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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아직도 고민]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무서워요

사회불안장애가 너무 심한 30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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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트라우마가 있고, 긴 불안에 시달렸음에도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분명 바뀌실 수 있습니다. (2021.05.11)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마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아직도 고민’ 상담 칼럼을 연재합니다. 
독자 분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고민에 따뜻한 처방을 드립니다. 
익명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간단한 소개(연령 등)와 함께 고민을 보내 주세요.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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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온 사연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학창 시절부터 없었습니다. 사회불안장애증이 너무 심해서 학교 가는 것이 항상 무서웠어요. 현재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데요. 가족과 손님 외에는 딱히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제 고민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무서워요. 과거에 친해지려고 시도해 봤는데 나쁜 사람들에게 이용당해서 그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럼에도 또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겠고 저를 싫어할까 봐 무서워하는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하겠어요. 제가 굉장히 극단적이라 제가 거절이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거나 화를 내면, 그걸로 인간관계는 끝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요즘 인터넷 댓글들 봐도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잘못하면 잘못한 부분뿐만 아니라 그 사람 인생 자체를 끝내 버리려고 하는 댓글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절대 실수해선 안되고 제 생각을 말하기도 두려워요.

저의 진짜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100% 좋은 면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잘못하면 저를 싫어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 매번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터지면 연락을 끊어요. 잠수를 타는 건 나쁘지만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 이런 생각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전

저를 믿고 힘든 마음을 내보여 주셔서 감사드려요. 긴 시간 동안 쭉 이런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오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진료실에서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들께 그 고통의 크기가 어떠한지 들어왔기에 제 마음도 아픕니다. 글을 적다 스스로 깨달으신 것처럼, 이런 대인관계에서의 극심한 불안을 겪는 분들께는 인간관계에서 100프로 좋은 면만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약간이라도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일 때 바로 회피하게 되어 버리죠. 

이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완벽해지지 못할까 회피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저는 미루고 미루다 원고 마감일 전날 늦은 밤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그냥 일단 자고 이른 새벽에 쓸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죠. 계속 회피를 만들어 내는 제 마음속 원인은 다름 아닌 완벽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도움을 드리려는 좋은 일을 하는 건데, 동시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더 좋은 답이 떠오르지 않기에, 제 스스로 부족하다 느껴지는 불안이 걱정들을 키워냅니다. 너무 뻔한 말만 드릴까 봐, 기존 제 책의 말들을 그대로 답습할까 봐, 그러면 사연을 보내주신 분과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실망할까 봐. 

사연을 보내주신 독자분께 도움을 드려야 하는 이 소중한 지면에 뜬금없이 제 이야기를 적은 것이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 직업인 저도 그래요, 그러니 괜찮아요’라는 위로의 목적은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라는 것,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있는 심리이지만, 독자님의 경우 그 힘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커서 삶을 지배하고 있죠. 이 심리가 왜 이리도 강력한 걸까요? 

크게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로 사회불안장애라는 질병 때문에, 둘째로는 과거 트라우마의 영향 때문입니다. 사회불안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겪는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은 정말 타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예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소심해서가 아니라 질병이기 때문에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독감에 걸렸을 때 나오는 기침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요. 이런 사실을 모르고 나약하다며 비난한 이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걱정돼요. 아마 높은 확률로 있었겠죠. 그 부정적 시각 속에 나 역시 스스로를 비난하게 되고, 그렇게 굳어진 부정적 자기 이미지 때문에 타인들 앞에 더 나서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생겨납니다.

또한 대인관계에서의 큰 상처는 이런 불안과 공포를 더 강하게 키웁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더 이상 머릿속 상상이 아닌, 실재에 근거한 합리적인 걱정처럼 둔갑해버리게 되죠. 결국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해진 공포 속에서, 아주 약간이라도 상처받을 가능성이 보일 때 적극적인 회피를 선택하게 됩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무의식의 선택이죠. 

약물치료는 받고 계신지 궁금해요. 아니라면 꼭 하셔야 하고, 이미 받고 계셨다면 더 적극적으로 조절해 보실 필요도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 질병의 증상은 의지로 조절이 불가능하거든요. 뇌 속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의 아우성이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잔잔한 목소리를 압도하는 지금에는 그 어떤 노력에도 변화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약물치료로 불안을 줄여야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도전들이 가능해질 거예요. 내 걱정의 과도한 부분을 알아채고 도망치려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며 상처받을 가능성이 보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힘든 그 길에 함께하며 계속 격려하고 도와줄 상담자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고요.

저도 위에 말한 제 마음과 부딪히며 결국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분명 나을 테니까요. 제 걱정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사실 제 책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비슷한 말을 드려도 되겠죠.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며 어느덧 글의 마무리 지점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도저히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기에 너무나 괴로우셨을 거예요. 30년간 이렇게 살아온 내가 바뀔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드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사연을 보내신 것만 봐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있음이 분명하죠. 대인관계 트라우마가 있고, 긴 불안에 시달렸음에도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분명 바뀌실 수 있습니다. 물론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고 조금씩 나아지겠죠. 그런 내 모습 역시 완벽하지는 않아도, 약점이 많이 보여도, 과거의 나에 비해 발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어쩌다 정신과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
김지용 저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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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용(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책 <어쩌다 정신과의사>를 썼고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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