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는, 우리는 살아간다, 기어코

『50 SO WHAT?』 편집후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하나의 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가장 심원한 끝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서사가 담긴 책을 읽는 것인지 모른다. (2020.05.27)


“저는 ‘어쩌다’ 싫습니다. 이제껏 ‘어쩌다’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는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살아남았다’라는 목차가 어떤지 논의하던 때였다. 그의 원고를 거듭 읽는 동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쉰이 된 오늘까지, 그의 삶은 우연과 요행이 아닌 필연이고, 당위였다. 쉰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고, 살아야 할 삶을 살았다. 

처음 노중일 작가의 글을 접한 것은 1월 말,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이었다. 메일로 보내온 글은 자신을 고백하는 데, 사회를 냉정히 바라보고 분석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투철함. 칼 같은 글이었다. 그리고 그는 칼끝에 베이고 다치더라도 끝내 쓰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노중일 작가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기자, 노조위원장, 정치인 참모를 거쳐 학생이자, 경영인으로 살고 있는 그다. 그에게 삶은 뼈아픈 고통의 시간이었고, 그럼에도 꿈꾸고 싶은 내일이었다. 기술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언제나 퇴근 후에는 연구실로 직행해서 종합 시험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를 만나러 서강대 근처로 향했다. 

실제로 만난 그의 얼굴은 글을 읽으며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깊은 주름과 날카로운 표정 대신, 어딘가 아이 같은 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목차를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기어코, 그래요. 기어코가 좋겠군요.”

하나의 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자신의 가장 심원한 끝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서사가 담긴 책을 읽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찬란한 페이지와 고통스러운 페이지를 차례로 만나기 위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끝내 다음 페이지를 써내려가기 위해.

3월, 종전의 목차는 수정되었다. ‘기어코 살아남았습니다.’ 그야말로 그에게 어울리는 목차가 아닐 수 없었다. 기어코 죽지 않고 겨울을 버텨낸 봄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던, 이른 봄의 기억이다.



50 SO WHAT?
50 SO WHAT?
노중일 저
젤리판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다혜(젤리판다 출판사)

50 SO WHAT?

<노중일> 저14,220원(10% + 5%)

인생의 중턱. 다가오는 위기 앞에 선 당신과, 동년배 친구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묵직한 건투의 말들 “자신을 믿고, 시련에 무릎 꿇지 말기를.” 1971년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아이들이 태어난 해다. 무려 102만 명. 그들은 시대의 질곡을 고스란히 겪었다. X세대. 첫 해외여행 자유화 세대인 동시..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