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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시간을 가지고 놀다

시간이 섞이는 미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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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상상 이상으로 만들어낸 놀란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영화다. (2020.08.27)

영화 <테넷>의 한 장면


‘뭔가 대단한 것을 본 것 같은데 한두 번 봐서 왜 대단한지 자세하게 설명하기 힘든 영화’ 올여름, 아니 올 한 해 영화 팬들이 가장 기다렸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을 보고 받은 첫인상이다.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같은 시간과 동일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다 보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꼭 미로에 빠져 헤매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심정이다.

‘미로’는 놀란 영화의 핵심이다. 놀란은 미로 구조를 영화의 형식으로 삼기를 즐긴다. <덩케르크>(2017)는 역사적인 사건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3개의 타임라인으로 교차해 편집했고, <인셉션>(2010)은 현실과 꿈과 꿈속의 꿈의 다층 구조를 취했으며, <메멘토>(2000)는 7개의 에피소드를 10분씩 시간 역순으로 진행했다. <테넷>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고 그걸 한 점으로 모으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극 중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없다. 크레딧에는 주인공, 주도자의 의미가 있는 ‘The Protagonist’로 표기된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그는 새로운 임무가 맡았다. 세계 3차 대전을 막아야 한다.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 시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인버전’을 통해 미래의 무기를 현재로 보내 과거를 파괴하는 세력이다. 

그러니까, 현재 시점에서 깨진 유리 창문에 인버전 된 미래의 총을 갖다 대면 총알이 발사되는 게 아니라 장착이 되고, 이런 식으로 시간이 과거로 역순 한다. 그 과정을 현재에서 경험하는 그와 조력자 닐(로버트 패틴슨)은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인버전으로 세상을 파괴하려는 중심임을 밝혀낸다. 사토르에게 이 세계를 구하려고 주인공은 그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에게 접근한다. 

현재에 미래가 끼어들어 이 상황 자체를 과거로 만들어 버리니, 주인공과 닐과 캣은 그 과거를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나 현재로 경험한다. 말이 좀 어렵나. 영문 제목 ‘Tenet’을 거꾸로 해도 ‘Tenet’인 것처럼, 중간 철자 ’n’은 그대로 두고 ’t’와 ‘e’가 순서를 바꾸는 것처럼, 현재 시점은 유지한 채 미래와 과거가 회전하는 방식으로 끼어들어 순행하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거나 역전하거나 세 개의 시점이 공존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극 중에서 인버전은 ‘회전’하는 기계를 통해 이뤄진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이론일까?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사실에 기초했다는 게 <테넷> 제작진의 설명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말이다. “모든 물리학은 대칭적이다. 시간은 순행하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하고, 동시간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어떤 사물의 엔트로피 흐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사물에 작용하는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   

시간을 회전하여 섞는다는 개념은 영화 속의 시간의 미로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테넷>은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순환 혹은 회전의 미로를 형식으로 삼는다. 놀란의 영화가 어렵게 느껴져도 단 하나, 선명하게 보이는 건 초현실주의 화가 M. C. 에셔의 <상대성>처럼 시작과 끝에서 각각 출발해도 결국,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영화 <테넷>의 포스터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히스 레저)와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은 흑과 백, 악과 선의 구도에서 각각 정반대에 있는 듯해도 서로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등을 맞댄 하나의 개념이었다. <인셉션>의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도는 팽이의 결말처럼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기에 세계는 이쪽과 저쪽에서 밀고 끄는 장력이 서로에 힘을 발휘하여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생성, 존재의 힘을 유지한다. 

수순처럼 <테넷>도 결말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모인다. 미래에서 회전 기계로 과거로 온 주인공과 닐은 시간을 역행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 눈에 과거의 주인공과 닐은 시간을 거꾸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한 화면에 공존하는 두 개의, 아니 세 개의 시간대를 보고 있으면 상황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한다는 게 (적어도 나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꼭 핸들의 방향에 맞춰 타이어가 반대로 움직이는 차량을 운전하는 느낌이다. 평소의 개념과 다르다 보니 적응하는 게 영 쉽지 않은 것이다. <메멘토>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놀란은 첩보물의 장르 외피를 가져와 6~7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발전 시켜 <테넷>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개념으로 먼저 파악하게 되는 <테넷>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상상 이상으로 만들어낸 놀란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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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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