 기획사에 소속된 소설가들도 있고, 유명 작가의 강연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은 출판사도 있고, 강연 자회사를 차린 출판사도 있다. 나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강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운전 잘하는 똘똘한 동생 하나만 있으면 된다나.


문학출판 시장이 날로 옹색해지는 반면 강연 시장은 성장하는 가운데 빚어진 풍경이다. 지자체나 도서관 행사가 몰리는 봄가을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KTX를 탄다. 강연 수입도 중요한 이유고, 출판사에서 홍보가 된다며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행사도 있고, 지인의 부탁을 거절 못해 응한 경우도 있다. 기차 안에서 강연 원고를 중얼중얼 읊다가 ‘내가 지금 소설은 안 쓰고 뭐 하는 짓이람’ 하고 가벼운 자괴감에 잠긴다.

 

사실 소설가가 강연에 나서는 건 한국만의 일도 아니고, 역사도 퍽 오래 됐다. 찰스 디킨스도 유료 강연을 그렇게 많이 다녔다고 하니까. 디킨스의 강연은 인기가 높아서 암표가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메러디스 매런이 엮은 『잘 쓰려고 하지 마라』는 지금 한창 활동하는 미국 문인 20명의 에세이 모음집인데, 강연과 북 투어에 대한 푸념이 중간에 툭툭 튀어나온다. 『퍼펙트 스톰』을 쓴 세바스찬 융거는 자신처럼 사람들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이 어쩌다 대중 강연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한다.


나도 세바스찬 융거처럼 쭈뼛쭈뼛 강연업계에 들어왔다. 그래도 청중에게 입장료를 받는 유료 강연만큼은 아직 거부감이 들어 피한다. 유료 강연이 뭐가 문제냐, 판매자와 구매자가 합의한 거래 아니냐고 묻는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냥 나의 결벽인가 보다. 악몽까지 꿨다. 유료 강연을 막 마친 내게 어떤 젊은이가 와서 “작가님 만나고 싶어서 입장권을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라고 말하는 꿈이었다. 이게 왜 악몽인지는 아내도 이해하지 못한다.


유료 강연 행사를 여는 서점이나 북클럽에서는 입장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입장료를 미리 받지 않으면 ‘노쇼’가 그렇게 많이 발생한단다. 또 차나 음료수를 제공하니까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라고 한다. 다 일리 있는 얘기고 책 홍보에도 도움이 될 테니 행사에는 참여하지만 강연료는 전액 기부한다. 『산 자들』 을 내고서는 유료 강연을 두 번 했는데, 그때의 강연료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 119’에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유료 강연이 분위기가 가장 좋고 화기애애하다. 기꺼이 입장료를 내고 멀리서 온 애독자들이 모인 자리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다들 내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궁금한 것을 적극적으로 질문해주신다. 그런 강연을 마치고 집에 갈 때에는 감사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할 말이 한 보따리인 강연료 협상 이야기는 다음회로 미루고, 이번 회에서는 강연장 풍경만 전해볼까? 유료 강연의 정반대 지점에 대학 채플이나 기업체 강연이 있다. 청중 수는 많지만 연사가 하는 말에 아무 관심도 없고, 다들 무료하게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린다. 그게 마음 아프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내가 학생이거나 회사원이었을 때 그런 강연을 어떤 태도로 들었는지 떠올려보면 불평할 자격도 없다. 그래서 “피곤하신 분은 눈 감고 쉬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준비한 자료를 읽는다.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일러스트_ 이내.jpg

 


지방의 작은 도서관 강연은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나의 독자라기보다는 그 도서관의 단골인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데, 강연도 열심히 듣고 질문도 화끈하게 하신다. “작가님은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대학 국문과나 문예창작학과에서의 특강도 보람 있다. 학생들의 절박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준 것 같을 때 가슴이 뿌듯하다.


하지만 무료, 공개 강연에서는 무례한 청중이 있을 가능성도 각오해야 한다. 질의응답 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일장연설을 하는 정도면 귀엽다. 유명 소설가 A가 한 대형서점에서 강연했을 때 한 관객이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더니 “난 당신 작품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 A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나는 소설가 B의 강연회에서 한 참석자가 한국 문단의 모든 잘못을 B에게 따지는 모습을 봤다. 내게는 다른 곳에서 “동아일보에 다닌 걸 사과할 생각 없느냐”고 질문한 분이 계셨다. 그런 말을 하러 강연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분위기가 훈훈했건 흉흉했건 강연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나는 세바스찬 융거보다 더한 새가슴이라 강연을 마치고도 몇 시간이나 심장이 쿵쾅거려 밤에 잠을 못 이룬다. 어느 날 퀭한 몰골로 돌아온 나를 보고 아내가 전국을 누비는 약장수 같다며 짠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강연이 좋아졌다. 그런 길 위의 삶을 오래도록 남몰래 존경하고 또 동경했기에. 약장수, 각설이, 풍물패, 서커스단, 엿장수, 두부장수, 칼갈이, 거기에 소설가도 추가요.

 

 

 

 

 


 

 

산 자들장강명 저 | 민음사
수록된 10편의 이야기들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익숙하게 발생하는 일화를 발췌해 거대하고 흐릿한 적의 실체를 또렷하게 보여 준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 현실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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