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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연쇄살인마와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 산다

장르의 재조합으로 관객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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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하나의 장르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콜>에는 스릴러 장르에서 가용할 수 있는 하위 장르가 거의 총출동한다.(2020.11.26)


영화 <콜>의 한 장면

이충현 감독의 단편 <몸값>(2015)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성관계 ‘몸값’을 장기 밀매 ‘몸값’으로 반전하는 내용의 참신함과 이를 원테이크 원씬으로 촬영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단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첫 장편 연출의 기회를 얻었고 푸에르토리코 영화 <더 콜러>(2011)를 리메이크한 <콜>을 만들었다. 그가 영화로 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콜>은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에 있는 두 여자가 전화로 연결된 설정의 스릴러다. 서연(박신혜)은 2020년을 살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를 화재 사고로 잃었고 지금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이다. 홀로 떨어져 지내던 서연은 오랜만에 엄마 혼자 살던 집에 들어온다. 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연락을 기다리던 중 집 전화벨이 울린다. 1999년에 이 집에 살고 있던 영숙(전종서)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궁금증에 상관없이 서연과 영숙은 2020년과 1999년이 전화로 연결된 게 신기한지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기로 한다. 서연은 죽은 아빠를 살려줄 수 있느냐고, 이에 영숙은 어린 서연의 집을 찾아 불이 나기 전에 아빠를 구한다. 거짓말처럼 2020년의 서연 앞에 등장한 아빠. 아빠와 오랜만에 즐겁게 보내던 서연은 깜박하고 영숙의 전화를 받지 못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좋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영숙은 사이코패스였다. 신기가 있는 영숙의 엄마는 이를 간파하고 딸 영숙을 죽일 생각이었다. 서연이 영숙의 죽음을 미리 알려줘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영숙은 오히려 엄마를 살해한다. 그 여파는 서연에게까지 미쳐 영숙은 자신이 경찰에 잡히지 않게 계속해서 미래의 정보를 알려달라며 윽박지른다. 급기야 영숙은 1999년의 어린 서연을 납치하여 2020년의 서연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극장 개봉이 여의치 않아 넷플릭스로 직행한 <콜>의 이충현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재미로 관객들이 모든 장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힘을 가진 장르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출사표를 밝혔다. 단순히 하나의 장르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콜>에는 스릴러 장르에서 가용할 수 있는 하위 장르가 거의 총출동하는 듯한 인상이다.

무선통신으로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프리퀀시>(2000)의 ‘타임 슬라이딩’을 중심에 두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집도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는 미술감독의 말처럼 ‘귀신 들린 집’의 장르 요소에, <컨저링> 시리즈의 한국적 변용처럼 무당의 굿과 같은 의식으로 ‘오컬트’ 분위기를 더했고, 그래서 퇴마를 피한 영숙이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은 <엑소시스트>(1973)의 레건이 1980년대 유행한 ‘슬래셔’의 연쇄살인마로 정체를 바꾼 것만 같다.


영화 <콜> 공식 포스터

두 여성이 끌고 가는 영화임에도 확실히 <콜>은 영숙의 강렬함이 오래 잔상에 남는다.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는 <샤이닝>(1980)에서의 잭 니콜슨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콜>에는 영숙이 방문을 잠그고 몸을 피한 서연의 엄마를 쫓아 도끼로 문을 부수고 얼굴을 갖다 대는 장면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샤이닝>에서 가져온 장면으로, 평상시에는 서태지 ‘오빠’를 좋아하는 순수한 팬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자기 뜻을 거스르는 주변의 인물을 향해 가차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영숙의 캐릭터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면모가 있다.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장르가 변화하며 이야기 양상이 달라지는 <콜>은 감독의 말처럼 모든 장면에 집중하게 하는 몰입도가 크다. 관객의 호감을 살만한 설정이 보장된 원작에, 익숙한 장르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연출력에, <몸값>에서 이주영 배우의 매력을 살린 것처럼 전종서와 박신혜 배우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올린 것까지, 이충현은 첫 장편에서 연출자로 모험을 걸기보다 확실한 흥행을 목표한 듯하다.

이충현 또래의 감독들, ’한국형 <스타워즈>’에 도전하는 <승리호>의 조성희, 청년이 가진 분노를 근미래 배경의 액션물로 접근한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등이 만든 작품은 장르 친화적인 데가 있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선배 감독들도 장르물을 만들지만, 장르를 재창조한다면 이충현 감독 같은 이들은 장르를 재조합하는 데 능하다. 선배들이 개성에 방점을 찍었다면 후배들은 안정적인 영화 만들기를 한다고 할까. 산업의 영향이든, 감독 개인의 취향이든, 장르 측면에서 한국 영화는 확실하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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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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