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독립출판, 어쩌면 연애

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5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책을 입고하는 것이 연애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나의 코어를 담은 책이 타인의 코어에 받아들여지다니. (2020.07.21)

일러스트_응켱

나는 현재 출판사와 함께 협업하면서, 꼭 내 멋대로 만들고 싶은 책이 생기면 독립출판 레이블 <아말페>를 통해 출간하고 있다. 『오늘 헤어졌다』를 시작으로 올해 『난 슬플 땐 봉춤을 춰』가 세상에 나왔다. 올해는 타 출판사와 계약된 책이 있어 그 책 집필에 집중하고, 이미 나온 책 판매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 출판사가 있으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모습대로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그 책이 작은 서점이나 독자에게 선택받으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는 연인을 만난 것 같은 희열이 생긴다. 그래서 첫 책이 나왔을 때는 서울부터 제주도 우도까지 직접 배송을 했고, 현재도 내 책을 넣어주는 책방에는 왠지 사랑을 빚진 기분이 든다.

처음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책을 내고 나면 이 책을 꼭 넣고 싶은 서점에 입고 문의를 보낸다. 큰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쏟아지는 책 중에서 어떤 것을 받아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서점 대표의 가치관에 의존한다. 대형서점 평대에 오른 내 책도 뿌듯하지만, 작은 책방 한 켠에 내 책이 놓인 것이 다른 의미로 엄청난 희열인 것은 그래서다. 게다가 그 책이 내 취향대로 만든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책을 입고하는 것이 연애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나의 코어를 담은 책이 타인의 코어에 받아들여지다니. 아말페의 책은 영광스럽게도 두 권 모두 기성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아서 대형 서점 입점 기회가 있었는데도, 고집스럽게 독립출판물로서 독립서점에만 유통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취향이 타인의 꼬장꼬장한 공간에 받아들여진 기쁨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처음 입고 문의를 보낸 서점들은 다 내가 좋아한 곳들이었다. 대표님의 사상이나 그 책방들이 가진 큐레이션이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가 예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작은 책방 속에 꽉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덕후 겸 충무로 ‘스페인 책방’ 덕후인 나는 스페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도 꼭 내 책을 넣고 싶었고 (스페인 책방에는 대형출판사가 출간한 스페인 여행 에세이 『걸어서 환장 속으로』를 포함해 내 책 3권이 입고되어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책방 토닥토닥’은 페미니즘, LGBTQ 이슈, 성 평등 관련 서적을 많이 두고 있어서 꼭 나도 그런 책방 한 켠에 꼭 끼고(?) 싶었으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슈들을 큐레이션해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서점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던 ‘이후북스’에도 꼭 넣고 싶었다. 집 앞에 있는 핫한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도 꼭 놓고 싶었고, 사랑을 말하는 제주 금능 책방 ‘아베끄’, 입도 후에 또 배를 타고 나가 전기스쿠터로 첫 책을 배송한 ‘밤수지맨드라미’도 너무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 공간들을 너무 선망해서 꼭 끼고 싶었고, 내 새끼들을 끼워주셨을 때의 기쁨은 말로 못 한다.

얼마 전 책방에 재입고 주문분을 포장하면서, 고민이 일었다. 작은 책방의 특성상 손님이 떨어뜨릴 수 있고 그러면 상품이 훼손되기 때문에 일일이 비닐포장을 해 보내는데, 이번에 보내는 책방 사장님은 환경을 많이 걱정하는 분이셨다. 고심 끝에 낱개포장 없이 책 여러권을 뽁뽁이로 한 번만 둘러서 보냈다. 택배와 정산메일로만 직접 서로에게 손을 뻗는 사이지만, 책방 SNS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고 물품 포장을 하면서도 개개인을 생각하는 과정이 어찌나 설레는지. 같은 결을 공유하는 사람과 교류하면서 점점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게 연애라면, 독립출판 제작자와 독립서점 사장님이 서로의 내밀한 세계에 자리를 내주고 침투하는 설렘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도, 삐뚤빼뚤 고집스럽게 만들고 택배를 싼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걸어서 환장 속으로

<곽민지> 저13,050원(10% + 5%)

여기 환갑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여행을 떠난 딸이 있다. 아버지의 환갑과 은퇴를 동시에 맞은 가족은 그간 고생하신 엄마와 아빠를 위해 평소 꿈꾸던 스페인 패키지여행을 준비한다. 초대장과 함께 이용약관을 포함한 팸플릿까지 만들어서 완벽하게. 그리고 이 여행 초대장을 받은 엄마는 다음날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런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걸어서 환장 속으로

<곽민지> 저10,200원(0% + 5%)

“지금이 아니면 평생 해볼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 패키지여행만 떠나본 환갑 부모님과 자유여행이 너무나 익숙한 30대 딸의 스페인 ‘현실’여행 요즘 시대엔 너무나 쉽고 익숙해진 해외 자유여행. TV에서는 연일 ‘꽃청춘’들이 여행을 떠나고 SNS에서도 여행을 떠난 이들의 자유로운 사진들이 가득하다. 다녀..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