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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운의 부귀영화] 검색왕의 비애

전고운의 부귀영화 11화

스스로를 검색하다 지쳐 쓰러졌을 때, 쓰러진 상태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하는 일이 알았던 타인들을 찾아보는 일이다.(2020. 07. 30)

전고운(영화감독) 사진이홍민(일러스트)

일러스트_ 이홍민 

나에게는 은밀한 취미가 있다. 가끔 지나간 추억의 사람들을 SNS에서 찾아본다. 초,중,고 동창들을 비롯해서 친했는데 소식 끊긴 지 오랜 친구들, 안 친했는데 생각나는 친구들, 만나다 헤어진 애인들이 어떤 모습인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곤 한다. 물론 유명인이 아닌 이상 이름만으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사실 실력자다. 이게 바둑 세계였다면, 혹은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였다면, 나는 논쟁의 여지없이 프로에다가 유명했을 것이다. 

이런 검색력을 갖게 된 것은 역사가 꽤 된다. 지난 대학 시절, 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금사빠였고, 조금이라도 관심 가는 인간들의 싸이월드를 탈탈 털고 돌아다니며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싸이월드 사용 유무, 배경 음악, 홈피 제목과 프로필, 사진과 일기장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왔다. 그 단계에서 호기심이 사그라들기도 하고, 폭발하기도 하는데 이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결정적인 과정이 되었다. 그렇게 실력이 조금씩 쌓일수록 나의 재능을 알아보는 친구들이 종종 의뢰를 해왔고,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의 전 애인, 전 애인이 헤어지고 나서 만나는 애인의 싸이월드를 관찰 후 캐릭터를 점지해주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시간이 흐르고 싸이월드의 시대가 가고 페이스북의 시대가 왔으며 나도 친구들도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게 되었을 때는 사연도 찾는 방식과 함께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증오하는 사람을 찾아야 될 일이 늘어났고, 단순한 취미가 아닌 단서를 찾기 위한 검색일 때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침체하던 검색력이 다시 한번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의 영화 개봉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이후, 온갖 사이트를 뒤져가며 다양한 검색어로 내 영화에 관련된 모든 언급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정신도 사라졌다. 예전에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친구들이랑 포커를 친 적이 있는데, 돈을 잃을지언정 그 시간이 훨씬 유용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사람이랑 대면하며 쳤으니까. 

사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준비하고, 찍고, 후반 작업하고, 개봉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좋은 정신은 아니지만, 개봉하고 나서 나의 이름과 영화에 대한 반응을 인터넷에 찾아다니는 때가 제일 정신이 좋지 않은 시기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체도 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구걸 행위니까. 칭찬은 칭찬대로 믿을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도 칭찬하기 때문이다. 욕은 욕대로 믿을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도 욕하기 때문이고, 그냥 욕은 안 믿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유령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계속 뭔가를 찾아 헤매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검색 중독이 알코올이나 니코틴 중독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스스로를 검색하다 지쳐 쓰러졌을 때, 쓰러진 상태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하는 일이 알았던 타인들을 찾아보는 일이다. 가끔 찾아낸 공개 인스타그램을 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나를 쓸쓸하게 한다. 그들은 모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비싼 외식을 자주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닌다. 문화 생활도 빠뜨리지 않고 하고, 운동과 패션에도 신경 쓰며, 요리도 잘한다. 놀랍게도 대다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인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나 빼고 다 행복한 세상인 것은 공통점이다. 오늘 엄마와의 통화가 생각난다. 아이를 낳으라는 엄마에게, 엄마나 낳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완경 후 갱년기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나는 무형의 세계에 숨어서 사람들 염탐이나 하며 지내지만 그래도 괜찮다. 세상에는 이런 잉여 인력도 필요한 법이다. 육아하다 초토화가 된 친구가 담배 피우러 나와서 거는 전화를 언제든지 받아주기도 하고, 지리멸렬한 시나리오 쓰기에 지친 이야기도 들어줄 존재가 세상에는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그들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나는 이제 제발 검색질을 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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