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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현실에 발붙인 글을 쓰고 싶다”

『당신의 4분 33초』 이서수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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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를 지날 때 썼던 소설이에요. 지금 암흑기를 지나고 계신 분들이나 지나오신 분들이 읽으시면 많은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2020.09.07)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이 경구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저 한 줄의 문장이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4분 33초』속 주인공 이기동의 삶도 그러하다. 한 줄로 심플하게 그를 소개하자면 공무원 아내를 둔 소설가. 하지만 당연히, 더 깊숙이, 더 집요하게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깊어지는 어머니의 한숨, 자신을 조금씩 부끄럽게 여기는 듯한 아내의 태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삶. 실은 우리 모두, 어렸을 때 꿈꾸곤 했던 멋지고 찬란한 순간과는 많이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의 삶은 조금 불운하게는 보일지라도 결코 불행해 보이진 않는다. 나는 듯 경쾌한 문체와 시니컬한 유머의 향연.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로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을 한 단계 비약시킬 중요한 자산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격찬을 받은 소설가 이서수를 만났다.



수상 축하드려요. 소식 전해 들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꿈꾸는 거 같았어요, 그 순간에는. 왜냐하면 제가 이 책이 저의 첫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지금 꿈꾸고 있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제가 등단한 지 6년 만에 책을 내게 됐거든요. 2014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는데 그 후로 첫 책이 지금 나온 거죠. 그래서 이 상이 저한테는 의미가 커요. 중간에 아무래도 생계를 생각해야 하니까 ‘소설을 포기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만약 이번에 이 작품으로 수상하지 못했더라면 소설을 포기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수상을 함으로써 앞으로 더 하라는 거구나. 더 열심히 하라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저한테는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큰 그런 순간이었어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제목이 ‘당신의 4분 33초’예요.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한데, 어떻게 탄생하게 된 제목인가요? 

<4분 33초>라는 무음의 연주곡이 있어요.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곡인데,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요.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요. 관객들은 당황해서 웅성거리죠. 존 케이지는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음악 철학을 이 곡에 담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연주가 된 곡이죠. 저는 이 영상을 보다가, 우리의 인생도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훌륭히 연주가 되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훌륭히 연주된 당신의 인생이라는 의미로 <당신의 4분 33초>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단은 이번 작품에 대해 존 케이지와 주인공 이기동의 상반된 삶을 병렬구조로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문학을 한 단계 비약시킬 놀라운 작품이다”라고 평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이런 구조를 생각하시게 된 건가요?

제가 원래 병렬적인 서사구조를 좋아해요. 영화나 책에서 그런 구조가 나오면 더 유심히 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두 인물이나 한 명이라도 다양한 연령대를 다룬 병렬적인 서사구조를 보면 관심이 생겨요. 그게 인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소설에서도 이기동이라는 무명의 작가와 존 케이지라는 실존했던 유명 음악가를 병렬적으로 배치해 놓음으로써 처음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인물들처럼 보이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두 인물이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풍부한 상징이나 의미 같은 게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병렬 구조를 좋아해요.    

시니컬한 성격에, 때로는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이기동이란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상상하게 되셨나요?

제가 실제로 이기동처럼 가벼움이나 무거움, 비관이나 낙관 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싫어해요. 어떤 상황에서든지, 되게 무거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유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인물에 제 성격에 반영이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소설을 쓸 때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인물은 거의 안 쓰는 편이에요. 공감이 잘되지 않아서인데 억지로 쓰려고 하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저와 주변 사람들을 바탕으로 만든 약간은 부족해 보이는 듯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요. 단점도 많지만 뚜렷한 장점도 한두 가지 정도는 분명히 갖고 있거든요. 그런 인물을 등장시켰을 때 몰입이 잘되는 편이고, 인물이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감각이 생겨야 소설을 완성할 수 있더라고요. 

현실적인 상황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소설이라 그런지 생동감이 느껴져요. 주변에 한 명은 꼭 있을 법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읽는 내내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실제로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글을 좋아해요. 아름답게 꾸미고, 위로를 주기 위해 어떤 에피소드를 미적으로 가꾸고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 글을 읽을 땐 종종 감탄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글을 쓸 땐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지금 진실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멋져 보이려고 겉만 아름답게 치장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에 자주 빠져요. 하지만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글을 쓸 때면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소설 속 인물뿐 아니라 저도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겪었던 일들을 재해석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이 소설을 계속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현실을 좀 더 잘 담아낸 작품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도 평범한 서민이니까, 그런 모습이 담긴 인물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현실적인 인물이요.

소설 속 주인공이 일종의 아르바이트 같은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해온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택배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예상은 했지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더라고요. 여성 택배기사가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어요. 택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일을 알게 되었고, 겪지 않았을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 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작년에 북카페를 운영했었어요. 소설 속 기동이가 작은 북카페를 운영하듯이 하고 싶었는데 현실에서는 지인들이 뜯어말려서 그렇게는 하지 못했어요. 그러면 돈을 벌지 못한다, 너는 돈 벌려고 가게를 열었으면서 왜 또 그런 걸 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책은 팔지 않고 음료만 파는 북카페를 했었는데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19가 오면서 완전히 문을 닫았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현재는 장편 초고를 쓰고 있어요. 이 소설도 그랬지만, 저는 제가 경험한 것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오는 편이라 제가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 장편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갈등이 다채로운 가족소설이나 친구 같은 부부가 등장하는 소설을 쓸 때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사랑보다 우정에 가까운 감정으로 서로를 보듬고, 때로는 원망하고, 그러다가도 연대해서 팍팍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부부가 중심이 되는 소설이에요. 일단 재밌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장르로 따지자면... 극 사실주의? 생활밀착형 소설이랄까요. 부부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해보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인생에서 간과할 수 없는 돈에 대한 이야기랄까. 

우리 사회 모든 기동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기동이지만, 우리 주변에 분명 기동이가 많을 거예요. 그리고 이 시대에는 더욱 많을 수밖에 없어요. “내게 이런 꿈이 있는데, 이 꿈을 이루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래, 해봐”라고 선뜻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는 시대예요.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야지,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냐”라는 얘기를 해주는 게 더 진정한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잖아요. 생존을 해야 되니까. 근데 누군가 한 명쯤은 “해봐. 네가 원하는 거 해봐.”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를 지날 때 썼던 소설인데 지금 암흑기를 지나고 계신 분들이나 지나오신 분들이나 아니면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에 가치를 두는 분들이 읽으시면 많은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그런 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기동’이라고 생각해요.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묵묵히 연주를 하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이기동들에게 이 소설로 응원의 말을 대신 전하고 싶습니다. 


*이서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2020년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로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신의 4분 33초
당신의 4분 33초
이서수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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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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